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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느 다르노 – 스무 고개

1. 히어로는 어느 나라 출신인가?

몽테뉴 (Montaigne)

2. 히어로는 어떻게 생겼는가?

여자 치고는 좀 선이 굵다 싶은 외모이지만, 그게 또 보기 좋다는 점이 재밌달까요. 역시 본인이 늘 주장하듯이 미인은 기준을 따르는 게 아니라 기준을 만드는 것일지도! (퍽퍽) 우선 키가 크고 다리가 길며, 여리여리하다기보다는 단단하고 옹골진 몸에는 오랜 시간 검을 훈련한 사람답게 유연한 근육이 잡혀 있습니다. 머리는 붉은 기가 도는 아주 짙은 흑갈색이며, 그에 비해 티없이 맑고 흰 피부가 더욱 돋보입니다. 얼굴도 섬세한 아기자기함과는 거리가 먼 대담하고 성깔있는 분위기로, 넓은 이마와 굵은 눈썹 아래 눈꼬리가 약간 치켜올라간 푸른 눈은 격렬한 분노로 섬뜩하게 번득이는가 싶다가도 호수처럼 고요하고 순수한 빛으로 사람을 끌어들이기도 하지요. 곧은 콧대는 다소 고집스러운 느낌을 주며, 모양이 좋은 입은 가수답게 큼직합니다. 뺨과 턱의 선도 부드럽다기보다는 각지고 뚜렷하죠. 한번 보면 절대로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 그리고 어중간한 의견은 절대 가질 수 없이 정말 좋거나 정말 싫다고 단번에 의견이 정해지는 인상입니다.

옷은 늘 잘 입으려고 노력하고, 브리치(바지)도 스커트도 편안하게 느낍니다. 어느 쪽이든 화려하고 좋은 옷, 자신을 좀더 돋보이고 뭔가 있어보이게 하는 옷은 허영심 많은 안느가 탐내는 많은 것 중 하나죠.

3. 히어로의 버릇은 어떤가?

검을 차고 있을 때면 검 손잡이를 잡은채 검집 끝으로 벽이나 바닥을 탁탁 치는 버릇이 있습니다. 지루해지면 팔짱을 끼고 고개를 젖혀 천장을 쳐다보곤 하죠. (아름다운 목선과 가슴을 강조한다는 장점도 있는 자세.) 또 의자를 뒤로 젖힌다든지 하는 불량스러운 버릇도 몸에 밴.

치마만 입으면 완전히 궁정인으로서의 가식이 몸에 배어서, 조금 곤란하거나 재밌는 일이 있으면 부채로 얼굴을 부치면서 고개를 돌려 깔깔 웃는다든지 하는 아주 몽테뉴 궁정인다운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고개를 숙이면서 눈만 들어 속눈썹 사이로 남자를 올려본다든지 하는 교태도 능숙하지요.

4. 히어로의 주된 목표는 무엇인가?

예전의 목표라면 사교계에서 인정받는 것, 유명한 가수가 되는 것이었지만 지금의 목표는 몽테뉴에 여전히 체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는 것으로 좁혀졌습니다. 추방형 선고에 의해 몽테뉴 내에서 발견되면 즉결이니까요. 총사 그림자만 보여도, 누가 ‘에밀리’ 소리만 해도 가슴이 덜컹하는 것도 이제 지겹달까요.

5. 히어로의 가장 큰 강점과 약점은 무엇인가?

강점은 자신의 능력이나 가치를 절대 의심하지 않는 자신감과 낙천성. 약점은 그 자신감이 남에 대한 경멸로 표출되어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킨다는 점입니다.

6. 히어로는 무엇을 가장 좋아하고, 무엇을 가장 싫어하는가?

좋아하는 것은 화려한 자리, 특히 자신이 주목받는다면 더더욱 좋아합니다. 따라서 화려한 파티, 무대에서 모두의 눈길과 찬사를 받는 공연, 칼만큼이나 모욕이 예리하게 날리는 결투를 사랑합니다. 샤루즈에서 도주한 이후로는 궁정 사교계의 호사스런 파티도 없고 노래공연이래봤자 초라한 선술집에서 취객들에게 대고 부르는 저속한 노래가 전부이니 참 죽을 맛이지요.

싫어하는 것은 바로 지금 상황처럼 초라하고 구질구질한 것, 자신이 비참해지는 그런 때입니다. 아, 옛날이여.

7. 히어로의 성격은 어떤가?

허영심이 아주 강해서 애인이든 물건이든 최고의 것을 가지고 싶어하고, 늘 주목과 찬사를 받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남을 해치거나 속일만큼 교활한 면이 있는 건 아니고, 타고난 외모와 대담한 성격으로 열심히 눈에 띄려고 노력하지요. 그런 면에서 아주 무자비한 궁정인의 자질은 애당초 없었달까요. 허영심 많고 단순하다, 그렇게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검객으로서는 의외일 수도 있지만 한번도 사람을 죽여본 일이 없습니다. 죽이지 않고 제압해서 살려보내는 게 더 멋있어 보이고 자기 명성도 더 널리 퍼진다는 면도 있고(“가서 네 의뢰주에게 전해라. 안느 다르노를 만나고 싶으면 너같은 놈을 백명은 더 보내라고!”), 사람이 죽어나가면 귀찮은 일도 생기고, 마지막으로 사람을 죽이는 건 잘못된 일이라는 소박한 도덕의식 정도는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살생보다는 모욕주는 편이 여러모로 체질에 맞는달까요.

8 히어로는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가?

이 멋진 세상을 충분히 누려보기도 전에 죽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아무리 상황이 안 좋아도 조금만 지나면 멋진 미래가 펼쳐질 거라는 어린애같은 기대감에 늘 가득 차있기에… 세상은 종종 이런 막연한 기대에 가혹한 실망을 선사합니다만.

9. 히어로의 최대의 꿈은 무엇인가? 가장 사랑하는 일은 무엇인가?

최대의 꿈은 유명한 가수이자 검객이 되는 것, 가장 사랑하는 일은 멋지게 보여서 주목받는 것입니다.

10. 히어로는 자신의 나라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몽테뉴의 흙은 그녀에게 넓게 펼쳐진 로녜의 농지와 들판과 숲, 시뇌즈강 유역의 허름한 선술집과 부두이고, 몽테뉴의 하늘은 샤루즈의 빛나는 궁성과 귀족들의 사교계입니다. 그녀가 동경하는 것은 몽테뉴의 하늘이지만 발을 딛고 선 땅은 몽테뉴의 흙이지요. 그 사실이 그녀는 슬프고 화가 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발밑의 땅을 부정하려 해도 벗어나려면 날개가 필요한데, 날개 달린채로 태어난 사람들은 따로 있으니…

11. 히어로에게 편견은 없는가?

