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진행자를 위해

마스터링 – 준비와 진행, 관리

제가 처음 진행을 시작하면서 제일 막막했던 것은 어떻게 캠페인을 시작하고 지속하는지 하는 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 시작한 이래 이런저런 글을 읽어보고 나름 시행착오를 거친 결과 형성된 제 스타일이랄까,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준비

(1) 기획과 모집

캠페인을 준비할 때면 우선 어떤 규칙과 배경을 할지 생각해서, 그리고 동시성 플레이라면 시간대를 정해서
모집하는 방법을 선호합니다. 처음부터 ‘이런 플레이를 이때 한다’는 기반을 정해두면 취향과 시간대가 맞는 사람을 구하기가 한결
쉬워지니까요. 물론 언제나 이런 식으로 시작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만, 본격적으로 돌리려면 경험상 제일 좋은 방법이긴 하더군요.
이 시점까지 캠페인 내용이나 배경의 자세한 사항은 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분위기나 전형적인 진행 같은 건 막연하게 있을 수
있지만요.

(2) 제작

일단 사람이 모이면 주인공을 만듭니다. 보통 모두 함께 모여서 캐릭터를 만드는 세션을 하나 합니다.
이게 제가 보기에 준비 중 가장 중요한 과정으로, 배경과 성격 등 주인공에 대한 사항, 특히 이 캐릭터를 통해 표현하려는 로망 파악에
중점을 둡니다. 인물의 동기와 성격, 주변 사람과의 관계 등에 대해 해석이 일치하는지, 이 부분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은데
참가자 생각은 어떤지 등등 질문을 통해 인물 해석을 다듬고 조율합니다. 캠페인중 어떤 걸 보고 싶은지 하는 제안도 이때 많이
주고받을 수 있지요.

(3) 구상

다음, 캠페인 주요 조연과 시작 상황을 생각합니다. 주인공과 관련된 인물들을 끌어다가
이들의 목적,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을 생각해 이들이 어떤 상황을 만들지 생각해 봅니다. 주인공 주변 인물을 재해석하고 제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캠페인에 저 자신의 취향을 반영하고, 동시에 참가자들에게는 자신이 만든 설정에 새로운 해석과 의외성을 부여한다는
면에서 아주 즐거운 과정이죠. 또한, 주인공들의 과거와 목적, 극적 지향 등을 생각해 어떤 상황에 빠지면 재밌을까 궁리하면서 그
상황을 창출할 수 있는 인물들도 설정합니다. 그런 극적 상황에 등장할 만한 배경의 세부사항이 필요하면 설정해서 채웁니다. 이
과정에서 참가자들과 폭넓게 의견을 교환하려고 노력합니다.

이상이 준비 과정입니다. 단편이나 단기 플레이에서도
거치는 과정이지만, 캠페인보다는 짧게 지나간다는 차이가 있겠죠. 주인공을 만드는 과정은 좀 몰아붙이면(..) 30분 내에도 할
수 있고, 많이 몰아붙이면 5분 10분도 됩니다. (다만 거의 제가 만드는 것에 가까워져서 선호하지는 않습니다.) 상황과 인물
설정은 빨리 하려고 하면 주인공 제작과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서, 단편이라면 주인공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면서 머릿속에 슥슥
스쳐가는 것들을 가져다 씁니다.

2. 진행

(1) 원칙

플레이 들어가면 일단 시작 상황을 내놓고 참가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나 봅니다.
참가자들이 반응하면 거기에 따라서 다시 변화가 생기고, 저는 그 변화를 심리적 반응이든 물리적 반응이든 표현합니다. 그렇게
연쇄반응이 일어나면서 플레이가 굴러갑니다. 그러다가 참가자가 어떻게 할지 몰라서 플레이가 정체되고 그 반응의 연쇄가 끊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면 다시 참가자 배경에 있는 NPC 중 노는 애들(…)이 있나, 참가자 하나 이상이 좋아할 만한 극적 상황이
있나, 필요한 정보가 있나, 아니면 그냥 반응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있나 (“갑자기 닌자들이 뛰어듭니다!” “문을 열자 백작의 시체가 품 안에
쓰러집니다!”) 생각해서 다시 상황을 내놓고 연쇄반응을 일으킵니다.

(2) 문제 해결

이상적으로는 이렇게 해서 매끄럽게
나갑니다만, 어떤 때는 영 잘 안 풀릴 때가 있습니다. 극적 상황을 생각하고 배경 세계의 공백을 채우는 준비가 부족했는데
즉흥으로 만들어내는 것도 잘 안 되거나, 아니면 연쇄반응이 일어나긴 나는데 영 산만하고 재미가 없다거나. 그럴 때면 참가자들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뭔가 잘 안 되고 있는데 좋은 생각 없느냐고 말이죠. 이런 때 억지로 계속하면 꼭 후회할 일이 나서.. 물론
저는 재미없는데 참가자는 괜찮은 때도 있고, 저는 재미있는데 참가자는 지루한 때도 있으니까 이런 데서 의사소통의 중요성이 나오는
거겠죠.

3. 관리

세션이 끝나면 되도록 플레이에 대해 얘기해보고, 특히 플레이중 문제가 된 것이
있으면 꼭 논의합니다. 다음 세션 시작하기 전에도 첫 세션과 마찬가지로 하지만, 지나간 플레이의 사건을 고려한다는 점이
다르겠죠. 앞뒤가 안 맞는 데가 있으면 생각해보거나 의논해보고요. 특히 주인공에 대해서는 가끔 중간점검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극적 진행은 서로 만족스러운지 등등.

이런 식으로 하는 게 제 대체적인 스타일인 것 같습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 변형은 있지만, 기본 틀은 이런 식입니다.

사랑한다면 죽여버려라

본격 비정 에로 추리 음모 활극 로맨스 RPG…일 리는 없고 (퍽), 그저 캠페인을 진행하다가 느낀 것입니다. 제목은 제임스 패트릭 켈리의 Murder Your Darlings를 번역해본 것입니다.

진행자는 캠페인을 하다 보면 이런 장면이 나왔으면 좋겠다, 이런 전개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자기만의 ‘최상 시나리오’를 꾸미기 쉽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상이 커지다 보면 자칫 집착에 빠져서 스스로 생각하는 최상 전개에 반하는 참가자의 선택을 무의미하게 하는 등 독불장군식 진행에 빠지기 쉬운 것 같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피하는 데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캠페인에 대해 품은 자신의 상상과 최상 전개, 즉 로망을 참가자들에게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고 서로 얘기해서 조정하는 것입니다. 각 참가자 역시 자신이 바라는 로망이 있을 테니까 대화를 통해 서로 욕구를 조화하는 거죠. 세션 등지에서 얘기가 나오는 합의에 의한 플레이가 이런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방법이 바로 ‘사랑한다면 죽여버리기’입니다. 이런 장면이 나왔으면 좋겠다. 저런 전개가 되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대신, 모든 것을 플레이의 역동적 긴장 과정에 맡겨두고 그 결과에 놀라는 것을 스스로 즐기는 방향입니다.

이 두 가지 방식이 서로 정면 대치되는 것은 아니며, 어느 정도는 공통 요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합의 플레이를 논하면서 성일님은 의외성이 차지하는 위치 또한 얘기하고 계시죠. 또 저는 미리 합의한 계획보다는 밀고 당기는 플레이 과정에서 저절로 나타나는 결과를 중시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과정의 초기 조건 (인물의 동기, 판정 승패의 결과 등)에 대한 합의는 열심히 합니다. 욕구를 서로 터놓고 얘기해서 조화하는 것과 욕구대로 각자 다른 방향으로 당겨서 전혀 새로운 결과가 나오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 하는 중점의 차이일 뿐.

그래서 뭐, 현재 제 생각은 이런 식입니다. 어떤 장면이나 전개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 욕구가 캠페인에 대한 상상력을 지배할 정도로 커진다면 미련없이 죽여버리자. 어차피 참가자들의 욕구와 충돌해서 서로 깨지고 다듬어지면서 지금 상상하는 어떤 전개보다 훨씬 멋진 결과가 나올 테니.

만약 정 죽이지 못하겠으면 차라리 참가자들에게 이러이러한 전개를 하고 싶다고 솔직히 얘기해서 자신의 욕구가 실현되도록 협조를 구하는 게 나을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참가자가 진행자의 마음을 읽기를 기대하거나, 참가 기능의 핵심인 선택권을 제한당해 가면서 진행자가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른 채 닥치고 따라오는 걸 즐기라고 강요하는 진행은 재미없어지기 쉽다고 봅니다.

