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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관리에 대한 단상 4: 위키

옛날옛적에 썼던 홈페이지, 게시판, 블로그에 대한 글에 이어 위키를 다루어 보았습니다. 이전 호스팅에서 쫓겨나면서 위키 자료를 날린 후 실의에 빠져(..?) 못쓰고 있다가 이제야 올리면서 정보관리에 대한 단상 시리즈를 마칩니다.

제 경험으로 위키는 크게 두가지 다른 목적이 있다고 봅니다. 첫번째는 위키가 본래 시작된 목적에 보다 가까운 것으로, 불특정 다수의 지식과 노력을 동원하여 정보를 축적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엄청난 양의 정보를 축적한 위키피디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키피디아에서 사용하는 미디어위키가 그런 쪽에 특화된 위키 도구라고 할 수 있죠. RPG 쪽에서는 TRPG 위키가 대표적인듯 합니다.

하지만 다수가 같은 페이지를 관리할 수 있는 위키 기술은 비단 정보의 축적 뿐만 아니라 정보의 관리에도 응용되기 시작했고, 페이지 혹은 분류에 따른 접근과 편집권한 설정이 추가된 위키 역시 생겨났습니다. 이런 형태의 예로는 도쿠위키가 있습니다. 캠페인 관리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로키네 위키도 정보의 축적보다는 관리를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이쪽 유형의 위키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불특정 다수에 의한 정보의 축적은 홈페이지, 게시판, 블로그로는 구현이 힘든 위키 고유의 기능이라 비교 자체가 무의미하니까요.

위키의 본질이자 특징인 다수에 의한 페이지 수정은 캠페인 관리에 특히 유용하다고 봅니다.  단적인 예로 캐릭터 시트를 들 수 있습니다. 웹페이지, 게시판글, 블로그글 등은 기본적으로 관리자 혹은 글쓴이 한사람에게 수정 권한이 주어지기 때문에 진행자가 경험치를 추가해 주고 참가자가 그 경험치를 사용하는 식의 편의를 확보하기 힘듭니다.(주:여기에도 물론 많은 변형과 예외가 있어서, 제로보드 같은 경우 관리자가 글 수정이 가능하므로 진행자가 관리자로 있는 게시판에 참가자가 시트를 글로 올린다든지 하면 동시 수정이 가능합니다. 블로그 도구인 태터툴즈팀블로그 플러그인을 통해 다수가 글을 수정할 수 있죠.) 반면 위키는 기본적으로 여러 사람이 수정 권한을 가집니다. 이러한 권한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면 권한 설정 기능을 이용할 수 있고요.(주:위에서 말했듯 위키 도구도 목적에 따라 기능이 달라서, 정보의 축적을 목적으로 하는 미디어위키는 권한설정 기능이 비교적 약하고 정보관리를 목적으로 한 도쿠위키는 매우 체계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권한 제한도 이래저래 유용하게 쓸 수 있어서, 캠페인 설정 중 참가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페이지는 저만 볼 수 있게 권한을 잠가놓기도 합니다. 그리고서 나중에 점진적으로 공개한다든지 하는 방식을 쓰고 있습니다. 포도원의 제다이 캠페인에서 참가자들이 이미 클리어(?)한 마을인 셀렌은 권한을 열어놓고 아직 진행중인 카론은 닫아놓은 것이 그 예입니다. 물론 아예 웹상에 올리지 않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웹에 올리되 권한 설정을 이용하면 모든 캠페인 정보를 한곳에서 관리하는 편의 또한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나중에 필요하다면 특정 참가자와 저만 볼 수 있는 페이지를 만든다든지 하는 것도 가능할 것입니다.

DokuWiki ACL management

도쿠위키에서 권한 설정례


자주 수정되는 정보, 특히 다수가 수정하는 정보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완화하는 것이 위키의 또다른 특징인 버젼 관리 기능입니다. 위키에서는 모든 변화가 기록에 남으며, 필요하면 언제든지 글을 이전 버젼으로 되돌릴 수도 있습니다. 다시 캐릭터 시트의 예를 들자면 얼마만큼의 경험치를 언제 받았는지, 언제 어떻게 썼는지 모두 확인할 수 있고 오류나 중복이 있었다면 고칠 수 있습니다. 편집내용을 요약해서 적어두면 특정 페이지의 변천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점도 편리하지요. (저 말고는 어째 잘 안쓰는 기능인듯 하지만…)

위키는 또 홈페이지와 비슷하게 정보의 구조화에도 강한 편입니다. 블로그나 게시판처럼 시간순서 역순으로 나열하는 구조 대신 정적인 페이지 단위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므로 차례 페이지를 만들어서 필요한 링크를 정렬할 수 있죠. 도쿠위키 같은 경우는 네임스페이스 기능을 통해 항목을 논리적으로 조직할 수 있고, 미디어위키는 각 페이지에서 사용하는 태그에 따라 자동으로 분류 페이지를 생성해 줍니다. 또한 많은 위키의 경우 RSS 피드 기능을 제공함으로써 홈페이지의 정보 구조력 뿐만 아니라 블로그 혹은 게시판의 시의성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위키 도구는 대체로 오픈소스이기 때문에 확장성 또한 뛰어납니다. 많은 경우 배포 홈페이지와 게시판, 메일링 리스트 등을 통해 개발자와 사용자의 모임이 형성되어 있으며, 이들이 제공하는 기술적 지원과 플러그인을 통해 위키의 기능을 발견하고 확장할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이런 식으로 위키를 자신에게 맞는 도구로 만들어가는 유연성은 위키의 또다른 매력이라고 할 수 있지요. 물론 이는 비단 위키만의 장점은 아니며, 태터툴즈 같은 오픈소스 블로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같이 많은 장점이 있지만 위키는 사용 편의가 그다지 높은 매체는 아닙니다. 무엇보다 대개의 사용자에게 생소하다는 점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블로그나 게시판에 익숙한 사용자는 이들 도구와 개념이 다른 위키에 익숙해지는데 어려움을 겪을지 모릅니다. (개인적으로는 별로 어렵지 않았기 때문에 추측으로..(..))