몽테뉴의 평민에 대한 편견이 있습니다. 무식하고 천박한 촌무지렁이들이라고 말이죠. 그들이야말로 그녀가 벗어나고 싶은 몽테뉴의 대지, 그리고 결국에는 그녀가 속한 사람들이니까요.

12. 히어로는 무엇에 충성하는가?

자신의 충동, 자신의 꿈, 자신의 허영, 자신의 안락, 자신의 목숨… 기본적으로 자신밖에 모르는 인간이랄까요. 자기 자신의 생명과 편의에 도움이 된다면 물론 다른 사람에게도 그 범위 내에서 충성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연인)

13. 히어로는 사랑에 빠졌는가? 배우자나 약혼자는 있는가?

자기만 아는 안느가 타인을 진정 사랑한 적이 있는지는 의문이네요. 물론 당시에는 나름대로 다 진심이라고 믿었지만, 그저 유행하는 낭만적 정열에 스스로 취한 거나 아닐지 의심이 갑니다. 로녜에 헌신짝처럼 버리고 온 남편이 있고, 샤루즈에 가장 최근의 연인 파비앙이, 그 외에 무수한 전 애인들이 몽테뉴 등지에(…) 있습니다.

14. 히어로의 가족은 어떤가?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아버지가 로녜에 살고 있습니다. 두 여동생과 남동생도 각자 결혼해 그 등지에서 가정을 꾸리고 있겠죠. 네 자녀 중 맏이인 에밀리는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신 이후 가사를 책임져야 했는데 그 일이 그렇게 지겨울 수가 없었고, 평민 관리로서 줄 수 있는 조그만, 하지만 빈농에게는 한없이 큰 혜택들을 빌미로 해 가난한 소작농 여자들을 끊임없이 잠자리로 끌어들이는 아버지 꼴도 보기 싫었죠. (결국 열여덟 되던 해 이 지역 후작에게 손님으로 온 쟝 다르노를 홧김에(?) 꼬셔버리고, 지나치게 양심적인 청년이었던 쟝은 에밀리의 표현대로라면 ‘겨우 그정도 가지고’ 에밀리의 아버지에게 정식으로 청혼을 해서 결과적으로 그녀를 그 지긋지긋한 삶에서 구해줍니다.) 이때 느낀 것들은 안느의 성격과 편견에 상당한 영향을 주기도 했죠.

15. 히어로의 부모는 히어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버지는 에밀리, 혹은 안느를 내놓은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딸이 부도덕한 삶을 사는 자체보다도 자기 체면에 먹칠을 한 것에 분개하고 있지요. 그렇다 해도 저렇게 죄를 짓고 쫓기다니 측은지심을 가지기도 합니다만… 기회가 있다면 돕고 싶은 생각도 있겠지만, 안느는 집을 나온 이후 아버지에게 연락한 적이 없으니 어디 있는지 알 길도 없죠.

16. 히어로는 신사, 또는 젠틀우먼인가?

일단 본인은 젠틀우먼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일차적으로는 자신의 충동, 이차적으로는 자신의 이익을 따지는 안느가 얼마나 신사도(혹은 숙녀도)를 따르고 있는지는 의문. 일단 쇼맨쉽은 타고났으니 기분이 내키면 흉내는 근사하게 냅니다. 그런 식으로 파비앙도 꼬셔냈으니까요.

17. 히어로는 얼마나 종교적인가? 어느 교파를 따르고 있는가?

바티키네 교도로 자라고 매주 교회에 갔지만 애당초 신심이란 게 있을 성격이 아니었고, 궁정 사교계에 몸담고 레옹 황제가 교회에 등을 돌리면서 그나마 있던 신심의 허울마저 벗어던졌습니다.

18. 히어로는 신사 클럽, 혹은 비밀 조직의 일원인가?

아닙니다. 검객이야 뭐 어디나 있고…

19. 히어로는 마법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포르테 마법사야 자주 접해보고 해서 포르테는 그저 유용한 힘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위험에 처하면 슥 도망가는 건 겁쟁이라는 오만한 생각도 갖고 있지만요. 다른 나라 귀족들의 힘은 그저 풍문으로 들려오는 재미있는 이야깃거리일 뿐이고, 페이트 위치는 막연히 무서워합니다.

20. 가능하다면, 당신은 당신의 히어로에게 어떤 조언을 해 주고 싶은가?

정신차려 이 여자야! (…) 분명 자신이 원하는 것에 솔직한 건 나름대로 의미있는 일이지만, 살인을 간신히 면한 지금은 어느정도 삶의 방식을 바꿀 때가 되지 않았을까. 자신이 동경하는 하늘보다도 딛고 선 땅을 한번쯤 돌아볼 때도 됐고 말야. 물론 당장 닥친 위기에 온 정신이 가있어서 그런 자성의 여유는 없었겠지만…

하긴, 누가 무슨 말을 하든 당신은 언제까지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 없이 새로운 자극과 충동만을 쫓아 살겠지. (그나마 최소한의 소박한 도덕관념은 있다는데 점수를 주고 싶지만.) 그래서 당신같은 사람들의 삶은 모험의 연속으로, 시간의 뒤안길로 사라진 후에는 두고두고 이야깃거리로, 그리고 저렇게 살아선 안된다는 경구(警句)로 남는 것이 아닐까.

테오도라 모레노 – 스무 고개

1. 히어로는 어느 나라 출신인가?

까스띠예 (Castille)

2. 히어로는 어떻게 생겼는가?

겉모습에서 느껴지는 첫인상은 ‘작고 볼품없는 생쥐같은 여자’ 정도. 키는 작은 편이고 옷차림은 색깔과 디자인이 수수합니다. 검은 머리는 뒤로 틀어올리고 있고, 항상 몇가닥이 얼굴 양옆으로 흘러내립니다. 조그만 몸집에 비해 커다란 가죽 가방을 어깨에 메고 분주히 다니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울지도 모릅니다.

3. 히어로의 버릇은 어떤가?

자신의 다리가 짧은 것을 의식해서인지 바쁘게 총총걸음을 걷습니다. 말할 때면 사람 눈을 똑바로 보고 얘기해서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불안할 때면 양손을 깨끗이 씻듯이 서로 비비는 동작을 합니다.

4. 히어로의 주된 목표는 무엇인가?

의학연구에 기여하는 것은 곧 인류에게 기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이상 자신처럼 가족을 잃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대학 때부터의 경쟁자 엔리케에게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은 부수입일 뿐. (과연?)

5. 히어로의 가장 큰 강점과 약점은 무엇인가?

강점은 역시 해박한 교양과 지성, 창의성. 약점은 자기 감정 제어를 잘 못하고, 때로 감정기복이 심하다는 점입니다.