주인공과 조연

참가자가 제어하는 인물은 PC (Player Character), 진행자가 제어하는 인물은 NPC (Non-Player Character)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용법입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주인공’과 ‘조연’이라는 용어를 선호합니다. 영어로는 PC는 Protagonist Character, NPC는 Non-Protagonist Character라고 치환해서 생각하고요. 뭐 의미는 좀 중첩됩니다만…

어쨌든 용어를 한글화하는 의미도 있지만, 제가 PC와 NPC를 주인공과 조연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제로 PC는 주인공, NPC는 조연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적 의미가 큽니다. 진행자야 배경 세계 자체를 운용하고 인물도 많이 있지만, 참가자는 보통 하나씩의 인물밖에 없고 그들이 플레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길은 그 인물을 통하는 방법뿐입니다. 따라서 참가자 인물이 플레이의 초점이 아니라면 참가자가 참여할 수 있는 여지는 심각하게 줄어듭니다. 심하면 참가의 의미가 없을 정도로요.

그래서 진행자의 실책 중에서도 가장 악명높은 것이 바로 ‘GMPC’인 것 같습니다. GMPC란 진행자 인물인데 주인공인 경우를 가리키는 것으로, 진행자는 이 인물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어떻게든 이 인물을 돋보이게 하려고 참가자 인물을 들러리로 전락시키죠. 종종 플레이를 정해진 길로 이끌려는 용도도 있으며, 이때는 또 다른 악명높은 진행자 실책인 ‘일방통행식 진행’까지 겹칩니다. 오직 진행자의 자기만족만을 위하기 때문에 이런 인물을 사용하는 것은 RPG의 사회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며, 실책일 뿐 아니라 굉장한 실례라는 것은 길게 얘기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물론 GMPC는 극단적인 예일 뿐, 참가자 인물의 주도권을 확보하고 진정한 주인공으로 유지하려면 ‘GMPC를 만들지 않는다’ 같은 당연한 지침 외에도 주의할 것이 많습니다. 어쨌든 진행자 인물은 꼭 필요하고, 개중에는 주인공보다 능력이 뛰어나거나 권력이 강한 인물도 있는 것은 당연하니까요. 또 조연의 도움이 필요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일행에 따라붙기도 합니다. 진행자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인물도 있을 수 있고요. 이러한 요소에 저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대응합니다.

1. 주인공보다 뛰어난 조연

능력이나 권력, 정보력 등이 주인공보다 뛰어난 조연은 일단 주인공 일행하고는 좀 거리를 두려고 합니다. 이런 인물은 자기 일로 바쁘니 주인공 일행 일에 시시콜콜 참견할 시간이 있을 리 없죠. 따라서 주인공 일행과 만나는 것은 그쪽에서 불렀을 때, 혹은 주인공 일행이 찾아갔을 때뿐이고, 이렇게 하면 일단 등장 빈도 면에서 그들이 주도권을 잡을 가능성은 줄어듭니다.

심리적 거리를 두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눈에 띄게 뛰어난 조연은 주인공의 적, 혹은 완전히 믿을 수는 없는 협력자 정도가 적합한 것 같습니다. 완전히 믿을 수 있다면 주인공이 그들에게 의지하거나 아니면 모든 문제 해결을 위해 진행자가 그들을 동원할 유혹이 커지니까요.

적이라면 이길 방법이 없는 적이어서는 안 되고, 그 과정이 어렵더라도 방법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니면 최소한 무시해도 상관없는 적이어야겠죠. 신뢰가 안 가는 협력자는 제가 특히 좋아하는 유형인데, 어디까지 믿고 어디까지 이용할 수 있을지 판단의 근거가 있되 그 판단이 쉽지 않다면 그 자체가 상당한 게임적 재미일 수 있죠. 우리 편이긴 우리 편이되 감정적으로 사이가 나빠서 완전히 믿을 수 없는 변형도 극적 재미를 더해줍니다.

이렇듯 자신보다 뛰어난 존재이되, 의존하는 대신 주시하면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조연은 극적, 게임적 긴장감의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주인공은 뛰어난 조연의 그림자에 묻히는 대신 그 조연들과 극적으로 대등한 위치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는 위치가 되지요.

때로는 주인공보다 뛰어나고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조연도 있습니다. 후원자가 그 대표적인 예이겠지요. 이럴 경우는 그가 주인공에게 줄 수 있는 도움에 뭔가 제한을 걸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위에서 얘기했듯 바쁜 사람이라든가 (못 만나게 막는 비서를 막무가내로 돌파해서 들어가자 그 어른이 오히려 반가워하면서 비서를 질책하더라… 같은 고전적인 진행도 한 번쯤 해볼 만 하죠), 도움에 뭔가 대가가 따른다든가, 후원자도 사람인 만큼 속수무책인 영역이 있다든가, 오히려 이 일에서는 후원자가 주인공의 도움이 필요해서 의뢰를 했다든가, 등등.

즉 믿을 수 있는 뛰어난 조연은 의존도가 너무 커지지 않도록 그 능력과 영향력에 제한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뭐 사람인 이상, 심지어는 신이라 해도 뭔가 제한이 있는 건 너무 당연하니까 (신의 속성이나 영역, 그리고 무엇보다 바쁜 일정!) 전혀 어려운 일은 아니지요.

2. 조연의 도움이 필요할 때

주인공에게 조연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확고한 원칙이 있습니다. 아쉬운 놈이 우물 판다. 아쉬운 사람이 주인공이라면 조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주인공이어야 합니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괜히 나타나서 ‘너네 내가 필요하지? 음하하하 여기 왔도다!’ 할 필요가 없습니다. 조연의 조력을 조연 자신이 주도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건 차치하고라도, 주인공에게 그만큼 주도권을 빼앗는 행위입니다. 주인공이 주도해서 조연을 불러들인다면 조연은 참가자가 판단해서 활용하는 게임적 자원일 뿐이지만, 조연이 스스로 나선다면 문제 해결의 능동성이 조연에게 넘어가니까요.

자기 판단 하에 주인공이 조연에게 도움을 청하려면 물론 주인공이 필요할 때 주인공이 조연에게 연락할 방법이 있어야 하고, 이것은 플레이 내에서 참가자에게 어느 정도 판단과 운신의 여지가 있어야 한다는 일반 원칙으로 돌아갑니다. 또 연락 가능 여부가 진행자 멋대로 달라지지 않고, 이런 때는 연락이 되고 이런 때는 안 되겠다고 참가자가 판단하거나 최소한 이해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건 또 RPG의 게임성과도 연관이 깊겠죠.

어떻게 보면 위에서 얘기한 뛰어난 조연도 같은 맥락입니다. 바쁘다거나, 완전히 믿을 수 없다거나 하는 이유로 조연의 능력에 대한 활용에 뭔가 제한이 붙으면 참가자는 이러한 장애를 극복하고자 의사 결정을 해야 하고, 그만큼 주도권은 참가자와 주인공에게 넘어갑니다. 참가자의 판단, 주인공의 행동이 필요 없이 도움이 무조건적이라면 주도권은 반대로 진행자와 조연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물론 부르지도 않았는데 조연이 멋대로 따라와서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소설이나 만화에서 흔히 보는 일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럴 때도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일반 원칙은 변하지 않습니다. 목마른 쪽이 주인공보다는 조연일 뿐이죠. 즉, 부르지도 않았는데 와서 도움을 준다면 그건 조연 자신의 목적이나 주인공에게 받을 수 있는 대가를 위한 것이지 순수하게 주인공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행동은 아닐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도움을 주겠다는 조연으로는 주인공 일행을 따라가서 모험을 해보려는 열혈 소년이라든지, 주인공 중 하나에게 접근해 보려고 수작을 거는 아저씨라든지, 정보를 캐내려는 첩자, 보물을 가로채려는 도둑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조연의 목적은 참가자가 의사 판단을 해서 이용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또 다른 자원, 혹은 장애가 되고, 그만큼 플레이의 내용은 풍부해집니다. (‘좋아, 넌 오늘부터 짐꾼이다!’ ‘저 귀찮은 인간을 어떻게 떼어놓지?’ ‘그때 마주친 게 정말 우연이었을까?’ ‘도와주겠다는 말을 믿어도 될까?’) 그러려면 그러한 의도나 목적을 알려주거나 알아낼 여지를 줘야 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인공은 이유도 없이 불쑥불쑥 나타나서 좋건 싫건 도와주는 조연에게 치여서 플레이의 주도권을 잃을 테니까요.

마지막으로, 조연이 도움을 준다 하더라도 그건 도움일 뿐 조연이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조연이 처음부터 끝까지 해결해도 좋은 문제라면 주인공이 다른 활약을 하는 동안 무대 뒤에서 처리하고 (“의뢰하신 총은 다 만들었으니까 와서 찾아가세요.”), 플레이상 직접 드러나는 활약은 주인공이 하면서 조연이 보조하는 정도여야 하죠. 보조적인 역할을 한다든가, 혹은 주인공이 개입을 해야 한다든가 하는 게 좋습니다.

주인공이 조연의 도움을 받은 최근 예로는 포도원의 제다이 플레이 중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었습니다. 주인공 제다이 일행이 도시에서 잠적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들은 젊은 시스 하나를 어찌어찌 주워서 데리고 있었는데, 도시의 뒷골목에 익숙한 이 청년에게 주인공 하나가 주도적으로 얘기해서 숨을 곳을 마련하게 했죠.