또한 많은 기능과 뛰어난 확장성을 자랑하지만 이러한 장점을 살리는데는 종종 기술적 어려움, 그리고 시간과 노력이 따릅니다. 파일과 폴더 권한 설정, 플러그인 설치와 테스트, 스킨 수정, 피드 구독 등등. 아직 기술적으로도 불안정한 데가 많고, 필요한 정보를 얻으려면 스스로 검색과 문의를 꽤 해야 합니다. 어느정도의 지식이 없으면, 그리고 위키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힘들 수도 있습니다. 호스팅 형태의 위키, 그리고 미디어위키처럼 비교적 오래된 위키 도구는 기술적으로도 비교적 안정되고 문서화 작업도 잘 돼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니 상황이 좀 다를 수도 있지만요.

마지막으로, 역시 사용 편의하고도 연관된 문제이지만 위키는 아직 다른 웹기술에 비해 정착이 안된 관계로 한글화가 불완전한 경우도 많습니다. 위키 도구는 상당히 많이 나와 있지만 UTF-8 인코딩을 지원하는 것은 많지 않으며, 필요한 정보의 문서화 상황은 더욱 열악합니다.  미디어위키가 위키 자체와 문서작업 모두 한글화가 제일 많이 된 경우로 알고 있으며, 도쿠위키도 UTF-8 인코딩 지원과 더불어 인터페이스 한글화와 한글 문서화가 부분적으로 된 경우입니다.

이와 같이 정보관리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중심으로 위키를 다루어 보았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지금까지 다룬 정보관리 수단 중에 기능성은 최고, 사용편의는 꽝(…)이랄까요. 개인적으로는 재미있게 사용하고 있지만, 아직 발전의 여지는 많아보입니다. 그만큼 앞으로 어떤 식으로 발전해갈지 기대되는 매체이기도 하고요.

덧: 제가 도쿠위키 설치하고 설정한 얘기를 올렸습니다.

약속의 소중함

예전에 참가자의 실력에 대한 글에서도 다루었던 얘기이지만, RPG라는 놀이의 기반을 이루는 것은 바로 ‘약속’입니다. 어떤 시간까지 어떤 장소에 모이겠다거나, 어떤 IRC 채널에 들어가겠다거나, 다음 주까지 글을 올리겠다거나, 등등. 약속은 RPG 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생활의 기반이기도 합니다. 약속을 통해 사람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자기 계획에 넣고 행동할 수 있게 되고, 약속을 통해서만 사람이 같이 뭔가를 한다는 것이 가능해지죠.

그런데 이렇게 RPG에서든 삶에서든 근원적이고 중요한 조건인 약속을 어기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사회생활 속에서도 물론 벌어지는 일이지만, RPG 같은 경우는 삶에서 우선순위가 높지 않은 놀이이기 때문에 약속을 어기고도 크게 미안해하지 않는 경우도 보게 됩니다.

물론 RPG는 놀이일 뿐입니다. 따라서 RPG보다 중요한 일이 생겼을 때 약속을 못 지키는 것은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뭐라고 하면 이상한 사람이니 연락을 끊는게 상책.) 하지만 여기서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의 필수사항, 즉 사전통보의 필요성이 나오지요.

삶에서 다른 일이 벌어져서 RPG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정상적인 사회인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어떤 식으로든, 그리고 최대한 빨리 알리지 않는 것은 무계획성과 나태, 무배려함, 그리고 무례를 광고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론 RPG 자체는 놀이이고, 가상현실일 뿐입니다. 하지만 함께 RPG를 하는 사람들은 각자의 생활과 계획이 있는 진짜 사람들입니다. 비록 인터넷으로만 만날지는 몰라도 비디오게임 스프라이트나 인공지능이 아닌 것입니다. 약속도 지키지 않고 사전통보도 하지 않은 사람을 기다리는 것 외에도 할 일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강조하고 있다)

사람은 타인이 약속한 행동에 기반해서 자기 계획을 세웁니다. 누군가가 부득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사전통보를 해오면 그 계획을 수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 통보도 없이 나타나지도 않으면 원래 계획을 추진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상황에 맞게 계획을 수정할 수도 없습니다. 약속과 사전통보를 둘다 게을리하면 다른 사람을 그런 불확실성과 시간낭비에 빠뜨리는 것입니다.

‘죄없는 자, 돌을 던지라’고 했던가요. 돌을 집어서 제 이마부터 찍고(..) 내려놓으려 합니다. 저도 말없이 약속을 어긴 적이 꽤 되지요. 게다가 그중 다수는 진행한다고 사람 모으고 나서 늦잠을 잔 행태여서 더욱 할말은 없습니다. (어흑) 또 시험기간 중에 미처 생각을 못하고 말없이 안나간 경우도 있었고… 때문에 통보없이 약속을 어기는 게 무슨 악의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라는 건 잘 압니다. 그저 잠시 생각이 부족했거나 아차하는 순간 잊었을 뿐이죠. 하지만 타인의 시간과 계획에 미치는 영향은 악의가 있는 경우와 똑같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약속을 좀더 잘 지키고, 안될 때는 사전통보를 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다 뻔할 뻔자인 소리이긴 하지만 다음과 같은 방법들이 생각의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은 약속과 사전통보 자체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참여자 축출이나 캠페인 중단 등은 굳이 다루지 않겠습니다.)

1.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한다

기본 중의 기본이지요. 약속은 의지력으로 억지로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활습관과 다른 활동의 상호작용이 맞아떨어져야 안정적으로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일어날 수 있는 시간인지, 깨어있을 수 있는 시간인지, 다른 일과 겹치지는 않는지 같은 사전 고려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합니다.

2. 의미있는 의견수렴

마찬가지로 팀 단위에서 시간을 정할 때도 이러한 사전 고려가 모두에게 적용되고 있는가 확인해야 합니다. 자칫하면 목소리 큰 몇명의 얘기대로 정해지고, 소극적인 사람들은 무리가 있는 시간대로 결정될 위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시간대에 개인적으로 무리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얘기하는 자세가 필요하겠지요. 정 모임에서 소리내어 얘기하기가 힘들다면 다른 사람 (예를 들어 진행자)에게 개인적으로 상의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3. 효과적 사전통보

위에서 통보는 ‘최대한 빨리’라고 했지만, 사실 중요한 것은 빨리 통보하는 것 자체보다는 효과적으로 통보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너무 빨리, 그리고 말 한마디로만 사전통보가 이루어져서 막상 약속시간에는 그런 통보가 있었다는 것도 잊은 (그리고 잊혀진) 경험도 있죠.