6. 히어로는 무엇을 가장 좋아하고, 무엇을 가장 싫어하는가?

좋아하는 것은 일 때문이든 왁자지껄하게 즐거운 자리 때문이든 뭔가 분주한 분위기.

싫어하는 것은 할일 없이 한가한 시간, 특히 잠이 안오는 밤입니다. 생각이 너무 많아지거든요. 이럴 때면 얘기나 좀 하자고 아무나 붙잡고 늘어지거나 일부러 일을 만들곤 합니다.

7. 히어로의 성격은 어떤가?

‘만인의 큰누님’이랄까요. 가족범위가 넓고 가족간 친분은 가까운 까스띠예인데다 많은 형제자매와 함께 자랐고, 또 가정을 꾸린 적도 있어서 그런지 사람 신경쓰고 챙기는데는 이골이 났습니다. 그리고 자기 전문분야에 있어서는, 때로는 전문과 아무 상관없는 일에서도 지도적인 위치에서 남을 이끄려는 면이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선 듬직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귀찮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생각 외로 섬세해서 남이 뭐라고 한마디 하면 혼자 고민하며 끙끙 앓는다거나, 감정이 복받치면 울어버리기도 합니다. 자신의 행동이 옳았는지, 잘못한 거나 아닐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새가슴이기도 하고요.

8. 히어로는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가?

사람을 잃는 것. 자신과 가까운 사람도 그렇고, 환자를 잃는 것도 두려워합니다. 그런 상황이 닥치면 이성을 잃고 어쩔줄 몰라할지도.

9. 히어로의 최대의 꿈은 무엇인가? 가장 사랑하는 일은 무엇인가?

돈도, 지위도 없지만 배움에 대한 갈망이 있는 젊은 사람들에게 고등교육을 가져가는 것이 꿈입니다. 어쩌면 기존의 대학처럼 건물과 교정이 있는 곳이 아니라 해도, 학구열을 만족시키고 또 그 배움을 더 넓은 삶의 장으로 가져갈 수 있는 방법. 일하면서 배우는 프로그램이라든지, 이런저런 방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기회가 되는대로 영향력 있는 인물들과 폭넓은 교분을 쌓으려는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일은 연구와 독서. 사람과의 사이에서 쉽게 상처받는 테오도라에게 어쩌면 가장 마음편한 상대는 사람보다도 책일지 모릅니다. 의술에도 열정적이지만, 역시 부담되고 상처받는 일도 많은 게 사실이죠.

10. 히어로는 자신의 나라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군의관까지 지낸 사람치고는 이상할 수도 있지만, 국가에 대한 개념 자체가 희박합니다. 테오도라에게 지켜내야 할 것은 가족들이 있고 삶의 터전이 있는 바티키네와 좀더 넓게 보면 알다나 지방이지, ‘까스띠예’란 지극히 추상적이고 먼 관념일 뿐입니다. 몽테뉴의 침공과 함께 국가개념이 좀더 강해지는 조류를 느끼고는 있지만요.

11. 히어로에게 편견은 없는가?

몽테뉴 군복을 보면 어쩔 수 없이 치를 떱니다. 까스띠예를 침공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이 사는 지역을 직접 위협하고 있고, 몽테뉴 총알과 포탄으로 인해 죽고 불구되는 수많은 환자를 보며 자신의 무력함을 절감해야 했고, 또 전쟁으로 인해 벌어진 상황 때문에 남편과 아들을 잃었으니 감정이 안 좋을 수밖에요. 그렇다고 몽테뉴인은 다 싫다거나 하는 개념은 아니고, 개개인을 보고 판단하지요. 또한 까스띠예 외의 귀족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마법에 대한 답변에서 좀더 설명하고 있습니다.

12. 히어로는 무엇에 충성하는가?

자신의 개인적, 학문적 양심과 자신의 가족, 그리고 친구, 고향 등 가깝고 구체적인 것들이 테오도라에게는 절대적입니다.

13. 히어로는 사랑에 빠졌는가? 배우자나 약혼자는 있는가?

사랑에 빠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사람, 신경쓰이는 사람은 있지만 사랑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하는 중이랄까요. 배우자는 예전에 있었고, 사별해서 현재는 독신입니다.

14. 히어로의 가족은 어떤가?

가장 직접적인 가족은 어머니와 아버지, 오빠 하나, 남동생 셋, 언니 하나, 여동생 하나가 있습니다. 그 외에 수많은 삼촌, 사촌, 인척 등등 알다나 등지에 흩어져 사는, 수십명에 달하는 멀고 가까운 친인척이 모두 그녀의 파밀리아(familia)에 포함되지요. 가족이 늘 그렇듯 투닥거리고 시끄러운 일도 있지만, 모일 때마다 왁자지껄하게 신나는 시간을 보내고, 힘들고 어려울 때면 늘 달려오는 가족이라는 존재는 어딜 가든 테오도라의 마음속에 함께합니다. (리제와도 먼 친척으로 할까 생각하는데, 괜찮을까 모르겠네요..ㅋㅋ)

15. 히어로의 부모는 히어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자신 많은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지적이고 교양이 풍부한 여성인 어머니는 테오도라에게서 꿈많았던 자신의 젊은 시절을 많이 느낍니다. 좋은 남편과 많은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자신의 삶 역시 풍족하고 만족스럽지만, 테오도라는 좀더 넓은 세계를 겪고 큰 일을 했으면 좋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인이 원한다면 행복한 가정도 다시한번 꾸리면서요. 어머니는 도라가 두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지원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자상하지만 완고한 성격의 아버지는 꼬마 도라가 대학에 가도록 허락한 것이 요즘들어 후회되기도 합니다. (세상일이 흔히 그렇듯이 자신의 돈으로 보낸 것이 아닌만큼 발언권은 적었지만요.) 당시에는 막연히 애가 너무 책을 좋아하니까 좋아하는 공부 하고, 졸업하면 좋은 남자 만나 평범하게 살아갈줄만 알았지요. 그런 딸이 학교에서는 시체 자르고 다니더니만 피튀기고 살째는 험한 의사일을 한다고 하자 기암을 했고, 특히 전쟁에 군의관인지 뭔지 나간다고 할 때는 심하게 다투기도 했습니다. 귀족 나부랭이 그깟 돈 몇푼에 묶여서, 가정이 있는 여자가 평생 본 적도 없는 애송이 왕을 위해 목숨을 걸겠다니 무슨 소리냐고 엘리안 모레노씨는 펄쩍 뛰었지요. 남의 일이 아니라 당장 이 고장 젊은이들이 죽어나가고 있으며, 후방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거지 직접 전쟁터에 나가는 게 아니라고 테오도라가 아무리 얘기해도 아버지는 막무가내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자신을 꼭 닮은 딸의 고집에 질 수밖에 없어서, 도라가 간다고 인사하러 온 날에는 증조할머니의 십자가 목걸이를 내주며 꼭 무사히 돌아오라고 눈시울을 붉히고야 말았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꼭 끌어안은 테오도라의 침묵은 그 어떤 말보다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요.

