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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케틀루 – 호조 1화

포케틀루 로고

피카 피카!

포케틀루 (Pokethulhu)는 제목대로 ‘포켓몬 + 크틀루’로서, 5~16세의 컬티스트(..)들이 괴물 틀루를 수집하고 훈련시켜 대전하는 내용입니다. 단순하면서도 쓸만한 규칙과 블랙유머가 재미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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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
(나이: 16, 마을: 웨이츠 포인트, 면모: 끈끈함)
학년 12
체육 1
도둑질 6
포케틀루 지식 9 *
정신건강 1
기죽이기 1

데이빗 (나이: 15, 마을: 웨이츠 포인트, 면모: 비늘)
학년 11
체육 7 *
도둑질 3
포케틀루 지식 4
정신건강 2
기죽이기 3

니알라토피
약점: 에너지

힘: 5
속도: 8
건강: 7

부상: 2 (미지의 핥기, 끈끈함)
회피: 3 (니알라토피의 변신, 변형)
봉쇄: 1 (끈적한 점막, 끈끈함)
공포: 3 (달에 울부짖다, 변형)

스커틀
약점: 에너지

힘: 7
속도: 8
건강: 5

부상: 2 (산 뿌리기, 끈끈함)
회피: 2 (기어가기, 비늘)
봉쇄: 3 (점액 분출, 끈끈함)
공포: 2 (절규, 비늘)

피카틀루
약점: 끈끈함

힘: 8
속도: 6
건강: 6

부상: 3 (생체 방전, 에너지)
회피: 3 (장난스럽게 뛰어다니기, 물컹거림)
봉쇄: 1 (귀여운 포즈, 물컹거림)
공포: 2 (깜찍한 모델 포즈, 물컹거림)_M#]
요약

웨이츠 포인트 고등학교의 왕따 학생이며 컬티스트인 호조는 교장 마담 L의 명령으로 전설의 야생 포케틀루 피카틀루를 잡아오려고 떠납니다. 장비를 준비하려고 부모님 카드를 무단으로 쓰던 그는 몰래 사모하는 대상인 1년 아래 후배 데이빗과 마주치고, 마지막 남은 빛나는 12면체 (포케틀루 소환 아이템)를 두고 다투다 호조의 촉수 괴물 니알라토피와 데이빗의 거대 전갈 스커틀이 대전을 벌입니다. 여기서 니알라토피가 이겨서 데이빗은 굴욕감에 무릎을 꿇지만, 호조의 위로에 감동하며 그를 깍듯이 선배로 모시게 됩니다. 그러나 늪지대에서 피카틀루를 찾은 호조는 피카틀루의 강력한 생체방전과 귀여운 포즈 공격에 니알라토피가 고전하면서 위기에 빠지는데…

감상

웃으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한 플레이였습니다. 포켓몬스터를 그다지 자세히 본 일은 없고 그냥 오다가다 채널 넘어갈 때 본 정도였지만, 워낙에 유명한지라 아는 게 없는 저도 대충 흉내는 낼 수 있더군요. 진 녀석이 굴욕감에 빠져 땅에 무릎을 꿇고 손을 짚는 포즈라든지, 승자가 손을 잡아주자  오만하던 녀석이 왠지 개과천선하는 전개라든지. 절대 히어로답지 않은 호조의 비굴 + 비겁 + 느끼함도 재밌었고요.

판정 규칙도 간단하면서도 다양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고 (좋아하는 아이의 눈을 피해 숨는다든지, 피카틀루가 어디 있을지 추측한다든지), 가장 자세한 대목인 포케틀루 대전 규칙도 이것저것 선택할 사항이 많아서 다채롭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전투가 짧게 끝나는 경향은 보이는데, 그건 긴 전투에서 나오는 선택의 다양성과 박진감 면에서는 단점일 수도 있지만 속도감 있는 진행을 생각하면 오히려 장점일 수도요.