자락스 토레이: “아를란. 이 주위에 이만한 인원이 조용하게 숨을곳 없나?”
로키: “이..이 주위에? 없진 않지만 좀 동네가..”
로키: 아를란은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는군요.
자락스 토레이: “이 주위에서 활동했으면 당연히 숨을곳 정도야 여기저기 스승 모르게 마련해뒀을 거 아냐. 내놔봐. 지금 난리가 났다고.”
로키: “알았어.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그는 주소를 하나 말합니다.

캔티나 지하실인 은신처를 이용하려면 캔티나 주인과 교섭해야 했고, 이 사람은 아를란이 아는 사람이었죠. 하지만, 아를란의 주도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마음에 내키지 않았습니다. 아를란의 역할은 캔티나를 찾아내고 주인과 연결하는 정도로 끝내고 싶어서 교섭 장면은 다음과 같이 진행했습니다.

로키: 아를란은 이곳에 있는 은닉처에서 지내고 싶다는 눈치를 주지만
로키: 신문을 봤는지 로디안은 꺼리는 낌새군요.
로키: 아를란은 설득하다가 슬슬 참을성이 떨어져 가고..
로키: 자칫하다 싸움이라도 벌이면 큰 소동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센 테즈나: @아를란의 어깨를 잡고 진정시킨 다음 입을 엽니다.
센 테즈나: “충분히 사례는 하겠습니다. 반대로 그쪽이 비밀을 지켜 주신다면 그게 더 좋은 일일 거라 봅니다만.”
센 테즈나: “이미 이곳으로 저희가 들어오는 걸 본 사람이 있을 테니 그게 알려지면 이쪽의 행적을 알기 위해 누군가 추적을 해올지 모르는 일이죠.”
로키: “그건 협박이오?” 로디안은 툭 튀어나온 검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묻는군요.
센 테즈나: “아니요, 조언입니다.”

주목도도 낮추고 시간도 절약할 겸 조연끼리의 대화는 요약하고, 아를란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해서 센의 개입이 필요하게 했습니다. 물론 개입하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랬더라면 실제로 싸움이 나서 문제는 더 커졌겠죠. 센의 개입 시점부터는 다시 직접 화법으로 전환해서 주목도를 높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조연의 도움은 주인공이 스스로 활용하는 자원이 되고, 조연의 활약이 있어도 주도권은 주인공에게 두는 것이 제 방침이라면 방침입니다.

3. 일행에 따라붙는 조연

가장 위험한 경우 중 하나로, 위에서도 얘기한 아를란과 관련해 고민과 토론이 들어간 부분이기도 합니다. 진행자도 사람인지라 때로는 자기가 관심 있는 인물을 돋보이게 하고 싶고, 그건 자칫하면 참가자와 이해 충돌 상황이 되기 쉬우니까요. 이 인물이 플레이의 중심인 일행에 상주하면 이해 충돌은 한결 심해집니다. 가장 극단적인 경우가 위에 말한 GMPC겠죠.

하지만, 이럴 때도 주도권은 참가자와 주인공에게 있어야 한다는 일반 원칙만 기억한다면 의외로 해결은 간단한 것 같습니다. 우선 일행에 합류 여부를 진행자가 아닌 참가자가 결정하게만 두어도 문제는 대부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참가자끼리 의견이 갈릴 때일 테니, 참가자가 몇 명이나 찬성해야 하는지, 미온적인 사람은 어느 정도 찬성해야 할지 등 의사결정 과정상의 문제도 있지만요.

일단 일행에 합류하면 역시 조연에게 도움을 받을 때와 마찬가지로 조연의 활약은 원칙적으로 주인공 주도로, 활약 정도는 무대 위에서 주인공을 보조하거나 무대 뒤에서 귀찮은 일을 처리하는 정도, 조연 자신이 능동적으로 활약할 때는 조연 자신의 이유로… 같은 사항을 기억하면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일행과 행동을 같이하는 특수 상황 때문에 조연이 행동하는 이유가 일행의 목적과 부합하는 경우도 많아질 것이고, 그런 식으로 쌓이는 신뢰와 감정적 유대는 플레이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할 수 있죠.

결국, 중요한 건 주인공을 더욱 주인공답게 하는 조연인가, 아니면 주인공에게서 주도권을 빼앗는 조연인가 하는 문제일 뿐, 일행 상주 조연도 전자라면 잘 운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행자로서는 진행자의 재미뿐 아니라 참가자의 재미까지 일부 누린다는 점에서 색다른 즐거움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또 일행 상주 조연은 분위기를 띄우는 용도라든가 자잘하게 써먹을 데도 있고요.

로키: 숙소로 돌아와 문을 열자..
로키: 순간적으로 쿵쾅거리는 음악과 함께 마치 물흐르듯 움직이는 색색의 트윌렉 댄서들의 홀로 이미지가 방안에 가득하군요.
로키: 세 사람이 돌아온 것을 보고 아를란은 황급히 동영상을 끕니..

4. 진행자의 마음에 드는 조연

다른 항목과 겹치는 때도 많지만 개념적으로는 별개로 진행자 자신이 어떤 조연에게 굉장히 흥미가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플레이에 자꾸만 끌어넣고 싶고, 이 인물의 갈등이나 고뇌를 보여주고 싶고 말이죠. 이러한 사항을 참가자가 대응 가능하고 플레이 맥락에 어울리는 형태로 잘 엮는다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참가자들이 별 관심도 없고 플레이 내용을 깎아먹는데도 자꾸 이 인물에게 주목하고 싶어진다면 문제가 큽니다. 관심도 없는 사람에게 대화 맥락과 상관없이 자기 옛날 캠페인이나 인물 얘기를 늘어놓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 행동이지요.

참가자 개입이나 플레이의 요구와는 상관없이 그 인물 자체에 가는 관심이라는 면에서 이런 식의 흥미는 진행자로서 게임 요소에 갖는 흥미라기보다는 소설가가 소설 속의 인물에게 갖는 흥미에 더 가깝습니다. 따라서 제 개인적인 해결책은 비교적 간단합니다. 그냥 소설 씁니다. (…) 얼마 전에 썼던 포도원의 제다이 캠페인 배경 소설들이 그 예입니다.

이렇게 하면 진행자의 순전히 개인적 흥미에 귀중한 플레이 시간을 소모하지도 않고, 공개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 미리 공개해서 플레이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주인공이 알 수 없는 내용일 때는 참가자와 주인공 지식 분리가 필요할 것입니다만, 그건 제 경험상으로는 대체로들 잘 하니까요.

진행은 세계 만들기, 문학 등 다른 창의적인 활동과도 관계가 깊으니, 플레이 진행을 벗어나 창의성을 다른 방향으로 배출하는 것도 문제는 없다고 봅니다. 다만, 세션 진행을 하는 시간에는 진행자로서 행동해야겠죠. 진행자의 역할이란 자신의 개인적 창의성을 일방적으로 발산하는 것이 아닌, 그 창의성을 기반으로 참가자들이 함께할 수 있는 사회적인 놀이의 판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가자가 참여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방법은 주인공을 통하는 것이므로 그 주인공의 주도성을 보존하는 것이 참가자의 참여를 확보하는 것이며, 이것은 참가자의 당연한 요구인 동시에 진행자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진행자에게 도움되는 것 (1) – 단편

진행자가 발전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가끔 글을 올려보려고 합니다. 배울 자세만 되어 있다면 사실상 어디서든지 배울 수 있는 것이 진행 기술이기 때문에 ‘진행자에게 도움되는 것’이란 의미가 없을 정도로 넓은 범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용감히(?) 제 경험상 이러이러한 것들이 도움되더라 하는 얘기를 해보고 싶군요.

링월드로 유명한 공상과학 작가 래리 나이븐 (Larry Niven)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작가는 단편을 쓰면서 배운다. 계속해서 단편을 써라. 돈이 되는 건 소설이지만, 단편을 계속 써야 글이 날렵하고 예리하게 유지된다.

진행과 문학 사이에 중대한 차이가 있다는 점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지만, 이 말의 기본 원리는 진행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장기 캠페인의 신화라는 글에서 다루었듯 대개 규칙이나 RPG인의 기대치는 장기 캠페인을 상정하고 있지만, 장기 캠페인을 기본으로 잡고 있다고 해도 단편을 진행함으로써 진행 기술을 다듬고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단편은 시간과 완급의 감각을 길러줍니다. 제한된 시간 내에 이야기를 완결지어야 한다는 단편의 특성상 진행이 늘어지지 않는지, 시간 활용이 비효율적이지 않은지 자신의 진행을 돌아볼 계기가 되죠. 시간적 제약 때문에 지루한 부분은 과감히 뛰어넘는다거나, 간단하게 요약한다거나, 장면을 적절히 끊는다거나, 참가자가 헤매고 있으면 바로잡아준다거나 하는 판단이 특히 중요해집니다.