두분 모두 가정을 송두리째 잃은 딸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집니다. 한살이라도 젊을 때 재가해서 아이도 낳고 남편 사랑도 받고 하면 위안이 되지 않을까도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 워낙 도라의 상처가 큰지라 함부로 말은 못 꺼내고 눈치만 보고 있지요. 특히 어머니와 언니는 엔리케에 대한 얘기는 아버지에게 함구해 달라고 단단히 다짐받은 상태입니다. 아버지가 그의 방문에 대해 알았다가는 엔리케는 저 멀리 웃스라의 동쪽 끝으로 도망이라도 가지 않는 한 아버지의 소환을 피할 수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아버지가 그 부리부리한 검은 눈으로 엔리케를 노려보며 “내 딸에 대한 자네의 의도는 뭔가?” 하고 묻는 상상만 해도 테오도라는 식은땀이 흐르고 머리에 쥐가 날 지경입니다.

16. 히어로는 신사, 또는 젠틀우먼인가?

별로 로망이 넘치거나 애매모호하고 비실용적인 규율을 따르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저 자기 일을 착실히 하고 싶을 뿐…

17. 히어로는 얼마나 종교적인가? 어느 교파를 따르고 있는가?

바티키네 가정에서, 또 바티키네 시에서 커온 테오도라의 종교에 대한 생각은 이율배반적이랄까요. 한편으로는 세계에 대한 탐구를 통해 신의 뜻을 알아간다는 바티키네의 교리는 테오도라의 신념과도 일치하고, 또 바티키네 교회에서 병원을 세우고 학문연구에서 이바지하는 등 좋은 일도 많이 해서 교단에 대해서도 호의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단심문회의 행태에 분개하고, 또 가족을 갑자기 잃으면서 데우스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이 생긴 것도 사실입니다.

18. 히어로는 신사 클럽, 혹은 비밀 조직의 일원인가?

아닙니다.

19. 히어로는 마법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부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해서 막연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이성의 빛을 밝히는 학자라 해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은 공포로 다가오는 것일지도요. 뭐 까스띠예인이라는 점도 작용하고, 아무리 신심이 별로라 해도 양육과 환경의 힘은 무시 못하겠죠. 또한 다른 나라 귀족들은 마법의 힘으로 백성들 위에 군림하려 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까스띠예 귀족들은 그런 힘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20. 가능하다면, 당신은 당신의 히어로에게 어떤 조언을 해 주고 싶은가?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지만, 어쩌면 자신의 괴로움에서 도피하기 위해 남에게 신경쓰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당신의 의술은 과거의 후회를 보상받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었던가요? 다른 사람들을 살림으로써 가족 곁에 없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려는 건 좋은 해결책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우울증을 통해, 그 다음에는 집착을 통해 고통에서 도망치는 건 아닐지…

테오도라가 본 엔리케

엔리케는, 음… 평균적인 키에 호리호리한 체격이고, 늘 최신유행을 따라가는 깔끔하고 맵시있는 옷차림을 하고 있다. 어깨 길이의 연갈색 머리는 말끔하게 다듬어서 뒤로 묶고 있고, 서글서글한 갈색 눈과 곧은 콧대, 가느다란 콧수염, 길고 선이 강한 얼굴, 그리고 엄숙한 침묵에서 신랄한 비웃음을 넘나드는 입매… 잘생긴 얼굴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이상으로 뚜렷한 성격과 지성이 눈에 띄는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잘생긴 남자는 많이 있지만, 정말 흥미로운 성격을 가진 남자는 많지 않은 법이니까 난 그의 얼굴에 드러난 그만의 분위기에 더 높은 점수를 쳐주고 싶다. 물론 내가 싫어하는 걸 알면서 ‘꼬마 도라’라고 부를 때면 그저 밉살스러울 뿐이다.

그가 자기 얘기 하는 것은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어차피 우리 둘은 얘기할 때면 서로를 모욕하거나 토론하는데 치중한 편이라 그다지 개인적인 얘기는 많이 안 나왔던 것 같기도 하다. 듣기로는 돈많은 집 상인의 아들인듯 하고, 셋째거나 넷째쯤 되니까 유산은 별로 기대할 게 없어서 먹고 살만한 전문직을 가지기 위해 대학에 다닌 모양이다. 그는 명성을 얻고 있는 의사가 되었으니 그점에서는 성공한 셈이다.

테오도라 모레노 데 호야 데 모랄레스

바티키네 시의 소시민 가정의 딸로, 대학에 갈만한 돈이 있는 집은 아니었지만 우연한 기회에 당시 라 시엔시아 학장 발데즈의 눈에 띄어 그 지역 돈(Don)의 후원을 받아 대학을 나와 의사가 됩니다. 대학때 1, 2등을 다투던 동기생 엔리케와 심하게 경쟁하는 한편 서로 복잡한 감정도 가지게 되지만, 결국 서로 지나치게 닮은 두 사람의 결혼은 불행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부모님이 정해준 착실하고 순한 남자와 결혼해서 아들낳고 잘 살지요. 그런데 군의관으로 자원해 집에서 떠나있던 사이 아들과 남편은 전염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그 때문에 끝을 알 수 없는 절망에 빠져들었다가 엔리케가 일부러 찾아와 윽박질러준(?) 덕분에 정신을 차립니다. 지금은 의사로서의 소명을 다하는 것이 자신이 살아가는 의미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테오도라 모레노 데 호야 데 모랄레스는 바티키네 시에서 4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어머니가 아주 아팠던 와중에도 무사히 태어난 딸에게 부모님은 데우스의 선물이라는 뜻의 이름을 지어주었지요. 집은 작은 가게가 있어서 쪼들리지는 않았지만 일곱 자녀를 먹여살리느라 풍족하지도 않았습니다. 자녀들이 하나같이 착실해서 아들들은 일찍부터 아버지에게 일을 배운다거나 도제로 들어가는 등 제 갈길을 찾았고, 두 딸은 얌전히 집안일과 가게일을 도우며 결혼상대를 물색했습니다만, 테오도라만은… ‘꼬마 도라’는 늘 집안의 괴짜였달까요.