가장 좋은 방법은 통보를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모두에게 공지된 곳에 기록을 남기는 것입니다. 팀원들이 사용하는 게시판이 가장 대표적인 예이죠. 이런 공간에 공지해 두면 통보가 다소 빨라도 기록이 남기 때문에 효과적인 통보가 가능합니다.

서로 MSN 같은 메신져에 등록되어 있다면 급할 때는 대화명에 공지하는 것도 가능하고, 핸드폰 번호를 주고받는 것도 흔히 하는 방법이죠. 어쨌든 필요할 때 서로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이 있어야 불확실성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4. 포괄적 사전통보

약속을 어기는 이유가 계속 반복되거나 그때그때 연락을 주기 힘들 때는 포괄적인 사전통보도 한 방법입니다. ’30분 지날 때까지 못 나오면 학교 일 때문이에요’라든지, ‘제시간에 안 나오면 죽음의 골짜기에서 절망의 탑을 맨손으로 오르면서 어둠의 오크 군대와 싸우고 있기 때문이에요’라든지.

포괄적 사전통보는 통보가 된다는 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그런 사유가 발생하는 일이 잦다면 그 참여자의 참여 내지는 캠페인의 존속 자체가 불투명하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비정기 캠페인으로 돌리거나 주인공 일행에 가끔씩만 합류하는 인물을 설정하는 등 다양한 장치가 가능하겠고, 구체적인 합의사항은 각 팀의 사정에 따라 크게 달라지겠죠.

5. 다른 원인이 없나 확인한다

때로는 객관적으로 여건이 되는데 심적 부담 같은 다른 요인 때문에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진행에 대한 부담감이라든지, 팀원간의 갈등이라든지 하는 이유로 자기도 모르게 약속을 잊는다든지, 늦잠을 잔다든지 하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지요. 이런 경우는 아직 캠페인 존속이 가능하고 모두가 원한다고 판단되면 기반 원인을 파악해서 해결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약속을 어기는 것은 증세일 뿐이고,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는 경우이니까요.

이상과 같이 RPG에서의 약속, 그리고 그에 부수된 문제인 사전통보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RPG는 분명 놀이일 뿐입니다. 하지만 함께 RPG를 하는 사람들은 충분히 배려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RPG야 하든 안하든 그만이지만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는 결코 선택사항이 아니지요. 자신이 한 말을 지키는 것, 신뢰를 받을 자격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사회인으로서 기본적인 예절을 지키는 것은 곧 자신의 긍지이니까요.

RPG 팀 구성하기

지난번에 RPG 팀 구하기라는 글을 썼었는데, 이번에는 RPG 팀을 구성하는 방법에 대해 제 경험과 시행착오 중심으로 적어볼까 합니다. 저 자신의 경험이 기반이기 때문에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루고 있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많은 경우 공개구인은 진행자가 주체가 되어 참가자를 뽑는 식이고 제 경험도 거의 그쪽이었지만, 참가자들이 먼저 뭉친 다음에 진행자를 뽑는다든지 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생각해 볼 수 있겠죠.

1. 인맥 중심 구인

아는 사람들끼리 팀을 구성하는 방식입니다. 무난하고 편하며, 지속적이고 안정된 플레이의 확률이 높습니다. 또한 이미 서로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변수에 대응하는 불안이 없고,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RPG를 통해 즐겁게 시간을 보낸다는 장점도 있죠. 전에 캠페인을 함께 해본 사이라면 이전 캠페인의 후속을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연속성을 확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방법은 그냥 아는 사람들끼리 얘기가 돼서 팀이 짜여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방법론을 딱히 자세히 다룰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누군가가 ‘이런 캠페인을 하자!’라고 생각해서 아는 사람들한테 관심있나 연락을 해본다든지, 친구들끼리 얘기하다가 ‘캠페인을 해볼까?’ 하면서 팀이 자연발생적으로 생기기도 하고… 위에서 얘기한 진행자가 주축이 되어 참가자를 뽑는 전형에서 가장 벗어나기 쉬운 방식이기도 합니다. ‘캠페인을 해볼까?’ 얘기하다가 ‘너 마스터 해.’ 하는 식으로 얘기가 되곤 하니까요.

인맥 중심 구인은 가장 흔한 팀 구성 방법이라고 생각되지만, 몇가지 한계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아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취향이나 시간대가 맞는다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캠페인 내용, 규칙, 시간대 등이 아닌 인맥을 중심으로 뭉친 팀이기 때문에 캠페인 방향이나 규칙에 대해 서로 의견이 맞지 않을 수도 있고, 서로 시간대가 맞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비슷한 맥락으로 인맥 중심의 팀 구성은 수적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캠페인에 대한 사항에 맞는 사람을 아는 사람 중에 발견할 수 없는 경우도 꽤 됩니다. 나는 핵앤슬래쉬를 하고 싶은데 상대는 정치물을 하고 싶다든지, 나는 토요일 오후밖에 안되는데 아는 사람들은 일요일 오전밖에 안된다든지 말이죠.

그리고 좀 다른 얘기지만, 아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다 잘 지낸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A와 B, B와 C는 친한데 A와 C는 앙숙이라거나. 인간관계란 복잡다단한지라, 서로 아는 사이라는 점은 RPG에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짐이 되기도 합니다.

정리하자면 인맥 중심 구인은 캠페인에 대한 사항에 합의가 잘 되면 (특히 아는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사교적인 의미를 강조한다면 더욱) 안정적인 플레이에 강하겠지만, 내용이나 시간대 등 캠페인에 대한 특정 욕구를 모두 조율하고 충족시키는데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인맥 구인에 보조적으로, 혹은 인맥 구인 대신으로 공개 구인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글의 나머지에서 다루는 방법들은 모두 인터넷을 통한 공개 구인 방법들입니다.