이러한 완급 조절과 시간활용 기술은 당연히 장기 캠페인의 재미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긴박감과 같은 분위기 연출은 완급과 장면 맺고 끊는 기술에 많이 좌우되고, 아무리 잘 짜인 내용도 진행이 늘어지면 재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불행히도 이것은 이론적으로 시간이 무제한인, 혹은 최소한 시간적 여유가 많은 장기 캠페인에서 빠지기 쉬운 함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단편의 제약 속에서 기르기 좋은 기술이기도 하지요.

또한, 단편은 구성력에도 도움이 됩니다. 전형적인 장기 캠페인의 재미가 웅장한 규모에 있다면 전형적인 단편의 재미는 긴장감 있고 기발한 구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편은 일정한 시간 내에 모든 이야기의 요소를 매듭짓고 정리하는 연습을 하는데 아주 좋다는 것이 제 경험입니다. 장기 캠페인에서 이번 세션 내에 매듭짓지 못한 것은 다음 세션에 해도 된다면, 단편에서는 다음 세션이란 없으니까요.

장기 캠페인과 단편의 구성은 물론 여러 가지로 다르지만 장기 캠페인 역시 짧은 이야기 단위의 연속인 경우가 많습니다. 단편 혹은 단기 캠페인의 연속과 구분되는 특징이라면 그 이야기 단위들 사이의 연속성이겠지만, 단편에서 익힌 구성력은 장기 캠페인에도 그대로 적용할 여지가 많은 것입니다. 장기 캠페인을 위해 추가할 부분이라면 그 이야기를 딱 끊는 것이 아니라 다음 이야기의 여지를 열어 놓고, 몇 가지 줄기를 계속해서 끌고 가는 정도겠죠.

이와 관련해서 단편을 진행하는 것은 규모에 대한 감각을 기르는데도 도움이 됩니다. 단편에서는 이야기 규모가 크면 정해진 시간 내에 완결을 볼 수 없으니 (배경은 규모가 크다 해도 플레이에서 다루는 건 그 작은 일부밖에는 될 수 없죠) 적절하게 플레이의 규모를 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감각이 잘 발달하면 장기 캠페인을 할 때도 대책 없이 규모를 키우는 현상을 피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단편은 또한 장기 캠페인보다 시작하기가 쉽다는 점에서 장기 캠페인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진행 경험을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 됩니다. 저도 한동안 캠페인 없이 단편만 연속적으로 하던 때가 있었죠. 진행은 사실 하면서 배울 수밖에 없는 것인지라, 시작하는데 부담이 비교적 적은 단편은 진행 경험을 쌓는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중요한 학습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단편은 현재 캠페인을 진행 중인 진행자에게도 기분전환이 되어 줍니다. 위에서 다룬 것과 같은 시간적 제약과 그로 말미암은 도전은 현재 진행 중인 캠페인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새로운 시도를 함으로써 권태와 지루함을 피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야말로 단편의 가장 중요한 혜택이 아닌가 합니다. 진행자 자신이 지겨워서야 캠페인이 재미있을 리가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진행자가 갑자기 이상한 단편 하자고 조르면 참가자들은 이해하고 협력해줘야 하는 겁니..(퍽)

단편은 분명히 장기 캠페인처럼 인물과 이야기를 오랫동안 유지하면서 그 변동을 지켜보는 재미는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남는 게 없는 단발적인 재미뿐이라고 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좋은 단편은 좋은 장기 캠페인 못지않게 긴 여운을 남기며, 진행자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도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봅니다. 긴장감 있고 날카로운 진행, 번득이는 구성, 새로운 시도와 자극은 단편의 재미이기도 하고 어떤 캠페인에든 적용되는 진행자의 미덕이기도 하니까요.

참가자의 선택에 대하여

CB마스터님의 이 글을 보고 떠오른 생각들입니다. (주거니 받거니.. 왠지 게시판 토론 삘이?) 특히 다음 부분이 인상에 남더군요.

다만 이런 방식을 쓸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는 게, 예상하실 수 있듯이 캠페인의 주도권이 대부분 마스터에게 넘어갑니다. 마스터
머릿속에서 이미 캠페인 엔딩까지 결정이 다 돼 있고 PC는 거의 마스터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식이 돼 버리기 쉽더라구요. 앞서 말했듯이 마스터가 먼저 마련한 배경은 오히려 높은 수준의 자유도를 보장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행동을 해도 마스터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게 돼 있다’는 걸 아는 (또는 그렇게 생각하는) 플레이어들은 곧잘 수동적인 대응만을 하게 됩니다.

RPG의 게임성에 대한 글에서 다루었듯, RPG의 재미는 의사결정과 그에 따라 달라지는 결과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참가자가 그렇게 느끼는 것이지만, 사실과 일치하는 인상을 주는 것이 제일 쉽다는 면에서 두가지는 겹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CB마스터님의 글에서 알 수 있듯 선택의 여지, 혹은 그 인상을 확보하는 것이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특히 인물 설정이나 지금까지의 사건에 비추어 선택이 뻔하고 어떻게 해도 진행자의 손안에서 놀 뿐이라고 생각되면 참가자는 자신의 선택에서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될 위험이 있습니다.

저도 그런 경험이 있었는데, 2005년 말에 진행했던 라이테이아 전기에 나온 케사르라는 주인공이 그 예였죠. 케사르는 설정상 연쇄살인(..) 전적이 있는 청년으로, 찾던 친부모를 마침내 만나지만 친부모가 갓난아이였던 자신을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키워준 요정족의 숲을 구하려면 자신을 버렸던 아버지의 후계자가 되어야 하는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극적인 상황이긴 했지만 사실 선택의 여지라는 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궁지를 넘어 주인공을 거의 함정으로 몰아넣은 셈이었으니까요. 좀더 운신의 폭이라든지 권력기반이 있었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볼 수도 있었겠지만 7회짜리 단기 캠페인의 시간제한도 있었고, 케사르에게는 아버지에게 대항할 기반도 부족했죠. 결국 그는 아버지 앞에 무릎꿇고 손에 입을 맞추며 후계자가 되겠다고 맹세함으로써 숲의 아들로서의 자신을 버립니다.

참가자분의 적극적인 협력으로 지금 생각해도 멋진 장면이 나오기는 했지만, 사실 저 상황에서 참가자분이 ‘에잇 선택의 여지 따위 없잖아! 알았수다. 후계자 합죠 뭐.’ 라고 반응했어도 진행자로서는 크게 할말은 없었던 상황이기도 합니..(..) 그만큼 저런 선택의 여지가 없는, 혹은 극히 적은 상황설정은 최대한 아끼거나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어떻게 보면 인물 설정이라는 또다른 ‘선택’의 결과라고 볼 수도 있고, 그래서 참가자의 이해와 협력이 있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플레이 내에서의 선택이 제한되는 것은 틀림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이와 같이 참가자의 선택의 여지가 줄어드는 원인은 무엇이고,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원인에 대해서는 링크한 CB마스터님의 글과 얼마전에 천승민님이 다셨던 댓글이 실마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즉 진행자가 뭔가 ‘준비’했고, 어떤 결과를 ‘예상’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참가자의 선택권을 줄이는 게 아닌가 하는, 어떻게 보면 기운빠지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 라이테이아 전기 때 제 경험이 그랬습니다. 특정한 결과를 예상하고 상황을 만들다 보니 참가자들을 자꾸 그쪽으로 몰고 가는 느낌이 강하게 들더군요. (요정숲을 구하기 위해 희생해야겠지? 아직 이유가 부족해? 자, 여기 또다른 이유가 있다! ..) 그러다 보니 참가자들도 눈치채고 진행자의 눈치를 보면서 자신의 선택을 스스로 줄여가는 게 아니었을지… 아마 그렇기 때문에 포도원의 개들 (Dogs in the Vineyard), 과거의 그늘 (The Shadow of Yesterday) 등 많은  인디 RPG들이 어떤 사건의 진행이나 귀결을 절대로 정하지 말라고 진행자에게 조언하고 있는 것이겠죠.

이러한 선택의 제한, 내지는 부정을 극복하는 법 역시 천승민님의 댓글 중 두번째에서 그 실마리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젠 아주 대놓고 남의 댓글을 우려먹고 있습..) 즉 모든 사건을 준비하는 대신 초기 상황설정 외의 부분은 개방형으로 해놓고 참가자의 선택에 따라 귀결을 실제로 ‘만들어’ 가는 것이 참가자의 선택을 최대한 확보하는 한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제 경험으로 예를 들면, 최근 진행하고 있는 포도원의 제다이 캠페인에서 첫 마을이었던 셀렌의 진행이 정말 아무 결과도 생각하지 않고 초기 세팅만 해둔 경우입니다.(주:다크포스 진행표는 포도원의 개들 원래 규칙에 나온 것을 찰스 페레즈씨가 스타워즈용으로 고친 것입니다. 페레즈씨의 글은 이곳에.) 포도원의 개들 같은 경우 저런 진행표를 통해 결과를 정하지 않은 개방형 진행을 지원합니다만, 사실은 어떤 규칙이나 캠페인에든 적용 가능한 것이기도 하죠.