도라는 어려서부터 유난히 호기심이 많아서 서점 주인이 처분하는 책들을 얻어다가 닥치는대로 읽곤 했고, 부엌일이나 가게에서 일하던 중 책에 정신없이 빠져들어 요리를 홀랑 태우거나 가게 손님이 그냥 가버린 일도 여러번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이런 점을 꾸짖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머리 좋은 딸이 자랑스러웠지만, 그럴수록 한숨도 늘었습니다. 테오도라가 하다못해 심부름을 가도 일부러 근처의 대학, 까스띠예 최고 명문 라 시엔시아를 지나가는 길을 택해 학교 건물만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온다는 것을, 그러면서도 가족에게는 아무 내색 안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물론 테오도라를 대학에 보내줄 돈이 부모님에게 있을리 없었습니다. 그저 보고 싶은 책이라도 사보라고 없는 돈 한푼 두푼 쥐어주면 환해지는 딸의 얼굴을 보고 돌아서서 또 한숨쉴 뿐.

그리고 18세의 어느날 테아도라는 더이상 학교를 구경만 하다가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하고 용기를 쥐어짜서 라 시엔시아의 정문 경비에게 해부학 교수 한명을 만나고 싶다고 얘기합니다. 교수의 책을 혼자 읽고 떠오른 의문점들을 깨알같이 적은 가게 전표니 공책이니 손에 잔뜩 쥐고선 말이죠. 열여덟이지만 키가 작아서 한 열셋쯤 돼보이는, 게다가 억센 하층민 억양과 전혀 안어울리는 어려운 단어를 잔뜩 쓰면서 지저분한 종이뭉치들을 보물처럼 끌어안고 있는 테오도라를 경비는 이상한 여자로 단정해 버리고 들여보내주기를 거부합니다. 그동안 부모님 생각해서 내색하지 않았던 울분이 한꺼번에 폭발한 테오도라는 그 자리에서 경비에게 배움의 전당이라는 대학에서 사람차별하냐며 마구 따지고, 점점 언성이 높아지는 말다툼에 당시 라 시엔시아 총장 에르미니아 발데즈까지 학생들과 교정을 걷다가 궁금해서 와보는 사태가 벌어지죠.

경비는 당황해서 식은땀까지 흘리며 어떻게든 도라를 돌려보내려 했지만, 분에 못이겨 울음을 터뜨린 그녀는 더이상 진정하거나 무슨 얘기를 들을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이때 총장과 함께 산책하던 남학생 하나가 성큼성큼 다가와 귀띔하지요. 가뜩이나 못생긴 애가 얼굴 일그러뜨리면서 질질 짜면 정말 보는 사람이 민망해진다고. 놀란 도라는 울음을 그치고 남학생을 황당하게 보다가, 다음 순간 짜증이 솟구친 나머지 정강이를 호되게 걷어차 줍니다. 드디어 냉정을 되찾은 테오도라는 총장에게 소란을 일으킨 것을 정중히 사과한 후 돌아섭니다. 온갖 추태는 다 보였으니 다시는 돌아오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하지만 발데즈는 오히려 테오도라를 불러세워 진정도 할 겸 자기 사무실에서 차를 한잔 하고 가라고 하고, 차를 마시면서 자초지종을 묻습니다. 그리고 테오도라의 공책들을 훑어보고, 그동안 공부한 것에 대해 몇가지 질문을 한 뒤 깊은 생각에 잠깁니다. 다듬어지진 않았지만 뚜렷한 재능과 지적 호기심, 그리고 무엇보다 학문에 대한 억눌린 열정을 보며… 기품있는 중년 부인은 어쩌면 자신의 젊은 시절을 기억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한 도라는 이제 쓸데없는 꿈은 그만 꾸고 좀더 현실을 생각하자고 결심하고 있던 중 발데즈 총장으로부터 편지를 받지요. 라 시엔시아 대학 입학에 관심있다면 구술 시험에 합격할 경우 입학시켜 줄 것이며, 약간의 장학금과 함께 후원자도 구해줄 수 있다고, 그리고 테오도라양은 쉽게 합격할 것이라고 자신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들고 소리내어 웃으면서 동시에 눈물 흘리는 딸을 보고 부모님은 순간적으로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했지만, 자초지종을 알고서 뛸듯 기뻐했음은 물론입니다. 테오도라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로 기억하는 날 중 하나이지요.

당당히 라 시엔시아 대학 학생이 된 테오도라에게는 마음껏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공간이 생겼고, 함께 토론하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교수와 친구들이 생겼고, 미래에 대한 꿈이 생겼고, 그리고 평생의 경쟁자도 생겼습니다. 대학 정문으로 찾아왔었던 날 그녀에게 정강이를 차였던 밉살스런 청년, 엔리케 메디나 데 리오스 델 토레스는 같은 신입생인데다 상당히 우수한 학생이었던 것입니다. 첫 만남에서 그랬듯이 두 사람은 사사건건 다투었습니다. 왠만한 싸움보다 살벌한 학문적 토론에서 시작해서 시험 등수까지 둘은 끊임없이 경쟁했으며, 원수지간이라고 소문이 자자했지요.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엔리케 역시 테오도라와 마찬가지로 의학에 뜻을 두었고, 결과적으로 두 사람은 거의 수업마다 같이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두 사람이 함께 듣는 수업의 교수는, 특히 해부학처럼 칼이 등장하는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는 언제나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는 전설이..(…)

하지만 몇몇 학교 선배들이 장담했듯이 테오도라와 엔리케는 점점 서로를 남녀로서 의식하게 됩니다.비록 그녀는 그를 무례하고 성질 급한데다 랑베르 정리같은 엉터리 학설을 지지하는 멍청이라고 욕했고, 그는 그녀에 대해 못생기고 쬐끄만 여자가 성격도 엄청 드세고 학술적 방법론이라고는 모르는 뜨내기라고 비웃었지만, 동시에 둘은 너무나 얘기가 잘 통했고 누구보다 내심 서로를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둘다 비슷하게 성격이 드센 그들의 얘기는 곧바로 격렬한 토론이 되었고, 야심이 넘치는 두 사람의 실력 인정은 곧 물불 안가리는 경쟁이 되어버린다는 문제가 있었지만요.

성적 긴장과 동료애와 적대감을 아슬아슬하게 오간 몇년 후 테오도라는 지쳐 버립니다. 그리고 자신과 너무나 비슷한 엔리케와 평생을 함께 보냈다가는 서로를 힘들게 만들고 미워하게 될 거라는 결론을 내리지요. 그래서 졸업이 가까워 오는 어느날 실험실에 앉아 밤늦게까지 토론을 하던 도중, 망설이던 엔리케가 “나한테 시집이나 오지 그래?” 하고 애써 장난처럼 말했을 때 “싫어.” 한마디와 함께 나와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겉보기에는 연애를 한 것도 무엇도 아닌 두 사람의 관계는 그 이후에도 똑같았고, 그날밤 이야기는 다시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언제나처럼 함께하는 공부나 언쟁 속에서 가끔 채울 수 없는 침묵이 생겼을 뿐.