2. 선착순 구인

구인글을 올린 후 그 글에 답한 사람 중 선착순으로 몇명을 끊는 방식입니다. 제가 처음 진행을 시작했을 때 사용한 방법으로, 개인적으로 별로 권장하지 않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선착순 구인은 공개 구인의 약점, 즉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른다는 불확실성을 극대화하기 때문입니다. 구인글에 답만 달았지 플레이 약속은 전혀 안 지킬 수도 있고, 취향이나 스타일이 하나도 안 맞을 수도 있고, 인성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을 수도 있는 등 선착순 구인은 참가자의 실력이나 참여자간 상성 같은 요소를 확보할 장치가 전혀 없습니다.

물론 선착순 구인에서도 지원자를 걸러내는 최소한의 수단은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구인글 그 자체입니다. 구인글에 캠페인이 어떤 내용인지, 어떤 규칙을 사용하고 어떤 시간대에 하는지, 어떤 참가자를 찾고 있는지 하는 내용을 적을 수 있고, 그 글에 답하는 사람들은 구인하는 측이 바라는 참가자의 조건을 충족할 것이다…는 이론이 되겠지만, 제 경험으로는 현실적으로 큰 효과가 없습니다. 자신이 보는 자기 자신과 실제로 드러나는 자기 자신은 다르기 때문이지요.

구인글에 답하는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캠페인 때 필요한 시간을 비울 수 있을 것 같지만 생활습관이나 다른 사정으로 실제로는 여의치 않을 수도 있고, 또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남과 협력도 잘하고 규칙도 숙지한 것 같지만 남이 보기에는 전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또한 구인글을 보고 생각한 캠페인 기대치가 구인자가 생각한 것과는 달라서 서로 실망하는 수도 있죠.

물론 선착순 구인으로도 팀이 무난하게 돌아갈 수는 있습니다. 제 경험으로도 문제있는 경우보다는 좋은 참가자를 구할 수 있는 경우가 더 많았죠. 하지만 그 결과가 순전히 운에 달려있다는 점, 그리고 잘못되는 경우에 제어장치가 없다는 점 때문에 추천하지 않습니다. 그냥 빠르게 사람 모집해서 1회 플레이나 단기 캠페인을 하는데 편한 방법일 수는 있지만, 혹시 문제있는 사람이 지원했을 경우 나중에 축출할 각오가 되어 있지 않은 이상 안정되게 오래 팀을 돌리는데는 도움이 안됩니다.

여기에서 좀더 발전한 방법으로는 일단 지원을 받아놓은 다음 면접 같은 방법을 활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시도해본 적이 없는 방법입니다. 순수 선착순보다는 훨씬 효과적으로 지원자를 선별할 수 있겠지만, 지원자를 떨어뜨린다는 심적 부담이 단점으로 보입니다.

3. 설정 공모하기

위와 같은 선착순 공개 구인의 문제에 대해 고민한 끝에, 세번째로 해본 캠페인인 라이테이아 전기에서는 다른 방법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참가 지원자가 이 캠페인에서 하고 싶은 주인공 설정을 정해진 날짜까지 올리라고 한 후 그중 몇개를 선택하는 방법이었죠.

참가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로망을 처음부터 보여주고 그것으로 판단받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고, 또 구인자인 제 입장에서는 참가자의 실력이나 문제점은 주인공 설정에서 상당부분 드러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서로 취향이 어느정도 부합하는지, 진행자가 생각하는 캠페인 방향에 맞는지 등도 판단할 수 있는 자료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과는 대체로 만족스러웠습니다. 문제없이 함께 플레이할수 있고 어느정도 취향도 맞는 참가자를 뽑을수 있었고, 주인공 설정들이 좋았기 때문에 그에 기반한 캠페인 내용도  비교적 수월하게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전반적으로 라이테이아 전기는 성공적인 캠페인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느낀 한계도 있습니다. 어느정도 엮을 거리가 있는 설정들을 골라내기는 했지만, 애당초 따로따로 만들어온 개성있는 인물들이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이들을 하나의 일행으로 만드는데는 진행자 입장에서는 많은 노력이 들었고, 참가자들 입장에서는 상당한 이해와 협조가 필요했습니다.

주인공들을 일행으로 엮기 위해 예언과 출생의 비밀, 기막힌 우연(..) 등을 동원한 것이 극적으로 반드시 나쁜 선택은 아니었고 또 라이테이아는 그런 것들이 나올만한 성격의 캠페인이기는 했지만, 좀더 자연스럽게 같이 다니게 되었다면 참가자들에게 보다 폭넓은 자유로 직결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또한 설정의 연계가 다소 들쑥날쑥해서 주인공 중 한명이 나머지 둘에 비해 소외되었던 점도 아쉬웠죠. 팀을 구성하는 방법이 캠페인의 진행 및 내용과도 직결되는 사례연구로 흥미롭기는 했지만요.

결국 설정 공모는 여러가지 장점도 있는 접근이지만 완전한 방법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또한 지원자를 떨어뜨린다기보다는 뽑는 방식이긴 했지만, 그래도 구인자 (이 경우 진행자) 혼자의 판단으로 지원자를 탈락시킨다는 심적 부담은 여전하더군요. 이 방법은 라이테이아 전기 한번을 끝으로 다시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4. 지원자간 투표 방식

최근에 시작한 포도원의 제다이 캠페인에서 공개모집에 사용한 방법이며, 지금까지 써본 공개구인법 중 가장 만족스러운 것이기도 합니다. 좀있다 다루듯 한계도 있긴 하지만요.

이 방법은 처음 시작은 위에서 얘기한 선착순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구인글을 올린 다음에 처음 몇 명을 끊는 것이지요. 다만 실제로 뽑으려는 인원보다는 1.5~2배 정도의 수를 뽑은 다음에, 그들끼리 서바이버를 촬영합니다..? (퍼벅)

이렇게 선착순으로 끊은 인원과 함께 본 캠페인 세션을 진행하는 요일과 시간대에 시범 플레이를 운영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단순히 말로만 해서는 잘 알 수 없는 사항들에 대해 구체적인 판단자료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플레이 시간을 지킬 사정이 되는지, 플레이중 남과 유기적으로 잘 협력하는지, 서로 성격이 잘 맞는지 등등. 뿐만 아니라 참가자들 입장에서도 이 캠페인의 방향성이나 진행자의 스타일이 자신에게 맞는지 판단할 수 있겠죠.