이 진행표에서 정해진 것은 제다이들이 오기까지 마을에서 무엇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제다이들이 오지 않는다면 상황이 어떻게 귀결될지. 그리고 몇몇 조연과 이들이 제다이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정도밖에 없습니다. 이 상황에 제다이들이 들어와서 일으키는 변화에 저는 조연들의 입장이 되어 그들 각자가 바라고 생각하는 바에 따라 반응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캠페인 내의 모든 사건은 제가 정했기 때문이 아니라 참가자들이 선택했기 때문에 그 결과로 나타나게 되고, 그 차이는 상당히 크다는 것이 제 경험입니다.

이 방식의 한가지 치명적인 약점이라면 자칫 참가자를 막막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뭔가 엄청난 상황은 있는데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알 수가 없으면 그건 선택의 폭이 너무 커서 결국 선택의 폭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어 버리죠. 따라서 참가자에게 이 상황을 이렇게 이끌기 위해서는 이러이러한 일을 해야 한다는 과제가 보이도록 실마리를 잡아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단 참가자가 할 수 있는 일만 보여주면 그때부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나갈지는 참가자가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 참가자가 적극적일수록 실마리는 조금만 주고 참가자가 창의적으로 방향을 창출할 수 있고, 참가자가 소극적일수록 실마리를 뚜렷하게, 많이 줄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장소, 인물, 초기 상황 설정만 하면 된다는 면에서 진행자의 부담감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시나리오식 진행보다 준비가 더 들어갈 수도 있다는 점도 유의사항입니다. 일단 시나리오가 짜지면 그로 인해 참가자가 접할 수 있는 장소와 인물이 어느정도 정해지는데 반해 참가자가 (이론적으로는) 어디든 가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면 준비해야 할 장소와 인물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니까요.

여기에 유의미한 제한을 가하고 진행자 머리가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서 상황이 중요해진다고 봅니다. 지금 상황이 살인사건의 해결이라면 실마리가 그쪽으로 이어지지 않는 한 갑자기 스트립바를 가진 않을 테니까요. (..가려나요?) 따라서 상황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적절히 던져서 이미 준비된 장소와 인물로 이끄는 진행의 일반 기법이 중요해지고, 이것은 위의 ‘참가자 막막하게 만들지 않기’와도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아, 피해자하고 마지막으로 얘기한 사람이요? 그건 옆집 루시였죠, 아마.’ 하는 증언이 있으면 이미 설정이 된 인물인 옆집 루시를 찾아갈 테니까요.

그렇다면 결국 진행자 손안에서 노는 것이 아니냐는 반문도 가능하겠지만, 저는 좀 다르다고 봅니다. 진행자는 특정한 상황을 주고 그 상황 속에서 운신할 수 있는 수단을 쥐어줄 뿐, 그것을 어떻게 활용해서 어떤 결과를 낼지는 참가자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과는 정해진 것이 없이 참가자의 행동과 그에 대한 반응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참가자 선택은 사건의 귀결에 하나하나 충실하게 반영됩니다. 누구에게 어떤 투로 얘기했는지부터 누구를 범인으로 지목했는지까지. 그것이 바로 참가자가 선택의 여지를 갖는다는 말의 의미 아닐까요.

물론 이것은 저같은 경우 이렇게 하니까 참가자 선택 여지가 커지더라… 하는 경험담일 뿐이지 모든 경우에 이렇다거나 모든
캠페인이 이래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완성도 높은 줄거리라든지 특색있는 세트와 같은 요소를 즐기는 데는 부적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참가자의 선택에 의해 유동적으로 만들어지는 이야기는 미리 정해진 줄거리의 철저한 완전성은 부족할 테고, 완벽하게
준비된 세트는 참가자들이 있는지도 모른채 안 가거나 부숴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결국 진행 방법을 결정할 때는 RPG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재미들을 서로 저울질할 수밖에 없고, 저같은 경우 그중 참가자
선택의 극대화를 택했을 뿐입니다. 현재까지는 참가자들이 만족을 표시하고 있으므로 유지할 생각이며, 이것은 어떤 진행 방법이든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놀이인 RPG에서 ‘재미’보다 우선할 수 있는 가치는 어디에도 없고, 모두가 재미있다면 그것이 곧 좋은
방법이니까요.

신호 중심 진행의 간단한 예

1396136916.html

설정 중심의 캠페인 제작이라는 글에 나온 신호 중심의 진행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려고 합니다. 전에 재밌게 봤던 CB마스터님의 세션 준비 글과도 관련이 있어 보여서 엮인글로 올립니다.

구체적으로 신호라는 뉘앙스를 캠페인으로 응결시키는 방법은 많은 직관적 비약과 주관성이 들어가는 과정인지라 설명하기가 좀 어렵지만, 비교적 간단한 1:1 단편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다 뻔한 얘기입니다만, 로빈 로스씨가 말했듯 뻔하거나 습관적인 것도 그 과정을 분석함으로써 배울 수 있는 것이 있게 마련이니까요.

사용할 예는 구네님과 재작년쯤에 진행한 즉석 단편, ‘영혼의 우물’입니다. 구네님의 주인공 칼은 사냥꾼인 아버지와 형과 숲에서 살다가 모험을 떠난 모험가로, 명성을 쫓아 여행하다가 아버지의 장례식에도 참석을 못해서 형과 사이가 틀어졌죠. 여기서 도출되는 구체적인 신호는 일단 형, 어쩌면 숲. 좀더 추상적인 신호는 모험, 모험 경험에서 형성된 능력과 성격, 형과의 갈등, 가족에 대한 의무 등.

여기에다가 진행자인 저의 목표를 첨가하자면 고전 동화의 환상적인 분위기, 이미 밤새 RPG를 한 대미(..?)를 장식하는 시점이었으므로 무겁지 않은 가볍고 재미있는 분위기, 그러면서도 얄팍하지 않은 내용 정도였죠. 이렇게 참가자가 원하는 것과 진행자가 원하는 것들이 정해졌고, 욕구들 사이에 특별한 충돌이 없었으므로 시작할 기반이 갖추어졌습니다.

인물 제작을 마치고 바로 모험을 시작하면서 모험의 초점은 일단 주인공의 형과 숲으로 정했습니다. 그렇다면 주인공의 형이 숲에서 실종된 정도는 어떨까 하고 생각했죠. 가족에 대한 의무는 주인공의 신호에도 속하기 때문에 사라진 형의 실마리를 쫓아 주인공이 여행해온 것으로 했습니다. 주점에서 주인장과의 대화를 통해 형이 이곳의 저주받은 숲에서 실종된 것이 확실하며, 아직 형이 칼에게 앙금이 남아있다는 점을 확인시켜서 주요 신호를 강조하며 시작했죠.

숲에서 형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된 주인공은 숲에서 돌아온 유일한 사람인 푸줏간집 딸을 만나러 가지요. 완전히 정신이 나가버렸으니 소용없을 거라는 얘기 또한 듣지만요.

푸줏간집 딸 아이렌을 만나는 장면은 또다른 신호를 등장시킬 기회가 되었습니다. 모험이라는 소재와 갈등되면서 가족에 대한 의무와 연관되고, 동시에 인간의 모든 이야기에 무난하게 연관시킬 수 있는 소재… 바로 결혼! 그래서 푸줏간집 주인 아저씨는 미쳐버린 딸의 혼처를 심히 걱정하고 있으며, 거의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딸이 낯선 남자와 함께 숲으로 가는 것을 허락하는 대신 주인공에게 딸을 책임지겠다고 약속시키는 반강제적 약혼을 시켰습니다.

아이렌과 숲에 들어온 주인공은 말하는 토끼를 붙잡아 취조(..?)한 끝에 (이 과정에서 사냥꾼으로서의 능력과 모험자의 기지를 활용하면서 제가 원하는 동화적이이면서 무겁지 않은 분위기 연출) 아이렌의 안내와 토끼의 도움으로 사람들을 실종시키는 장본인을 만나게 됩니다. 그녀는 숲의 주인이라는 수호정령으로, 사람들이 숲을 파괴하는데 분노해서 숲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영혼을 영혼의 우물에 가둬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실종자들은 자기 영혼이 갇힌 영혼의 우물을 떠날 수가 없었고, 숲을 헤매다 구출되었던 아이렌은 말 그대로 혼이 나간채 계속 영혼의 우물로 돌아오려고 애쓴 것이죠.

이런 식으로 숲을 떠난 주인공과 숲에 남았던 형, 그리고 형제간의 갈등이라는 신호를 건드려둔 후 절정 부분에서는 구네님의 멋진 문제해결을 지켜보면 그만이었습니다. 스스로 숲을 지키고 숲과 더불어 살아가겠다고 약속한 주인공의 진심은 숲의 주인의 분노를 잠재우고, 영혼의 우물에 갇혀있던 영혼들이 풀려나면서 주인공의 형을 비롯한 실종자들, 그리고 아이렌은 모두 제정신을 되찾습니다. 칼의 결정은 가족에 대한 의무와 그에 부수되면서 모험과 대비되는 ‘정착’이라는 문제, 그리고 숲이라는 신호를 살리는 것이기도 했죠.