학교를 졸업한 테오도라는 부모님에게 좋은 사람을 소개시켜달라고 부탁했고 열살쯤 연상의 건실한 청년, 남동생 카를로스와 같은 상회 직원인 미겔 모랄레스를 만나 약 반년 후 결혼했습니다. 조건없는 애정의 온기를, 부드러운 말 한마디의 안정을 갈구했던 그녀에게 미겔은 엔리케가 줄 수 없던 부드러움과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었고, 그녀는 행복했습니다. 몇몇 가까운 대학 친구와 결혼식에 참석한 엔리케 역시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고요. (비록 그후 아무 주점에나 들어가 미친듯 마시다가 폭력사태를 일으켜서 하룻밤 유치장 신세를 지긴 했지만…) 1년 반 후 아들이 태어나 아버지의 이름을 따 엘리안이라고 이름지었고, 비록 일과 연구로 바빴지만 친정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서 살아서 가사니 양육이니 어머니에게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죠. 모든 것이 순조롭고 평온하던 중 전쟁이 터졌습니다.

의사로서의 의무감도 있었고, 또 대학을 보내줬을 뿐 아니라 그때도 여전히 후원하고 있던 돈(Don, 혹은 錢…? (퍽퍽))의 뜻도 있고 해서 테오도라는 남편과 두살짜리 엘리안과 눈물로 작별한 후 군의관으로 자원합니다. 몽테규 장군의 지휘하에 상상 이상의 승전을 거두는 몽테뉴 군대 앞에서 까스띠예는 형편없이 밀렸고, 목숨의 위협을 느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세상 일이란 때로 참으로 역설적이게 마련이어서, 정작 죽음의 그림자가 찾아든 것은 바티키네 시에 남은 남편과 아이 곁이었습니다. 몽테뉴군의 진격에서 도망쳐온 난민을 수용해서 인구는 늘고 물자공급은 줄어들면서 바티키네 시에는 역병이 돌았습니다. 비록 당국과 의사들의 침착하고 신속한 대응 때문에 비교적 적은 피해로 끝났지만, 이 일 때문에 테오도라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어 버리지요.

어느날 엘리안이 기침을 좀 심하게 하고 열이 나자 미겔은 심한 감기려니 생각하고 테오도라가 가기 전에 소개한 의사에게 아이를 보이는데, 역병이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전염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격리소에 보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미겔은 어린 아들을 모르는 곳에 혼자 버려둘 수는 없다며 자신도 가겠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엘리안처럼 어린아이에게는 거의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던 의사는 방문으로 만족하라고 설득해 보지만, 미겔은 어차피 몸 성한 자원봉사자가 필요할 것 아니냐며 직장에 휴가를 낸채 아이를 데리고 병원의 한 구역을 막은 격리소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의사에게 한 말처럼 병자간호와 청소 등 일을 도우면서 하루하루 약해져만 가는 아들의 곁을 지키지요. 몇달 후 결국 엘리안은 세살의 나이로 세상을 뜨고, 미겔은 격리소를 떠날 수가 없게 됩니다. 그 자신도 전염되었기 때문이죠. 젊고 건강한 남자인데도 아들의 죽음에 대한 충격 때문인지 미겔의 상태는 의사들의 예상보다 훨씬 나빠졌습니다.

한편 미겔이 테오도라에게 썼던 편지는 급박한 전황 속에 보낸지 거의 반년 후에야 전달되고, 부랴부랴 바티키네로 돌아온 테오도라는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과 죽어가는 남편 앞에 망연자실합니다. 이미 의식이 없는 미겔의 임종만 간신히 지킨 테오도라는 장례식 후 넋이 나간채 친정 식구들의 손에 이끌려 집에 돌아오고, 그대로 침대에 누워 폐인처럼 시간을 보내기 시작합니다. 가족과 친지의 위로도, 사제의 지혜로운 말들도 아무 소용없이 테오도라는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밖에 나가지도 않은채 멍하니 있다가 흐느껴 울고, 남편과 아이가 기다리니까 집에 가야 한다고 고집부리는 등 점점 심신이 피폐해집니다. 그녀의 삶에서 떠나있던 사람이 친정집 문을 두드린 날까지는 말이죠.

테오도라의 결혼식날과 그 외에 몇번 봤을 뿐 가족들은 거의 모르는 사람인 젊은이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최근 댁이 당한 상에 조의를 표하며 예의바르게 테오도라를 만나러 왔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지금 딸이 좀 아프다고 얼버무리고, 청년은 의사에게는 보였냐며 자신이 한번 진단해야겠다고 깍듯하게, 하지만 막무가내로 곤란해하는 가족들을 지나서 들어옵니다. 그렇게 엔리케 메디나 데 리오스는 테오도라의 방에, 그리고 삶에 박차고 들어온 것입니다.

그녀로서는 레기온이 친히 눈앞에 나타났다 해도 그렇게 놀라진 않았을 것입니다. 분명히 아발론인가 어딘가 가있다고 들은 사람이 왜 갑자기 까스띠예에, 그것도 자기 집에 있는지, 게다가 어째서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나타나서는 느닷없이 일어나라고 윽박지르고 있는 것인지…놀란 나머지 고통의 안개에서 잠시 헤어나온 테오도라는 어리둥절한 상태로 엔리케에게 팔을 잡힌 채 물리적으로 방 밖으로 끌려나옵니다. 테오도라의 어머니와 언니는 갑자기 나타난 남자가 도라를 잠옷바람으로 끌어내 억지로 식탁에 앉히는 광경을 할말을 잃은채 지켜보지요.

일단 밥부터 주라는 엔리케의 말에 어머니와 언니는 재빨리 음식을 내오지만, 손에 숟가락을 쥐어줘도 몇술 뜨다 마는 테오도라를 보고 엔리케는 할소리 못할 소리 다하기 시작합니다. 머리만 좀 좋았지 구제불능의 바보라느니, 너처럼 멍청한 여자한테 잠시라도 등수를 뺏겼던 내가 너무 한심해서 자살이라도 하고 싶다느니, 의사라는 인간이 목욕도 안하고 뭐했느냐니, 자기연민 속에 돼지처럼 뒹구는 기분이 어떻냐느니… 보다 못한 언니가 슬퍼서 이렇게 된 애한테 무슨 소리냐고 따지지만 어머니는 딸에게 오히려 아무 말 말라는 눈짓을 보냅니다. 엔리케의 폭언에 도라의 공허한 눈빛이 처음으로 달라지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죠.