이렇게 두번의 플레이가 끝난 후 시범 플레이에 참가한 지원자들끼리의 투표를 시켰습니다. 구인자인 저에게만 얘기하는 비밀 투표 형식으로, 예를 들어 지원자 A, B, C, D 중 A는 B, C와 함께하고 싶고 B는 C, D와 함께하고 싶고 하는 식으로 자신이 함께 참가하고 싶은 지원자를 각자 지명하라고 말이죠. 그리고 이들 표는 단순합산으로 해서 지원자들의 순위를 매겨 높은 순서대로 잘랐습니다.

참가자들을 최종적으로 뽑은 다음에는 각자가 원하는 바에 따라 새로 주인공을 만들거나 시범 플레이의 주인공을 그대로 이어가거나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어차피 캐릭터를 보고 뽑은 게 아니라 사람을 보고 뽑은 것이었으니 좀더 유기적으로 서로 이어지는 인물들을 새로 만들어도 큰 무리가 없었으니까요.

이 방법의 이점이라면 우선 단순히 개별 참가자를 뽑는 것이 아니라 팀을 뽑는다는 점일 것입니다. 한 팀으로서 얼마나 잘 기능할 수 있는지, 얼마나 상성이 좋고 어울리는지 보는 것이니까요.

같은 맥락으로 이 방법은 대체로 납득할만한 결과가 나온다고 봅니다. 잘 기능하는 팀을 뽑는다는 것은 말이 거창하지, 대충 팀이 이러이러하게 짜일 것이라는 예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더군요. 그리고 시범 플레이 참가 외에는 아무것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원자들도 알고 시작했기 때문에, 소위 ‘낚였다’는 느낌도 덜할 것입니다.

또 구인자의 심적 부담을 줄여준다는 것도 매력입니다. 판단의 부담을 지원자들에게 분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비밀 투표 방식에 많은 꽁수의 여지가 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에 권한은 그다지 포기하지 않고 부담만 분산하는 사악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

이 방법의 한계라면 판단의 자료를 위한 시범 플레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애당초 그다지 많은 지원자를 가지고 시작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모두의 플레이에 대해서 판단이 가능한 정도로 플레이 진행을 하려면 ORPG에서는 아마 8명이 상한선이라고 보입니다. 따라서 선택의 여지는 다소 제한되는 것이지요.

비밀 투표 방식이라는 것은 한편 장점이고 불가피한 필요이면서 단점으로도 작용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얘기한 ‘납득할 수 있는 결과’라는 장점을 희석시킬 위험도 있지요. 애당초 공개 투표로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어쨌든 염두에는 둬야 할 점입니다.

이 투표 방식과 공통점이 많은 방법이자 직접적인 영향이기도 했던 것이라면 이미르니아 같은 팀에서 새로운 참가자를 받기 전에 몇주간의 관전을 요구하는 방법이라든지, 단막극을 진행하고 거기서 참가자를 뽑는 방법이라든지 하는 것이 있습니다. 시간대를 지키는지, 플레이를 어떻게 하는지와 같은 중요한 점들을 실제로 보고 판단할 수 있다는 점이 이러한 방식들의 공통점이라고 봅니다. 그만큼 판단에 시간과 노력이 들기는 하지만요.

어쨌든 투표식은 꽤 가능성이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며, 다음에 공개구인을 할 일이 있다면 다시 사용해보고 싶습니다. 비록 시범 플레이 때는 점잖았던 참가자들이 본 플레이에서 트윌렉 모에를 부르짖는 것을 보며 ‘내숭이었구나!’ 하고 깨닫고 있긴 하지만 말입니..(…)

5. 정리하며

지금까지 제가 사용해본 구인 방식을 중심으로 RPG 팀의 구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완전한 목록은 아니지만, 팀 구성에 들어가는 판단의 요소를 생각해 보고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내거나 개발하는 시작점으로 기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군요.

RPG 속의 일행

일행 개념은 진행자/참가자의 역할 구분, 주사위, 규칙책과 함께 RPG의 가장 오래된 전통에 속합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저는 일행 단위의 진행에 대해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1:1 플레이의 허와 실에서 다루었듯 일행에는 많은 장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서로의 부족한 점을 메꿔주는 분업이라든지, 여러 사람의 이야기와 인간관계, 발상이 엮여서 나오는 상승 효과라든지요. 또 현실적으로 참가자가 한 명을 넘어갈 때부터는 일행이 가장 편리한 단위이기도 합니다.

반면 RPG에서 다루는 이야기가 다양해지면서 일행 개념에 무리가 보이기 시작한 것도 사실입니다. 주인공들이 함께 몰려다니며 전투하는 미궁 탐사형 모험이라든지, 모두 같은 조직에 속해서 임무를 함께 하는 임무형 모험 등에는 일행 개념이 변함없이 유효합니다. 하지만 주인공들 사이에 그런 접점이 없이 각자의 삶이 있을 때 일행을 유지하기란 항상 쉬운 일은 아닙니다. 각자의 목적이 일치할 때는 함께 행동하기 좋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각 주인공의 동기와 이해에 따라 일행이 흩어지기 쉬운 것이지요.

일행이 깨졌을 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금 등장하지 않고 있는 주인공을 조종하는 참가자는 할일이 없다는 점입니다. 물론 주인공이 특정 장면에서 등장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될지는 몰라도 더 중요한 것은 참가자가 심심하다는 사실이겠죠. RPG는 뭔가를 하는 놀이이지 구경하는 놀이는 아니니까요. 이 ‘구경’ 부분이 너무 많아질 수 있다는 점이 일행이 갈라졌을 때의 문제점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일행 문제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각도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우선은 어떻게 하면 일행을 유지시키느냐, 두번째는 혹시 일행이 갈라지더라도 어떻게 하면 참가자가 지루하지 않을 수 있는가. 각 논점은 다시 규칙 내적인 해결 방법과 규칙 외적인 해결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1. 일행 유지시키기