그리고 실종자들의 귀환 (당면한 문제 해결), 주인공과 형의 화해 (형이라는 신호 해소), 그리고 주인공과 푸줏간집 아가씨와의 썸씽(..?)으로 (로맨스라는 보편적인 소재, 숲에 정착하기로 한 주인공의 결정과 연결, 가족에 대한 의무와 모험 사이의 갈등 해소) 영혼의 우물 단편은 끝을 맺습니다.

여러모로 이 단편은 실종 문제라는 과제의 해결 뿐만 아니라 주인공 자신도 약속의 책임을 지고 형과 화해하는 등 내적으로 성장을 이룬 꽤 깔끔한 단편으로 기억합니다. 설명한 바대로 주인공 설정을 통해 드러난 신호를 적절히 활용한 것이 많은 도움이 됐고요.  당연히 참가자의 좋은 의사결정이 아니었으면 나오지도 못할 내용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구네님도 저도 저걸 다 의식적으로 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말한대로 직관적 비약이 많이 들어가는 과정이니까요. 하지만 참가자와 별개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그걸 참가자에게 보여주는 방식보다는 주인공 설정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더 부드럽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신호의 해석과 구현 과정에서 참가자와 진행자의 취향과 관심사가 둘다 들어가니 서로 즐거울 수 있는 거죠.

주인공이 여럿인 플레이라면 신호를 엮어가는 방식을 사용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비슷한 시기에 진행했던 라이테이아 전기에서는 세 주인공을 초창기에 엮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주인공 중 하나인 니콜라이는 뉘우친 도둑으로서 양녀를 위해 큰 돈을 벌려고 하고 있었고, 또 하나인 아리에는 여사제였다가 포로로 잡혀서 노예가 되었고, 세번째인 케사르는 친부모를 찾으려고 하고 있었죠. 그래서 이 세 사람을 만나게 하기 위해서 아리에가 팔려가는 밤에 니콜라이가 그녀를 구하기 위해 고용되었고, 케사르는 아리에와 함께 여행하면 친부모를 찾을 것이라는 예언을 들은 상태에서 우연히 그 장소를 지나게 했습니다.

물론 신호 중심의 진행에 대한 글에서 밝혔듯 이러한 방식은 어떤 식으로든 참가자의 능동성을 요구합니다. 영혼의 우물에서 칼이 ‘음… 별로 형을 찾고 싶지 않아. 술이나 마시면서 뭔가 다른 일이 생기길 기다리자.’라고 한다든지 라이테이아 전기에서 니콜라이가 ‘위험해 보이니까 돈은 포기해야지’라고 한다면 진행자는 난감해집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신호를 주는 것이겠지만, 다른 신호에도 반응하지 않는다면 난감함은 더욱 깊어집니다. 신호 중심 진행에서 진행자가 준비한 이야기는 주인공의 목적과 욕구를 통해 표출된 참가자의 흥미에서 나오는 것이고, 참가자가 이 흥미를 잘못 표시했거나 흥미가 없으면서 진행자에게 거짓말을 했다면 더이상 진행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신호 중심 진행에서 이야기는 참가자 혹은 주인공과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뭔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기 위해서는 진행자가 상황을 주기를 기대하기보다는 스스로 행동하며 사건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뭐 언제든 막힐 수는 있고, 그럴 때면 주인공이 반응할 수밖에 없게 진행자가 위기상황을 던져주는 것도 늘어지는 진행을 활성화시키는 고전적인 방법입니다. 참가자가 반응하다 보면 진행자가 또 그 반응에 반응할 빌미가 생기고, 그런 식으로 플레이가 이어지니까요.

참가자가 진행자가 주는 모든 신호를 거부하면서 위기상황에 빠뜨리면 불평한다면 그건  결국 플레이하기가 싫다는 얘기니까 맞아야 됩 플레이의 기본적인 사회계약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참여자간 대화로 풀어가야 할 문제이지 더이상 진행 방식과 같은 플레이 내적 문제는 아닌 것이죠.

신호 중심 진행의 예만 들려고 했는데 결국 원래 글의 2부에 가깝게 됐군요. 어쨌든 제가 진행하는 방식, 내지는 지향하는 이상은 이런 것입니다. 당연히 이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방법도 많이 있겠고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방법이 따로 있을 것입니다. 저와 방식이 다른 CB마스터님의 글을 보고 느낀 바가 있었듯 다른 분들도 생각해볼 거리를 발견할 수 있다면 더 바랄 바가 없죠.

진행자의 부담감

자신의 주인공만 책임지면 되는 참가자에 비해 진행자는 캠페인에 대해 좀더 거시적인 시각을 가집니다. 때문에 종종 진행자는 참가자보다 큰 책임을 지며, 시간과 노력을 더 많이 쓰게 되지요. 저에게 이 점은 진행의 재미이기도 합니다. 좀더 큰 시각으로 전체를 보고 캠페인에 보다 능동적으로 관여할 수 있으니까요.

생각해 보면 예전에는 진행에 부담이라는 것을 가졌던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대체로 단기 아니면 단편을 중심으로 했기 때문이겠지요. 따라서 이야기 규모도 비교적 작았고, 수많은 인물과 계획과 장소들을 장기에 걸쳐 끌고 가면서 앞뒤가 맞게 만들어야 했던 적도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중장기로 잡고 있는 캠페인을 두가지나 시작한 후 거의 처음으로 진행의 부담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전보다 규모가 큰 사건들 속에서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많은 인물과 조직의 행동과 관계를 운용하면서 이 모든 것이 앞뒤가 맞는지, 말이 되는지, 충분히 재미있는지 생각해야 한다는 점에서 말이죠. 그래서 예전에는 플레이를 시작하기 전에 떨리는 일이 별로 없었는데 요즘에는 거의 항상 시작하기 전에 떨리더군요. 이전보다 준비는 많이 하는데도 말이죠.

물론 이 부담감은 필연적인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진행자의 부담감을 덜어줄만한 요인은 적어도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양적 요소, 즉 하나의 세계를 머릿속에서 이끌어가야 한다는 부담감에 대한 것입니다. 비록 하나의 세계는 광대할 수 있지만 (멀티버스, 은하계) 주인공들과 관련이 없는 부분은 딱히 신경쓸 필요가 없습니다. 즉 주인공들이 행동하고 영향을 미치는 범위, 그리고 주인공이 관심을 가지고 영향을 받는 범위 외에는 진행자가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인공들의 행동과 영향 범위는 진행자의 관심 범위에 일종의 필터로 작용하며, 그만큼 진행자의 양적 부담감을 경감시켜줍니다.

두번째는 질적 요소, 즉 캠페인 세계의 작용이나 조연들의 행동이 앞뒤가 맞고 흥미로워야 한다는 부담감을 덜어줄 수 있는 요인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캠페인 세계의 의미와 논리는 진행자 혼자 창조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진행자가 준비하거나 생각해낸 요소에 진정 의미와 경중을 부여하는 것은 참가자의 역할인 것입니다. 참가자가 어떤 부분에 관심을 보이고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진행자가 준비한 내용, 혹은 그 중점은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는 작업이 진행이니까요.

논리적 일관성 면에서도, 진행자는 준비하면서 말이 된다고 생각했더라도 참가자들이 생각하기에 모순이라면 보완할 필요가 있으며, 진행자가 생각하기에 허점이 있더라도 참가자들이 받아들인다면 넘어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진행자는 말이 된다고 생각했는데 참가자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기색이 보여서 재빨리 땜질한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입니다. (혹시 나만? <-) 참가자들 앞에 내놓기 전까지는 어떤 사건의 의미나 논리성도 완성된 것은 없으며, 캠페인 속의 현실은 모두 함께 만들어가기 때문에 부담을 덜 느껴도 될듯 합니다.

또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사실 캠페인 뿐만 아니라 현실 속에서도 모든 일이 딱딱 아귀가 맞는 법은 없으며, 너무 말이 안되는 모순이라든지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논리적 허점 정도만 아니면 모르고 넘어가거나 용인받을 수 있다고 봅니다. (제가 이런 면에서 까다로운 편이라 괜히 마음고생하는 면이 있죠.) 게다가 솔직히 캠페인의 내용과 일관성에 제일 관심이 많은 건 진행자이지 참가자가 아니니까요. 참가자는 조연 이름도 잘 기억 못합니..(흑)

세번째로, 캠페인 요소의 양적·질적 부담 외에도 진행자는 세션이 재미없으면 자기 책임이라는 전반적인 부담도 강하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이건 뭐 진행의 원죄(?) 같은 것이고 페이스와 흐름을 상당부분 조절하는 진행자의 역할상 아주 틀린 생각도 아니지만, 진행자가 세션의 모든 책임을 진다면 참가자는 바보인가요..(..) RPG는 기본적으로 ‘사회적인’ 놀이이며, 함께 즐거울 권리와 책임은 모두가 가지는 것입니다.