결론적으로 참 재밌는 패러디물이며 괜찮은 규칙이라는 생각입니다. 특별히 복잡한 내용이 아닌 만큼 여러 사람이 캐릭터 만들고 심심하면 모인 사람끼리 대전을 벌이고 이야기가 얽혀가는 식으로 해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

쇼크 플레이테스트

승한님과 석한님과 함께 쇼크 (Shock: Social Science Fiction) 플레이테스트를 했습니다. 쇼크는 사회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관념을 위협하는 새로운 추세나 사상, 세력 등이 출몰한 사회에서 일어나는 충격과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래서 사회와 개인의 이야기가 얽히고, 개인의 이야기는 사회를 바꾸어가는 것이 묘미인 듯.

설정

세계와 인물 설정표 보기

일단 이 세계의 패러다임이랄까, 사안은 왕의 신권, 왕을 수호하는 요정의 존재, 그리고 도덕적 기준으로서의 종교 세 가지로 정했습니다. 충격은 계몽주의로 정했고요. 여기에 더해 각 사안과 관련이 있는 세부사항을 만들면서 (“왕의 이름은 메가리히트 벨라로스 2세” “닭과 소 같은 가축이 병들어 쓰러지는 현상은 천벌이라는 소문이 돈다” 등) 배경이 더 구체적인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이렇게 사안과 쇼크를 먼저 만들고 이들을 뼈대로 살을 붙이는 방식은 배경의 중심적 갈등과 주제의식에 직접 관련 있는 설정이 나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극적으로 중요한 부분 관련 설정이 가장 자세한 만큼 강조점이 확실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주제 중심 설정은 다른 배경 설정에도 응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계 설정을 마친 다음에는 각자 주인공을 만들었습니다. 주인공을 꼭 세계의 사안이나 세부사항과 관련시켜야 한다는 얘기는 없었던 것 같지만, 스스로 세계를 설정한 만큼 관련을 시키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아버지를 죽인 요정에게 복수하려는 엘리자베스 스미스, 나서 자란 자기 영지를 지키려고 하는 프로메테아, 나라에 충성하는 무신 프리온(..) 셋을 설정했습니다.

쇼크에는 진행자가 없는 대신 각자 자기 왼편에 있는 사람이 적수가 되어 주인공의 목표를 반대하는 인물을 설정합니다. 예를 들어 승한님의 주인공 엘리자베스의 적수는 엘리자베스의 안전을 위해 복수를 포기시키려는 존 스미스 (담당 로키). 제 주인공 프로메테아의 적수는 프로메테아의 서출 동생 프리온에게 영지를 계승시키려는 프리온의 심복 에비안 (담당 석한님), 석한님의 프리온의 적수는 인망 높은 무신을 경계하는 국왕 벨라로스 2세 (담당 승한님)가 되었습니다.

요약

요정에게 대항하려고 계몽주의 동지들과 계획을 짜다가 귀가한 엘리자베스를 보고 존 삼촌은 엘리자베스의 어머니 로사에게 두 사람의 안전을 생각해서 요정 몰락 계획을 포기시킬 것을 호소합니다. 엘리자베스는 인간이 자유로워지는 것이야말로 아버지의 뜻이었다고 역설하지요. 결국 로사는 딸의 의지를 이해하면서도 부디 안전을 생각하라고 당부합니다.

한편, 왕이 파는 대운하가 리르 영지를 관통할 계획이 알려지자 프리온의 부관 에비앙은 프로메테아가 운하 계획에 적극 찬성한다는 소문을 몰래 퍼뜨립니다. 이에 요즘 세력을 얻고 있는 계몽주의자들이 대표로 찾아가 항의하지요. 프로메테아는 왕께 간언하겠다고 잘 얘기해 돌려보내지만, 에비앙의 계획대로 영지민의 신뢰에는 손상이 갑니다. 한편, 프로메테아는 왕은 국민을 위해야 한다는 계몽주의자들의 주장에 솔깃하는 것을 느낍니다.