1.1. 규칙으로 일행 유지시키기

규칙 내적으로 일행을 무조건 유지시키는 규칙책은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 얼음깨기 같은 경우  데이트를 다루는 규칙이므로 두 주인공이 함께 있지 않으면 게임 자체가 성립하지 않지만, 2인용이므로 일행 유지가 문제되는 인원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행을 유지시키는 규칙상의 수단이라면 강제하기보다도 유도하는 방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미궁 탐사라고 봅니다. 일행 전체의 분업을 통해서 보물을 획득하고 괴물을 잡는다든지요. 물론 시나리오의 구성에 따라서도 분업은 확보할 수 있는 등, 전반적으로 규칙 자체가 일행을 유지시키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1.2. 규칙 외의 수단으로 일행 유지시키기

규칙 외적 수단을 통한 일행 유지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우선 함께 행동할 수밖에 없는 설정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전에 아사히라님의 아루스 캠페인처럼 모두 같은 수사대 소속이라서 함께 임무를 해결한다든가, 제노시아님의 언더월드 캠페인 외전 중 제가 진행하는 ‘브루하 폭주전대’처럼  같은 특수부대 소속이라든가. 이 경우 주인공끼리 어느정도 갈등이 생겨도 왠만하면 일행이 유지된다는 점이 장점입니다. 아루스 캠페인 당시의 이단심문관 아론과 사제 레테, 아니면 폭주전대의 단순과격한 요한과 왕자병 환자 프란츠처럼 서로 으르렁거리는 사이라도 일행이 바로 깨지지는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행을 유지하면서도 주인공간의 관계를 심도있게 탐색할 수 있습니다. 반면 다룰 수 있는 이야기의 소재는 다소 한정되겠지요.

의무적으로 함께 일행으로 묶인 경우가 아니라도 각자의 이해관계나 목적이 일치해서, 혹은 휘말려서 함께 행동하게 되는 방법도 있습니다. 예전에 진행했던 라이테이아 캠페인이나 현재 참가하고 있는 제노님의 언더월드 3기가 그 예입니다. 각자 다른 생활이 있는 사람들이 공동의 적 때문에, 혹은 우연같은 농간같은(…) 상황 때문에 일행을 이루는 경우이지요. 이러한 방법을 쓸 때면 임무의 속박이 없기 때문에 주인공간의 감정적 갈등의 범위는 제한되는 느낌입니다. 어쨌든 싫어지면 (생존 같은 중대한 이유가 걸려있지 않은 이상) 헤어지면 그만이니까요.

또한 각자의 삶이 따로 있기 때문에 일행을 유지하는데 때로 논리적인 무리가 가기도 합니다. 라이테이아 때는 예언까지 동원해 가면서 좀 억지로 일행을 만든 감이 있고, 나중에는 그 예언을 실현시키기 위해 엄청난 우연을 동원시키기도 했죠. (참가자들이 저 진행자 미쳤나 하고 쳐다보면 당당히 예언을 가리키는 것입..) 이 접근의 장점이라면 다양한 설정과 성격의 사람들이 서로 엮이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 대개의 플레이에는 왠만하면 일행을 유지하자는 게임 외적인 합의가 깔려있습니다. 어쨌든 일행 개념을 전제로 한 캠페인에서 자꾸 주인공들이 따로 논다면 파토는 이미 성큼 다가와 있다고 봐도..(…) 결국 이 부분은상호존중과 상호합의라는 일반론으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2. 일행 없는 진행

일행 단위로 진행하는 모험에서도 일행이 어쩔 수 없이 갈라지는 때가 있습니다. 또 처음부터 일행 개념이 어울리지 않는 성격의 이야기도 있을 법 합니다. 역시 규칙 내외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2.1. 일행 없이 진행하는 규칙

제가 접한 RPG 중에서 일행 개념을 완전히 부정한 것은 ‘주인님과 함께’가 처음입니다. 이 경우 주인공들은 돌아가면서 하나씩 장면을 진행합니다. 다른 주인공이 등장해서 조력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선택사항이며, 기본적으로 진행 방식은 순차적입니다. 개개인의 인간성과 자기혐오 사이의 갈등이 중점인만큼 일행 단위 진행이 필요없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위에서 말한 참가자가 구경꾼이 되는 현상은 해결하지 못했다고 봅니다.

주인님과 함께의 전신격인 니코틴 걸즈도 일행 개념은 없지만, 대신 같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을 통해 다른 주인공의 이야기와 성공률에 어느정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반드시 모든 주인공을 참가시키는 것도 아니고 또 주변 인물과 피울 수도 있기 때문에 참가자의 참여가 규칙 자체적으로 확보되지는 않습니다.

트롤베이브 같은 경우 지도 중심 모험으로, 지도의 어느 지점에서 어느 지점으로 이동하고 있는지 지정하면서 모험을 시작합니다. (바빌론 베이브 캠페인 같은 경우 기원전 4세기경 중동 지도[503KB 그림 파일 직링크]를 사용하고 있지요.) 그리고 주인공들이 지도상에서 서로 다른 지점을 선택했을 경우 때로는 전혀 만나지 않은채 각각의 이야기로 진행할 수도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행동이 서로에게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하라는 것이지요.

재미있는 발상이긴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실행할지에 대해서는 지침이 없고, 참가자들이 다른 주인공들의 얘기에 제안을 통해 참여할 수 있다고 해도 자기 주인공이 나오지 않고 있을 때 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됩니다.

폴라리스 같은 규칙이 일행 없는 플레이를 진행하는 가장 모범적인 답안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한 참가자의 주인공이 나오는 장면에서 나머지 참가자들은 진행자의 전통적인 역할을 나눠가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기 주인공이 나오든 나오지 않든 모든 참가자는 규칙 자체적으로 주어진 역할을 가지게 됩니다. 진행자는 보통 참가자보다 할 일이 많다는 점에서 진행자 역할을 여러 사람에게 분배하는 것은 오히려 논리적이기도 합니다.