플레이의 재미는 전부 진행자의 책임이라는 발상은 참가자를 바보나 어린애처럼 취급한다는 점 외에도 두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진행자의 부담이 지나친 나머지 재미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는 점. 어느정도의 부담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진행자 역시 재미있기 위해 놀이를 하는 입장이며, 다른 사람의 재미를 위해 자기희생을 하는 봉사자가 아닌 것입니다. 모두 서로에 대한 배려는 해야겠지만 배려의 방향은 일방적일 수 없으니까요. 게다가 진행자 스스로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진행에 참가자들이 재미있을리가 없죠.

또한 진행자에게 플레이의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은 사회적인 놀이인 RPG에서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진행자가 뭔가 재미없게 진행하고 있다면 그걸 진행자에게 알릴 권리이자 책임이 있는 것은 바로 참가자들입니다. 진행자가 신이나 초능력자가 아닌 이상 참가자에게 뭐가 재미있는지, 재미없는지 100% 파악할 수는 없게 마련이며, 진행자 못지않게 참가자도 원활한 의사소통을 통해 팀 전체의 재미를 증가시킬 의무가 있습니다. 진행자가 참가자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아서 재미가 없다면 그건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지, 플레이의 재미에 대한 ‘모든 책임’을 수행하지 못한 애매한 죄목은 아닌 것입니다.

이와 같이 진행은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한없이 부담느낄 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무엇보다 재미있으려고 하는 놀이이고, 참가자들 역시 캠페인 사건의 양과 질에서부터 진행의 재미까지 함께 책임을 지고 있으니까요.

여전히 저는 세션을 시작하기 전에 떨리기는 하지만, 그리고 언제나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지만 이정도 부담감은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것이 진행자로서의 책임, 그리고 무엇보다 진행자로서의 ‘재미’ 앞에 진지한 저의 자세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설정 중심의 캠페인 제작

다음 내용은 기본적으로는 반쿠에이씨의 Flag Framing 기법과 Conflict Web을 접목시킨 것입니다. (블로그가 사라져서 archive.org 저장본 링크 겁니다. 위에서 7번째, 8번째 글입니다.)

1. 개괄

캠페인 제작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주인공 설정에서부터 쌓아올리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실은 주인공 설정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참가자의 관심방향을 보여주는 신호로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요.

참가자의 관심방향에 대한 신호는 크게 두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첫번째는 대상 그 자체, 두번째는 일정한 주제의식 혹은 감정선. 첫번째 부류의 예로는 주인공과 관련이 있는 조연이나 장소가 대표적일 것입니다. 주인공의 고향 플레인이라든지, 지금은 적이 되어버린 쌍둥이 언니라든지. 이러한 신호는 캠페인에 넣기가 비교적 간단하지만, 언제나 등장할 수는 없다는 점이 한계입니다. 캠페인 세계의 개연성이나 각 인물의 활동에 따라서는 지금 당장 등장시키기 힘들 때가 많으니까요.

여기에서 두번째 부류의 신호가 중요해집니다. 주제의식과 감정선은 보다 추상적이기 때문에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캠페인 내에서 계속 끌고갈 수 있으며, 적당히 엮고 대립시키면 주인공들의 협력과 갈등관계를 보다 공고히 묶는 수단이 되니까요. 예를 들어 어린아이를 좋아하는 주인공이 있다고 하면 정확히 어떤 어린아이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문제이고, 어린아이를 위해주고 도와주는 상황을 계속 던져주면 되기 때문에 구체적인 대상을 등장시키는 것보다 한결 유연한 진행이 가능합니다. 여기에다가 다른 주인공의 제멋대로인 성격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를 계속 넣는다든지, 또다른 주인공의 호기심이 동할 소지를 넣는다든지 해서 주인공들의 신호를 서로 엮어볼 수 있겠죠.

주인공끼리 신호를 엮는 방법을 사용하면 구체적인 대상 신호, 즉 첫번째 부류의 신호를 사용할 때도 그 신호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주인공들 역시 개입시킬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주인공의 출생의 비밀이 다른 주인공의 정체성 갈등과 연관된다든지 말이죠.

2. 신호 파악

참가자가 보내는 신호를 파악하는 데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일단 인물 제작 과정에서 어떤 얘기들이 나오는지, 어떤 설정에 참가자가 흥미를 보내는지 귀기울이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가족 얘기를 많이 한다면 그 주인공의 이야기에는 가족을 개입시키면 참가자의 흥미를 끌 공산이 큽니다. 주인공의 설정은 참가자와 게임 세계 사이의 일종의 인터페이스이며, 참가자에게 무엇이 흥미로운지 하는 하나의 필터라고 생각할 수 있겠죠. 인물 제작 과정에서부터 진행자가, 그리고 가급적이면 팀 전원이 적극적으로 토론하고 발상을 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신호 중심 캠페인에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많은 RPG 규칙에서는 캐릭터 시트 자체도 신호를 표시해 주고 있습니다. 포도원의 개들 (Dogs in the Vineyard)에서 성취 플레이는 참가자의 주요 관심사를 보여주고 있으며, 능력치와 인간관계 역시 이를 보조하는 신호로 기능하지요. 과거의 그늘 (The Shadow of Yesterday)은 특히 열쇠가 신호 표시의 용도가 강하고, 캠페인 중 신호를 발동할 때마다 경험치가 쌓인다는 점에서 전술적 판단과 신호 활용을 강하게 엮고 있습니다. 페이트 (FATE) 혹은 세기의 혼 (Spirit of the Century)은 면모에 그대로 신호가 드러나며, 참가자가 극점수라는 자원을 소모해서 능동적으로 신호를 발동할 수 있다는 점이 주목할만 합니다. 겁스 (GURPS)의 장단점 역시 신호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수가 비교적 많아서 그중 어느 것이 중요한지 가려내려면 참가자에게 더욱 열심히 귀기울여야 하겠지만요.

물론 인물과 별개로 참가자 자신을 관찰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이야기를 흥미로워하는지, 어떤 로망을 가지고 있는지. 주인공의 설정은 참가자의 관심거리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이지만, 참가자가 원하는 것은 주인공 설정에 전부 포괄되지는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아, 이 사람은 적당히 코믹한 소년물 성향이구나. 이 사람은 극적이고 깊이있는 이야기를 좋아하는구나. 등등.

주의할 것은, 참가자의 관심사에 중점을 둔다고 해서 진행자가 참가자 입안의 혀처럼 굴면서 진행자 자신의 관심사나 로망을
희생한다는 얘기는 전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어차피 진행자는 거시적인 시각에서 캠페인을 만들어가는 입장이기 때문에 캠페인에 진행자의 관심사가 반영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참가자의 신호에 신경쓴다는 것은 여기에 더해 참가자도 정말 흥미를 가지고 참여하도록 캠페인을 만들어간다는 얘기일
뿐이죠. 신호는 참가자에게서 나오되 이 신호를 캠페인상에 해석하고 구현하는 것은 진행자의 역할이니까요. 인물 제작 단계에서부터 진행자의 적극적인 개입과 참여가 중요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3. 캠페인 준비와 진행

이렇게 신호를 추출해 내면 (‘가족’ ‘고향 플레인’ ‘쌍둥이 언니’ ‘어린아이를 좋아한다’ 등등) 그 신호에서는 다시 캠페인에 활용할 수 있는 인물과 장소, 이미지, 주제의식 등이 나옵니다. 그리고 신호에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인물과 장소 외에도 주제의식이나 감정선에서도 또다시 인물과 배경을 추출할 수 있지요. 조연들에게는 각각 주인공에게 바라는 바, 목표와 자원, 한계를 부여합니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 주인공의 신호와 관계되는지 재확인합니다. 장소 역시 비슷하죠. 신호 관련성, 특색, 모험에 활용할 수 있는 요소, 이 장소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조연 등을 준비하면 됩니다.

이런 식으로 인물들이 준비되면 진행자는 주인공 한명 혹은 그 이상의 신호가 개입된 상황을 던져주고, 참가자들은 자기 관심사가 직접 개입돼 있으니 그 신호를 쫓아 반응할 것입니다. 조연들은 그들 각각의 목표와 주인공에게 바라는 바에 따라 주인공들의 행동에 다시 반응합니다. 이 조연들은 주인공의 신호에서 추출한 것이니 이들의 행동은 다시 신호를 발동하게 될테고 (그러지 않는다면 진행자는 다시 신호가 발동될만한 상황을 던지면 되죠), 또 주인공들이 행동하면 조연들은 반응… 하는 식으로 캠페인이 이어집니다.

이렇게 되면 더이상 진행자는 시나리오나 이야기를 준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참가자들과 마찬가지로 인물의 역할을 맡아 상황에 즉흥적으로 반응하면 되니까요. 다만 그 인물이 한명의 주인공이 아닌 여러명의 조연일 뿐.

