플레이어의 실력이란?

GM의 실력은 자주 논의되는 문제이지만 플레이어의 실력도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재미있는 세션을 진행하는 GM과 그렇지 않은 GM이 있듯이, 분명히 GM과 다른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봐도 반겨지는 플레이어가 있고 꺼려지는 플레이어가 있습니다. 그 차이를 생각해 보죠.

게임 외적인 문제에서 보자면, 모든 참가자에게 공통되는 것이지만 실력있는 플레이어는 시간을 잘 지킵니다. 가장 기본적인 문제이죠. 아무리 플레이에 들어가면 날고 긴다고 하더라도 모두가 시간을 맞추지 않으면 플레이를 시작할 수조차 없습니다. 또한 실력있는 플레이어는 늦거나 결석할 때 반드시 미리 통보를 합니다. 안 그러면 GM도 다른 플레이어들도 이제나 저제나 하고 기다리며 시간을 낭비할 테니까요. 아니면 그 플레이어는 아예 포기하고 진행할 테고, 그러다 보면 점점 겉돌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건 전혀 못해도 시간만 지키면 일단 반은 된 겁니다. 플레이에 문제가 있으면 차차 교정해 가면 되지만, 지속적으로 안 나타나는 분은 도저히 어떻게 할 방법이 없거든요.

또한 플레이어의 실력에는 팀원과의 의사소통도 포함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과 모든 팀원이 즐겁기 위해서 끊임없이 의사소통을 시도하고 유도하는 것은 좋은 플레이어의 덕목 중 하나입니다. 이건 플레이 내에서도 마찬가지이고, 캐릭터 메이킹에서도 적용됩니다. 자신의 PC가 다른 PC와 함께 움직일만한 이유를 전혀 부여하지 않는 건 캐메에서 의사소통이 없었다는 뜻이죠. 특히 비사회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놓고서는 ‘이놈은 원래 이런 놈이예요.’ 하면서 다른 PC와의 상호작용을 거부하는 경우도 봤는데, 매우 좋지 않은 모습입니다. (그게 멋인가요? ;; 제가 보기엔 전혀 아닌데…) 그렇다면 비사회적이라도 억지로라도 다른 PC와 상호작용을 할 이유를 만들든지 해야죠. 물론 GM의 책임이 큰 부분이기도 합니다.

또한 분위기 파악도 의사소통의 중요한 일부입니다. 세계관의 분위기, 파티의 분위기, 플레이의 분위기… 다른 팀원들과 똑같이 맞추라는 게 아니라, 개성있는 부분은 있어도 지나치게 이질적이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와 연관해서 실력있는 플레이어는 자신과 타인의 재미를 조화시킵니다. 다른 플레이어가 재밌으라고 계속 자신의 재미를 계속 양보한다면 좋은 플레이어라고 할 수 없죠. 자신이 재밌지 않으면 플레이는 시간낭비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자신이 재미있자고 다른 플레이어의 재미를 희생하는 것도 좋은 플레이어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보통 문제되는 건 후자 쪽이지만…) 플레이는 자신이 즐거운 동시에 모두가 재미있기 위한 것이고, 다른 참가자들의 즐거움에 의해 자신의 즐거움이 배가되는 것이니까요. 플레이 중에 말도 안되는 해코지를 해놓고 혼자 재밌어한다거나, 혼자 튀려고 계속 파티에서 떨어져서는 GM이 자신 쪽만 진행하라고 강요한다거나 하는 행동은 절대 다른 참가자들에게 환영받지 못합니다.

역시 이와 연관된 문제로 좋은 플레이어는 주연과 조연의 역할을 둘다 잘합니다. 자신이 현재 가장 튀는 위치에 있든, 아니면 잠시 다른 PC를 보조하는 역할을 맡았든지 간에 주연과 조연으로서 가장 알맞은 플레이를 하는 플레이어는 어디가서나 환영을 받지요. 끊임없이 자신이 주인공이려고 하거나, 아니면 자신에게 주의가 쏠리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것은 둘다 좋은 모습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PC 1이 어려서 헤어진 자신의 형과 적으로 맞서게 되었다고 합시다. (촌스런 설정..이지만..ㅡㅡ;;) 적어도 한 장면, 길게는 여러 세션간 PC 1은 주인공일 수밖에 없습니다. 동료와 혈육 사이에서 고민하는 그의 내적 갈등과 힘든 선택에 마주한 극적 상황에 무대조명을 비춰주는 것이죠. 이런 때 PC가 아무런 반응도 없다면 GM으로선 정말이지 김새는 일일 것입니다. 물론 자신은 괜찮다고 하거나 의도적으로 자신에게서 주의를 돌리려는 행동은 감정적으로 곤란할 때 흔히 나타나는 반응이고, 이런 것은 좋은 연기에 해당되죠.

이렇게 PC 1이 잠시 주인공이 되면 나머지 PC들은 자연스럽게 조연이 되어 PC를 위로하고, 정신 차리라고 꾸짖고, 때로는 가만히 지켜보는 등 당분간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PC 1에게 돋보일 기회를 주고 캐릭터 연기의 폭을 넓히는 방법이겠죠. (게다가 저는 조연이 재밌던데..ㅋㅋ) 문제가 되는 건 다른 PC에게 관심이 가는 걸 절대 참을 수 없는 플레이어입니다. PC 1이 괴로워하는 걸 PC 2가 열심히 위로하는데 갑자기 PC 3이 주의를 끌려고 돌출행동을 한다면 좋게 보일 리가 없죠. 위에서 말했듯이 플레이어의 실력은 자신의 재미와 타인의 재미를 조화시키는 것입니다.

또한 좋은 플레이어는 적극적인 플레이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한 돌출행동을 하는 적극성이 아니라, 플레이에 있어서 능동적이고 (반드시 캐릭터가 능동적인 건 아니지만) 선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적극성이야말로 RPG라는 매체에 맞는 태도 아닐까요.

이 외에도 추가적인 요소라면 자신의 선택을 능동적으로 하면서도 GM의 의도를 어느정도 파악해 준다든가, 다른 플레이어의 적극성을 유도한다든가 하는 것이 있겠지만, 위의 요소들만 갖추어도 이미 차고 넘칠 정도이기 때문에..^^

잠시 푸념을 해보자면, 즉플이나 미니캠페인을 하고 싶어도 이미 검증된 실력의 팀원들이 아니면 함께하기가 꺼려지는 게 요즘 심정입니다. 미니캠페인과 즉플 경험을 말하자면, 첫 세션만 하고 아무 연락도 없이 다시는 안 나타나는 분, 전혀 플레이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막무가내로 가는 분, 지나치게 잦은 잡담으로 흐름을 깨는 분… 요즘 즉플이 많이 줄었다고 느껴진다면 이런 것도 한 요인 아닐까요. (저만 그럴지도..ㅡㅡ;;) 많은 RPG인이 더더욱 실력이 늘어서 즉플을 열기가 두렵지 않은 다챗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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