왕은 의심과 질투의 대상 프리온을 실각시키고자 역모를 일으키게 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왕이 군대를 동원해 운하를 파게 하자 병사들의 상황이 비참해지고 국방 태세가 약해지는 것을 보다 못한 프리온이 왕에게 간언을 하다가 끌려나옵니다. 왕의 매수를 받은 프리온의 부하가 프리온에게 장군께서 왕이 되셔야 나라가 평화로워진다고 간언하자 프리온은 마음이 흔들립니다.

감상

재밌는 내용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설정 과정에서 나온 배경 내의 갈등과 각 주인공의 사정과 목표가 얽혀서 배경과 인물, 그리고 극의 연관성이 강한 점이 좋았습니다. 폭정, 반란의 태동, 혈육 간의 갈등 등, 진행자가 따로 없어도 (어쩌면 없어서 더욱) 인물 설정을 재미있는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는 느낌입니다.

판정은 방식이 괜찮기는 한데, 성패를 따지는 게 꽤 혼란스러웠다는 느낌입니다. 일괄적으로 높게 나오거나 낮게 나오는 게 성공이 아니라 한 능력은 정한 수에 비해 주사위 값이 높을 때 성공, 대립항을 이루는 능력은 낮을 때 성공인 식이라 시트를 일일히 보지 않고는 성패를 가르기가 어려웠습니다.

하나의 숫자를 기준으로 영역에 따라 어떤 때는 높은 결과가 성공, 어떤 때는 낮은 결과가 성공인 점은 트롤베이브 (Trollbabe)와도 비슷하지만, 트롤베이브는 숫자가 하나이고 마법, 전투, 사회 각 영역에서 어느 결과가 성공이 되는지 정하는 기준이 일률적이라 성패를 가르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던 반면, 쇼크는 숫자가 두 개인 데다 대립항 (예를 들어 권력과 개인적 능력) 중 어느 쪽이 높거나 낮으면 성공이라는 일률적인 기준이 없어서 혼란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또 하나 쇼크와 트롤베이브보다 성패가 헷갈리는 원인이라면 트롤베이브는 주인공에게만 능력치가 있고 주인공의 성패만 따지는 반면, 쇼크는 규칙상 주인공과 조연이 각각 능력치가 있고 성패도 각각 따진다는 점입니다. 결국 지금 굴림 결과가 성공인지 실패인지 두 개의 시트를 각각 봐야 정확히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이중으로 혼란스럽게 되어 있지요.

덧: 개발자 중 폴라리스 (Polaris)를 만든 벤 레만 (Ben Lehman)이 있는 걸 보면 저 능력 숫자는 트롤베이브 외에 폴라리스의 영향도 있을 지도요. 폴라리스에서는 사회 관련이냐 개인 관련이냐에 따라 얼음 (사회) 혹은 빛 (개인)에 대해 1d6을 굴려서 낮게 나오면 성공이죠. 사실 쇼크에서도 주요 축은 개인과 사회, 혹은 변화와 정체이기도 하고요.

제안: 그런 의미에서 대립항을 ‘개인’과 ‘사회’ 하나로 해서 개인 능력을 사용할 때는 능력 숫자보다 낮으면 성공, 사회적 관계를 이용할 때는 능력 숫자보다 높으면 성공으로 가도 괜찮을 것 같아요. 즉 수가 낮을 수록 사회적 관계에 강하고, 수가 높을 수록 개인의 영역이 강하다는 뜻이 되겠죠. 이렇게 하면 수가 하나로 줄고 언제 높거나 낮게 굴리는 게 좋은지 기준이 일률적이어서 트롤베이브 짝퉁 더 명확할 것 같네요.