이는 한번에 한 주인공의 감정적, 극적 변화에 집중하면서도 다른 참가자들을 소외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좋은 해결책으로 보이긴 합니다. 다만 얼음깨기와 비슷하게 인원 제한이 있고 (3명이나 5명으로도 돌릴 수 있긴 하지만 4인이 이상적), 죽음과 타락이라는 매우 개인적이고 우울한 소재를 벗어나면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의문입니다. 또한 캠페인 전체에 거치는 계획이나 구성을 짜기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아르스 마기카 같은 경우 트루프 플레이라는 기법을 통해 일행이 갈라지는 문제를 해결합니다. 정확히는 일행이 깨지는 대신구성이 변하는 것이지요. 이 규칙에서는 마법사가 가장 강하고 비중도 높습니다. 반면 마법사만 나온다면 단조로워지기 쉽죠. 따라서모든 참가자가 각각 셋 이상의 등장 인물 (마법사, 전문가,일꾼 3종)을 제작하고 상황에 따라 바꿔가면서 연기합니다. 예를 들어마법사의 집회 때는 참가자 전원이 자기 마법사를 연기하면 되지만, 한명의 마법사만 여행을 떠난다면? 이때는 다른 참가자들의전문가와 일꾼이 따라가면 됩니다.

이는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따라가고 일행이 갈라졌을 때의 지루함을 해결한다는 점에서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봅니다. 반면 참가자가 한명의 주인공에게 애착을 가지고 있을 경우 인물을 바꿔가며 연기하는 것은 그다지 즐겁지 않을 수도 있으며, 바꿔치기하다 보면 진행이 혼란스러워질 수 있습니다.

2.2. 일행이 갈라졌을 때의 규칙 외적 해결 방법

이제 일행이 갈라져도 (혹은 처음부터 없어도) 지루하지 않을만한 방법 중 규칙과 상관없이 사용할만한 것들을 다루어 보겠습니다.

아르스 마기카 (Ars Magica)식으로 한명의 참가자가 여러 명의 주인공을 제작하는 것은 규칙이라기보다는 기법이므로 아르스 마기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보입니다. 이는 인물의 힘이나 비중 등의 ‘급’이 다른 인물들을 모두 플레이할 수 있는 접근법이기도 합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지금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는 참가자에게 주변 인물(NPC)을 주어서 연기하게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실제로 위에서 얘기한 아르스 마기카 트루프 플레이의 경우 가장 약하고 비중도 적은 일꾼은 진행자도 주변인물로 돌릴 수 있고 다른 참가자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인공과 주변인물의 경계가 흐릿한 유형입니다.

물론 참가자의 주변인물 연기는 인물의 성격이 갑자기 변한다든지 정보의 차이가 많이 난다든지 하는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시나리오에 기반한 진행일 경우에는 시나리오의 내용이나 주변 인물의 뒷이야기를 어느정도 참가자에게 알려줘야 할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결국 일행은 비록 RPG의 전통적인 요소이지만 필수불가결한 요소는 아니며, 일행이 있더라도 다루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어째 상당히 길어지긴 했지만..) RPG의 소재가 다양해진만큼 일행 개념도 좀더 다양하게 변해가고 다양한 방식으로 다뤄지겠지요.

정보관리에 대한 단상 3: 블로그

홈페이지가 정적인 정보의 고정적 게시수단, 게시판이 커뮤니티 형성과 토론의 도구라면 웹로그, 혹은 블로그는 공개 일기, 내지는 넋두리랄까요. 언제나 예외나 혼합형은 존재합니다만…

블로그의 장점

블로그의 장점이라면 첫째로, 게시판과 마찬가지로 웹에 대한 아무 지식이 없어도 웹상에서 바로바로 글을 올리고 편집할 수 있는 편의성입니다.

두번째, 가장 최근 글이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최근에는 어떤 답글이 달렸는지 알 수 있는 등 시사성 내지는 현재성이 뛰어납니다. 빠르게 흐르는 관심사와 의식의 흐름, 일상의 현재상태를 포착하는 사진과 같은 것이 블로그이지요.

세번째로, 게시판과 구분되는 특징이라면 그 개인성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블로그 작성자의 글은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답글은 밑에 작게 달리는 등 인터페이스 면에서도 그렇고, 보통 한 사람의 명의로 되어 있고 들리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잠시 들려가는 손님이라는 점에서 ‘자기 공간’이라는 느낌이 훨씬 강하달까요.

하지만 온라인이라는 특징 때문에 그 개인성을 기반으로 사회성 또한 뚜렷이 드러납니다. 타인의 블로그에 꼬리글을 남기고 아는 사람 블로그에 링크를 거는 등… 가장 정형적인 형태의 게시판은 커뮤니티의 공간이라는 느낌이 강하고, 관리자는 자기 공간을 관리한다기보다는 커뮤니티에 봉사하는 관리자입니다. 하지만 블로그 작성자는 자기 공간을 꾸미고 만들어 가며, 그러는 와중에 손님 접대(?)도 한다는 인상이 더 강합니다. 비유하자면 게시판은 휴게실, 블로그는 가정집의 응접실이나 부엌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웃음) 사회적인 공간이지만 그 영역과 색깔이 누구의 것인지는 분명하니까요.

다섯번째, 위의 세 장점의 결과로 블로그는 굉장한 자유성을 누릴 수 있는 매체입니다. 홈페이지 글을 작성할 때는 그 전체적인 성격과 정보 구조를 고려해야 하고 게시판 글을 작성할 때는 게시판 공동체에 비추어 그 적합성을 생각해야 한다면, 가장 기본적인 블로그는 신변 잡기에 대한 어떤 얘기든지 할 수 있는 일기장에 가깝습니다. 역시 공개 일기장이라는 점에서 최소한 지켜야 할 기준들은 있겠지만, 다른 웹 매체에 비해 글의 내용이나 질에 덜 얽매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블로그의 단점

이와 같이 효용이 많은 매체인 블로그도 만능은 아니라서, 대표적인 허점이라면 게시판과 비슷하게 정보의 구조화에 약하다는 점일 것입니다. 검색이나 분류 등의 기능을 많은 블로그가 제공하고 있지만 위에서 말한 자유성 같은 특징들의 결과로 그 효용은 불완전한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정보의 저장과 열람 수단으로는 부적합합니다.


적합한 용도

이상과 같은 이유로 블로그가 가장 적합한 용도는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들을 쏟아낼 수 있는 온라인 일기로서가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일기나 사진첩과 같은 이유로 나중에 블로그를 훑어보는 것은 그 자체로 새로운 자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삶 속에서 지나간 순간들, 그리고 시간의 틈새 속에서 느끼고 생각하는 자기 자신과 마주할 기회가 되니까요.