엔리케의 예전과 다름없이 안하무인격인 태도에 대한 불쾌함은 테오도라의 길고 혼탁했던 우울마저도 꿰뚫고, 말이 아무리 심해도 반박이 떠오르지 않자 그녀는 엔리케를 무섭게 노려보다가 식기를 집어들고 음식을 꾸역꾸역 우겨넣기 시작합니다. 억지로 먹으면서 눈물이 나오고 가슴이 미어져도, 적어도 엔리케에게 바보소리를 듣는 건, 그리고 그의 말이 옳은 건 참을 수 없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하면서 엉엉 우는 도라는 아랑곳하지 않고 엔리케는 이번에는 자기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테아 전역을 돌며 얼마나 뛰어난 학자들을 만나 의학의 최첨단을 연구했는지, 무슨 논문을 썼는지, 무슨 상을 타고 무슨 병을 치료하고 무슨 수술을 하고… 그리고 그 얘기를 들으면서 테오도라는 오랫동안 잊었던 삶의 열정이 서서히 깨어나는 것을 느낍니다. 자신이 절망에 빠져 방에만 틀어박혀 있던 동안에도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었고, 학문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엔리케가 자신보다 앞서나가고 있다는 있을 수 없는 사실에 분개하며! (…)

식사를 하고 어느정도 기운을 차린 테오도라는 식기를 탁! 내려놓으며 반격에 나섭니다. 환자라고는 구경도 못하고 연구실에 틀어박힌 먼지투성이 교수들한테 한수 배웠다고 우쭐하지 말라며, 환자 보느라 논문쓸 시간이 없었을 뿐 군의관을 지내면서 네가 배운 정도는 실전에서 체득했다고 쏘아붙이죠. 그리고 말은 바로 해야지, 대학 내내 내 발치에서 빌빌거렸으면서 마치 1등 자리를 빼앗겼던 건 잠시였다는 것처럼 왜곡하지 말라면서요. 그렇게 두 사람은 그들에게 가장 익숙하고 오랜 대화법인 말다툼으로 접어들고, 테오도라는 남편과 아이를 보낸 후 처음으로 자신이 살아있음을 실감합니다.

한참 다투다가 또 무심히 그동안 서로 지냈던 얘기를 나누고, 또 토론도 하면서 저녁시간이 가까워지자 엔리케는 저녁 먹고 가라는 어머니의 만류도 뿌리치고 일어서서, 잠옷 위에 숄을 두르고 문간으로 배웅하는 테오도라에게 변변한 작별인사도 없이 휑하니 가버립니다. 어두워지는 거리로 사라지는 뒷모습을 테오도라는 복잡하게 지켜보고…

그날 이후로 테오도라는 절망에서 헤어나 자신의 삶을 회복해 갑니다. 지병으로 은퇴하고 집에서 요양하고 있는 발데즈 총장을 방문하고, 라 시엔시아의 새 학장 가르시아를 만나고, 다시 환자를 보기 시작하면서 말이죠. 상실의 슬픔은 때때로 오랜 친구처럼 찾아오지만, 더이상 그건 이전의 파괴적인 슬픔이 아니라 자신이 미겔과 엘리안을 사랑했다는 증거. 슬픔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수 있고 자기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얻은 것, 그리고 그럴 수 있게 이끌어준 엔리케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한창 방에만 처박혀 슬퍼하고 있던 때–지금 와서는 ‘잃어버린 날들’이라고 부르는 시기–의 테오도라는 자신이 곁에 없어서 엘리안과 미겔이 죽었다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하곤, 아니 자신을 괴롭히곤 했습니다. 가족 곁에 있었더라면 엘리안의 병을 더 빨리 알아채서 살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가장 소중한 사람조차 구할 수 없는데 의사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하고 말이죠. 아직도 완전히 해결된 문제는 아니지만 적어도 가족을 구할 수 없었던만큼 더 많은 사람을 돕는 것이 자신의 소명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조금이라도 그들의 삶을 기리는 일이 되기를 바라면서요.

집으로 찾아왔던 그날 이후 엔리케와 다시 만나지는 못했지만 소식은 듣고 있고, 그가 정말 대단한 의사가 되어가고 있다고 내심 인정하고 있습니다. 또 그만큼 그의 정진은 테오도라에게는 자극이기도 하고요.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가든 그건 보이든 안 보이든 엔리케와 함께 걸어나가는 길이 될 것이고, 그 점을 테오도라는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자기연민이나 정체에 빠지려고 할 때마다 엔리케는 그 존재만으로도 그녀를 화나고 짜증나게 해서 의욕을 되찾아줄 테니까요.

그 이외의 것은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대학 때 엔리케와 결혼할 수 없다고 결심하게 한 문제들은 여전하고, 죽은 남편과 아이에 대한 감정은 사랑과 슬픔과 미안함이 뒤섞여 있으며, 또 누군가를 사랑했다가 다시 잃을지도 모른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니까요. 지금으로서는 엔리케가 좋은 여자와 만나 결혼하기를 빌어주고 있습니다. 그는 충분히 사랑받을만한 좋은 사람이니까…

외모상으로는 초승달 제국의 혈통이 강해 보이는데, 곱슬거리는 긴 검은 머리와 대개의 테아인들이 보기에 이국적인 검은 눈매, 갈색 피부와 높은 코가 돋보입니다. 키도 작고 별로 예쁘게 생긴 구석은 없지만 겪어보면 활기차고 남 배려 잘하는 성격, 풍부한 교양이 매력이랄까요. (앗, 어느새 성격 얘기로…) 머리는 보통 방해 안되게 틀어올린 채 몇가닥이 흘러내리는 상태이고, 챙이 넓은 모자를 즐겨씁니다. 옷은 갈색이나 회색, 검은색, 진청색 등 수수한 색과 흰색이 주조를 이루고, 상의는 모직 쟈켓에 흰 무명 블라우스를 받쳐입고 하의는 발목까지 오는 치마, 유사시엔 걷어올릴 수 있게 안쪽에는 한두겹의 모직 페티코트, 그리고 추울 때면 긴 외투를 걸쳐입습니다. 내구성 있고 튼튼한 옷, 피나 고름이 묻어도 쉽게 빠지는 옷(…)을 선호합니다.

검은 가죽 왕진 가방은 들고 다닐 수 있게 손잡이가 달려있지만 손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가죽끈을 꿰메어 붙인 형태로, 보통 어깨에 걸고 다닙니다. 숄더백이죠, 말하자면. 그 안에는 메스와 붕대, 소독약, 지혈대 등 각종 도구가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뭐, 가끔 총 같은 것도 그안에 넣고 다닌다고 해서 뭐라고 할 사람은 없겠지요. (있나?)