4. 한계

이와 같이 신호 활용은 캠페인 제작과 운용의 강력한 도구이지만 한계도 있습니다. 바로 참가자들이 신호를 쫓으며 적극적으로 뭔가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진행자로서의 저는 능동적인 참가자에게 기대는 면이 있으며, 참가자가 수동적이면 속수무책이 된채 쩔쩔매게 됩니다. 인물 제작 단계라든지 캠페인에 대한 토론 단계에서 분명히 이게 신호다! 라고 확신하고 진행하는데 정작 참가자는 신호를 쫓아오지도, 활용하지도 않으면 난감해지지요.

예를 들어 지금 진행하는 레이디의 그늘 캠페인에서는 주인공들을 엮을만한 꺼리가 나름 풍부하게 마련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해보니 그렇지 못해서 당황중입니다. 주인공 중 한명은 자기 고향 플레인을 찾으려고 하고 있고 이 동기를 열쇠로도 택했기 때문에 경험 많은 플레인워커인 다른 주인공과 쉽게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고향 플레인에 대한 것은 일언반구 나오지조차 않아서 당황.

엮을 거리가 부족한가 염려되어서 약간 논리적으로 무리를 해가면서 두 주인공에게 공통으로 임무를 주기도 했습니다. 이 임무는 주인공 중 하나에게는 자기 고향 플레인을 찾는데, 다른 하나에게는 좋아하는 여자에게 접근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암시도 주었습니다…만, 역시 입질이 없더군요. 결국 주인공들끼리 별다른 접점이 없이 서로 겉도는 동안 진행자는 고민이 늘어가는 상황입니다. 세번째 주인공을 추가하면서 새로운 경험에 대한 호기심이 넘친다는 설정이니 어디든 쉽게 엮어넣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보기 드물 정도로 호기심 없는 인물인 것으로 밝혀져서 또다시 좌절..(…)

이와 같이 캠페인에 대한 신호 중심 접근은 신호에 대한 진행자와 참가자의 기대치가 어긋났을 경우 캠페인이 심각하게 표류할 수 있다는 한계를 가집니다. 물론 참가자를 막막하게 만드는 것은 진행자의 실책이고, 참가자가 막막해하고 있으면 강력하게 이끌어가는 것이 진행자의 책임일 것입니다. 문제는 참가자가 적극적으로 신호를 쫓아가고 거기에 다시 반응하는 방식에 익숙한 저로서는 참가자들과 나란히 막막해진다는 것이죠. ㅠ_ㅠ 참가자가 적극적이지 않으면 진행자로서 잘 기능을 못한달까요. 그래서 요즘은 신호 중심 접근이 실패했을 때 보완할만한 방법을 모색중이기도 합니다. 어떤 진행 수단도 완전한 것은 없으니까요.

진행 도구 – 관계도와 연상도

Story Games 등지를 돌아다니다 보니까 캠페인에 나오는 인물과 집단간의 관계도를 제작해서 활용하는 진행자들이 꽤 있더라고요. Sons of Kryos 포드캐스트에서도 관계도를 다룬 적이 있고, 이런 예나 이런 예를 보고서는 ‘나도 만들어볼거야!(화르륵)’ 하고 로망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순서도 제작용 플레쉬 도구인 Gliffy를 찾아서 지금 진행중인 캠페인의 관계도를 만들어보았지요. 어차피 멋지게 만들 재주는 없고 깔끔하게나 만들어보자고 생각하며 낑낑댄 결과… 저에게 관계도는 큰 도움이 안되는 도구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포도원의 제다이 관계도면

'포도원의 제다이' 인물과 집단간의 관계도


뭐 개발새발인 건 둘째치고라도, 결정적으로 시각적 형상화를 통해 새로 떠오르거나 만들어지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글로 쓰거나 생각하면 아주 부드럽게 정리가 되고 새로운 생각들이 떠오르는데 반해 제게 시각자료는 오히려 창의성을 억제하는 느낌이었달까요. (“아, 이런 것도 있었지. 근데 도면에 넣을 자리가 없는데? 전부 재배치하면… 아, 귀찮아.”)

한마디로 사람마다 정보를 창출하고 구조화하는 과정은 다르고, 저같은 경우는 시각보다는 언어가 도움이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숭어가 뛴다고 망둥이도 뛰면 안됩 남이 한다고 무턱대고 따라하는 것보다는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진행 도구를 찾는 것이 중요한듯 합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시행착오도 필요하겠죠.

아, 그리고 도면이나 관계도 만들 도구가 필요하신 분은 글리피 한번 써보시길. 예시가 좀 안좋긴 하지만 쓰기 간단하면서도 색깔이나 선 모양 등 이것저것 원하는대로 바꿀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SVG나 PNG, JPEG 파일로 저장할 수도 있고… 다만 그림파일로 만들면 한글은 글씨체가 조금 이상해지고,  어떤 때는 나타나지 않는 것들이 있어서 위의 것은 그냥 75% 배율 상태에서 스크린샷을 찍은 것입니다.

간단한 연상도는 또다른 온라인 플래쉬 도구인 bubbl.us도 유용해 보입니다. 객체간에 다양한 관계설정이 안되기 때문에 복잡한 표현에는 부적합하지만, 그만큼 쉽고 빠르기 때문에 얼음깨기 (Breaking the Ice)의 색채연상이라든지 하는 용도에는 문제없이 쓸 수 있겠더라고요. 아래는 얼음깨기의 색채연상도를 ‘은빛’에서 시작해 만들어본 예입니다.

※ 3/14: 갑자기 버블에서 한글이 안되는군요. 원래는 잘 되더니만 느닷없이 한글 입력을 안 받고, 저장해두었던 도면을 부르니까 한글 글씨가 사라진채 나옵니다. 사이트에 알려두긴 했지만 시정될지는 두고볼 일.

※ 3/15: 문의한 결과 글씨체 충돌 문제인듯 합니다. Ctrl+Shift+Space를 치면 해결되는군요. 문제는 이미 저장해두었던 시트의 버블들이 글씨보다 작게 나온다는 건데, 이 부분은 Unpin all을 누르고 버블들이 제자리를 찾을 때까지 Undo를 누르는 것밖에는 해결책을 찾지 못했습니다. 차후에 시정된다고 하고, 시정되면 이메일까지 보내주겠다는 친절한 태도를 자랑하는…

bubbl.us에서 만들어본 연상도

얼음깨기 색채연상의 예

보여주기와 행동하기

김주현님의 블로그에 있는 끼어들기에 대한 잡담을 보고 떠오른 생각들입니다. 보여주기 위한 장면에 주인공이 끼어들면, 즉 행동을 할 경우 진행자의 대응에 대한 글인데, 이 문제에 대한 제 생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RPG 자체가 보여주기 위한 게임이 아니라 행동하기 위한 게임이므로 보여주기만을 위한 요소는 되도록 없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게임에 나오는 모든 요소에 다 시나리오 관련성을 부여하려면 준비하기가 너무 어렵겠죠.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참가자에게 서술적 권한을 주는 규칙을 좋아합니다. 예를 들어 극점수를 1점 들이고, 물통을 엎자 그 밑에 통풍구 입구가 나온다든지. 물론 어디까지 허용할지는 진행자의 권한입니다. 물통을 엎자 그 속에서 옥쇄라든지 금화라든지 벌거벗은 미녀라든지 굴러나온다는 건 거부사유.

역시 ‘보여주려는’ 동영상이었는데 주인공이 총을 난사한다는 ‘행동’을 하는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보기에는 진행자가 준비한 것이 무용지물이 된다는 점 말고는 큰 문제는 없고, 오히려 권장할만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겁스 단점 발현이나 페이트 면모 강제발동과 같은 규칙을 통해 유발할 수도 있지요. (‘네가 죽도록 싫어하는 악당 박씨가 화면에 나와 떠들고 있어. 쏴버려!’) 동영상에 나오는 정보는 다른 경로를 통해 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주인공들이 더 고생할 뿐이죠. (캬하하) 그리고 그 과정에서 또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발생할 테고, 그게 RPG의 재미 아닐까요.

정리하자면 보여주기 위한 요소에 참가자들이 개입해서 행동하는 ‘문제’에 대한 해결은 참가자들에게 더 많은 능동성을 허용하는 것, 그리고 그러한 능동성을 통해 행동하기 위한 놀이라는 RPG의 본질을 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담으로 진행자가 준비한 악당의 20분짜리 장광설 같은 것은 플레이 중에는 중요한 부분만 요약하고 (“사당역으로 돈 가지고 나와!”) 그 전체 내용 (악당 박씨의 어린시절 등)은 캠페인 사이트나 회지 같은 곳에 올리는 것도 추천합니다. 귀중한 플레이 시간을 절약하면서도 참가자가 원한다면 뒷이야기라든지 배경 세계에 대한 깊이있는 내용을 알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