정보관리에 대한 단상 2: 게시판

게시판은 특히 인터넷상에서 공동체를 형성하고 토론하기에 좋은 매체입니다. 장점이라면 글이나 파일을 올리기가 쉽다는 점, 글과 그 글에 대한 답변이 하나의 보기 쉬운 단위로 묶이기 때문에 토론의 맥을 잡기가 좋다는 점 등이 있을 것입니다. 또 글을 쓴 다음에 FTP로 따로 올리는 게 아니라 넷상에서 바로 글을 작성하고 수정할 수 있다는 점도 편합니다. 포맷을 자동으로 넣어주기 때문에 HTML 지식이 필요없다는 점도 장점이지요.

반면 단점이라면 정보의 구조화에 약하다는 점일 것입니다. 분류 기능을 사용한다고 해도 기본적으로는 시간 순서 역순으로 늘어놓은 글들의 집합이고, 따라서 글이 많을수록 검색에 의존하게 되는데 사용하는 용어가 늘 일정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정보의 회수에도 의외로 틈새가 많죠. 결국 게시판 글은 오래될수록 그 가치가 떨어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활발한 게시판일수록 그때그때 서로 의견을 주고받기는 좋지만 정보의 장기 보관에는 부족한 점이 있지요.

그래서 게시판 형태가 적합한 용도라면 역시 토론과 의견교환, 친목도모(?)의 장으로서일 것입니다. 또 반드시 토론이 목적인 글이 아니어도 일반적인 홈페이지 제작에서 느끼는 어려움이나 번잡함을 피하기 위해 게시판에 글을 작성하기도 하죠. 저같은 경우도 세계관 자료라든가 번역 자료 등 많은 글을 게시판에 올린 바 있습니다. 게시판 규모가 크지 않으면 나름대로 편한 방법입니다만…역시 최선의 수단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보관리에 대한 단상 1: 홈페이지

RPG를 즐기는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정보의 공시와 관리라고 생각합니다. 홈페이지, 게시판, 블로그, 위키 등 웹상에서 정보를 관리하는 도구를 사용하면서 느낀 장단점과 효용을 간단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중 첫번째는 가장 기본적인 정보관리 도구라고 할 수 있는 홈페이지입니다.

홈페이지

홈페이지 혹은 사이트는 인터넷에 정보를 게시하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로, 대체로 내용은 정적이고 내용변환 권한자는 사이트 주인 한명이나 소수의 관리자로 제한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홈페이지의 장점이라면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1. 만들고 관리하기가 용이

홈페이지의 기본 형태는 정적인 HTML 문서이기 때문에 만드는 입장에서 이해하기가 좋고, 고치려면 문서를 고쳐서 다시 올리기만 하면 되므로 만드는 사람이 한두사람이라면 관리하기도 어렵지 않습니다.

2. 내용이 안정적이어서 항상 일정한 정보를 내보냄

정적이라는 점은 홈페이지의 단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장점이기도 하다고 봅니다. 같은 내용의 정보를 일정한 곳에 게시하기 때문에 그만큼 어떤 정보를 어디서 찾을지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3. 다른 많은 정보관리수단으로 통하는 관문 역할

홈페이지라는 매체의 안정성은 여러가지 다른 매체로 가는 관문으로서의 기능으로 이어집니다. 위키, 블로그, 다른 사이트 등으로 연결되는 링크를 한곳에 모아놓고 필요할 때마다 접속하기에 좋지요. 물론 위키와 블로그도 제공하는 기능입니다만, 인터페이스상 보통 홈페이지 매체가 각 링크에 대해 짧은 설명을 제공하고 링크를 내용별로 분류하기에 더 좋습니다.

반면 홈페이지의 약점이라면 다음과 같은 점이 있을 것입니다.

1. 공동작업에 부적합

관리자가 소수일 때는 괜찮지만 여러 사람이 공동작업을 진행하려고 할 때 홈페이지 형태는 불편한 경우가 많습니다. 홈페이지의 기본 형태는 문서를 작성해 FTP로 올리는 것인데, FTP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여러 사람이 가지고 있을 경우 보안에 문제가 생기기 쉽고 한두사람만 FTP 권한을 가질 경우 다른 사람들은 올리고 싶은 내용이 있을 때 일일히 관리자에게 부탁해서 올려야 하는 불편이 있습니다. 이 점을 해결하는 여러가지 도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취미 용도의 개인 사이트 수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단점이 있습니다.

2. 갱신의 불편성

관리자는 소수라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홈페이지의 내용을 바꾸는 방법은 문서를 작성하고 FTP로 문서를 올리는 것입니다. 내용을 웹상에서 고쳐서 바로바로 반영되는 것보다는 훨씬 불편하고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죠. PC를 곧 서버로 사용하는 경우라든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올리는 방법 등 역시 예외는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홈페이지 내용을 자주 변경하는 것은 귀찮은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홈페이지는 어떤 용도에 적합할까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크게 다음과 같은 쓰임입니다.

1. 정적 정보의 제공

연락처나 시간대, 크게 고칠 필요나 토론의 여지가 없는 글, 이미지 등 고정된 정보를 제공하기에 좋은 방법입니다. 캠페인 사이트인 Aldana Steel (영문) 같은 경우가 좋은 예입니다.

2. 정보의 관문

게시판, 블로그, 위키 등 사이트 내외의 다른 많은 정보로 링크하는 중앙 관문으로 사용하기에 좋은 수단이기도 합니다. 거의 어떤 사이트의 링크란을 봐도 그 효용을 알 수 있습니다. 블로그나 위키의 메뉴보다 넓은 공간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링크의 목적지에 대한 설명문이나 배너 등을 넣을 수 있는 점이 특히 눈에 띄는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3. 스크립트 도구

게시판, 블로그, 위키 등은 모두 기본적인 스크립트 틀을 제공하고 그 속에서 정보를 올리게 되어 있기 때문에 독립적인 기능을 가진 스크립트를 만들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형태입니다. 따라서 웹상에서 스크립트 기반 도구를 만들려면 완전히 백지 상태에서 시작하는 홈페이지 형태가 적합합니다. 제가 만든 겁스 경량판 CP 분배기 같은 경우가 그 한 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