무기로는 군의관으로 있을 때 호신용으로 지급받고 많이는 아니지만 훈련도 받은 권총이 있습니다. 또 한자루의 권총은 남편이 쓰던 것을 물려받았지요. 품안에 넣고 다니거나 허리띠에 꿰거나, 어떤 땐 왕진 가방에 슥 넣고 다니기도 합니다. 목에 걸고 다니는 목걸이는 열어보면 짧고 가느다란 금발 머리가 몇가닥 리본에 묶여 있는데, 죽은 아들 엘리안의 머리카락입니다.

시나리오 아이디어
-난치병을 치료하는 연구를 위해 여행이라든지…
-도움이 필요한 환자들이 있는데 출입통제인 지역(예를 들어 군사지역)에 들어가기 위한 모험
-치료를 하려고 하는데 자원(의약품, 도구, 인력 등)이 부족해서 곤란한 상황을 타파
-다치거나 병든 사람을 돕는 의무는 절대적인가? 하는 갈등도 괜찮을 듯한..(엄청난 악당이라든지, 몽테규 장군(?!)이라든지..ㅋㅋ)
-의사가 필요한 두 사람이나 두 집단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든지..
-칼이나 총이 아니라 지식과 교양으로 겨루는 대결상황
-기타 해박한 지식과 교육이 도움이 될만한 상황들
-경쟁상대인 엔리케와 협력해야 하는 상황 (그 과정에서 젊은 과부 마음 설레일 일 생기면 더 좋..퍽퍽)

안느 다르노

몽테뉴 히어로 안느 다르노 시트.

안느 다르노(Anne d’Arnault)
몽테뉴 히어로
총 HP 100

특성치 (48HP)

힘 (8HP)
잽쌈 3 (16HP)
재치 2 (8HP)
끈기 2 (8HP)
멋 2+1 (8HP)

장점 (19HP)

외모 – 놀라운 (10HP)
언어 – 몽테뉴(R/W 1HP), 아이젠(2HP), 보다체(1HP)
쇼맨쉽(5HP) – 명성 추가로 1점, 말재주 규칙에서 성공시 한번의 높이기 성공 간주

기술과 재주 (17HP)

궁정인 (2HP)
-춤 2(연예인), 에티켓 2(1HP), 패션 1, 웅변 2(연예인)
-유혹 2(6HP)

연예인(2HP)
-연기 1, 춤 2(궁정인), 웅변 2(궁정인), 가수 3(2HP)

펜싱(발루)
-공격(펜싱) 3(2HP), 막기(펜싱) 1

나이프(발루)
-공격(나이프) 1, 막기(나이프) 3(2HP)
* 왼손 페널티 없음, 왼손으로 쓰면 공짜 가산점

검객 유파 – 발루(Valroux) (25HP)
-십자 막기 1
*수련자 – 반대손 벌점 없음, 왼손으로 나이프나 망고슈 쓸때 공짜 가산점

배경
추방 – 몽테뉴 (1HP)

악덕
오만 (-10HP)

에밀리 안느 로비뉴는 로녜 지방에서 공무원의 딸로 태어나 18세에 신사계급인 쟝 다르노와 결혼했습니다만, 착실한 남편과의 결혼생활을 답답해하던 중 그 지역에 들른 검객과 눈이 맞아 함께 도망을 쳐버립니다. 음악적 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그녀는 에밀리 로비뉴라고 처녀적 성을 예명으로 해 가수로 일하면서 몽테뉴 방방곡곡을 여행합니다. 가는 곳마다 수많은 모험담과 연애담을 뿌리면서 말이죠. (검사 애인? 한 석달 갔던가요…) 그러다가 마르티즈까지 흘러오고, 그곳에서 발루 검술 양식을 배워 검객이 됩니다. 게다가 발루 가의 방계혈통 도련님, 파비앙 발루 뒤 마르티즈를 꼬시는 수확까지 올립니다. 귀족들의 주류에서는 벗어난 발루 가문이지만, 파비앙은 황제와 친한 가문들의 파티초대를 받으려고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등 어떻게든 끼어 보려고 안달인 젊은이였지요. 결국 파비앙은 있는 돈 없는 돈 긁어모아 샤토 드 솔레이로 향하고, 에밀리 역시 동행. 이렇게 해서 그녀는 꿈에도 그리던 샤루즈 상류사회 입성을 이룩한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만, 문제는 파비앙이 궁정생활에 너무 성공적이었다는 데 있었습니다. 겉멋과 운, 재담을 있는대로 동원해 파비앙은 샤토 드 솔레이의 인기인이 되었고, 황제가 총애하는 귀족의 축에까지 들자 에밀리에게는 경쟁자가 생겼습니다. 리에르 후작가의 아름다운 아가씨 펠리시에가 파비앙과 가까워지기 시작하자 에밀리는 질투도 질투지만 상류사회에 드나드는 입장표(…)와 같은 애인을 놓칠 수는 없다는 절박감으로 펠리시에에게 결투를 요구합니다. (꼭 테아라서 벌어지는 일은 아닌…실제로도 이런 사건들이 있었죠) 그 자신 검에 자신이 있었던 펠리시에는 혼쾌히 승낙하고, 두 사람은 저녁에 샤루즈 시내에서 약속을 정해 결투를 벌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에밀리는 상대에게 이기긴 이기지만 순간적인 감정으로 큰 상처를 입히고, 앗차 싶어 구조받을 수 있게 길가던 총사 한명을 붙잡고 아가씨의 부상 사실과 위치만 알린 후 바로 도주합니다.

리에르 후작가는 비록 대가문은 아니지만 알레 뒤 크리외 공작가에 대대로 충성해 와서 그 세력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 게다가 딸이 일개 가수에게 죽을 뻔한 제레미 리에르 후작의 분노는 대단했습니다. 에밀리 로비뉴는 궐석재판에서 몽테뉴에서의 추방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나마 펠리시에가 살아서 그정도였지, 죽기라도 했다면 에밀리는 지금까지 숨이 붙어 있을지도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펠리시에의 회복기 내내 그녀의 침대가를 떠나지 않은 파비앙의 감동적인 사랑이 풍문으로 들려왔을 때도 에밀리는 담담히 받아들였습니다. (분노에 미쳐 날뛴다고 어떻게 할 수 일도 아니지만…) 어쨌든 펠리시에를 죽일 뻔 한 건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이제는 미들네임과 남편 성으로 해서 이름을 안느 다르노로 쓰고 있는 에밀리, 아니 안느는 샤루즈에서 벗어나 다시한번 떠돌면서 미래에 대해 고민중입니다. 몽테뉴를 안전히 떠날 수 있는 길이나 추방 판결을 번복할 길이 있다면 아무리 위험한 일이라도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