성패를 바로 가르기 어려웠던 점은 단점이지만, 그 외의 판정 규칙은 전술적 재미도 있고 참여자의 극적 욕구를 반영할 수 있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자기 성공을 위한 주사위 (d10)도 굴릴 수 있고, 상대방의 성공을 방해하는 주사위 (d4)도 굴릴 수 있어서 둘의 비율을 어떻게 할까 하는 판단의 재미가 있더군요. (정석은 2d10 1d4인 듯.) 주인공도, 적수도 맡지 않은 관객이 1d4를 굴려 자신이 원하는 쪽의 성공 혹은 실패에 더해줄 수 있는 규칙으로 관객에게 권한을 준 점도 재밌고요.

판정에서 또 재미있는 점이라면 실패를 다루는 방식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판정에 실패하면 원하는 극적 결과를 관철하지 못하는 대신 주인공의 특징이 늘어나서 나중에 굴리는 주사위가 많아지는 성장을 하는 점도 그렇고, 실패한 판정에 주인공과 세계의 연결고리를 걸고 다시 굴릴 수 있는 점도 혜택과 위험을 저울질할 수 있는 게임적, 극적 판단이 되어서 흥미롭습니다.

예를 들어 플레이 중 프로메테아는 처음에는 설득에 실패해서 영지민에게 신뢰를 잃었다는 특징이 생겼지만, 자기 친족인 왕에 대한 애정을 걸고 다시 굴린 결과 잘 얘기해서 항의하는 영지민을 돌려보낼 수 있었습니다. 만약 다시 굴려서도 실패했다면 왕에 대한 애정이라는 연결고리를 바꾸어야 했겠죠. 자기 위치를 애매하게 한 왕에 대한 반감이 생겼다든지 하는 식으로요.

결과적으로 쇼크는 판정이 좀 혼란스러운 데는 있지만 세계와 인물이 함께 변하는 극적인 이야기를 꾸미기 좋은, 그러면서 게임적 판단 역시 유도하는 규칙이라는 것이 첫인상입니다. 어떻게 끝날지 과연 대운하를 저지할 수 있을 것이며 프리온의 힘으로 2메가 왕을 거꾸러뜨릴 것인가 궁금하기도 해서 기회가 되면 끝까지 해봐도 좋을 것 같군요. 좋은 시간 함께해주신 두 분, 그리고 좋은 규칙 소개하고 설명해주신 승한님에게 감사드립니다.^^

[도전자] 1948년 인천

금요일 스카이프 플레이! 캐릭터 시트는 여기에.

요약

해방 후 인천에서 김봉수, 장병주, 김우식 세 청년은 다가오는 국회의원 선거를 둘러싼 좌우의 이념적 대립 한가운데서 집회, 파업, 주먹다짐으로 점철된 혼란을 살아갑니다. 병주는 부두에서 막일을 하다가 동료의 소개로 남로당 집회에 나가 그 열기와 소속감에 매료되고, 우식은 아픈 동생 연순이의 병원비를 벌려고 백방을 뛰다가 극우 후보 김박명의 눈에 띄어 그를 위해 일하게 됩니다. 봉수는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모실 돈을 벌려고 사상에 상관없이 돈만 주겠다면 어느 쪽에도 붙는 박쥐 생활을 합니다.

좌익과 우익 청년들 사이에 거리에서 싸움이 붙자 병주와 우식은 양측 대표로 주먹으로 해결하기로 하고, 병주의 승리로 우식은 병주에게 이를 갈게 됩니다. 셋 모두 주먹꾼으로 명성을 쌓아가는 가운데 봉수는 병주의 처를 위협해서 병주가 질 수밖에 없게 한 후 반칙을 써서 심판에게 들키지만, 반칙이 없었다고 병주 자신이 주장하는 바람에 넘어가서 결국 봉수의 승리. 멍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병주는 그런 그를 끌어안고 우는 아내를 위로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집회 중에 봉수를 찾아내 흠씬 패줍니다.

김박명씨의 주선으로 벌인 챔피언 시합 오프닝 매치에서 우식은 상대 곰쇠를 쉽게 때려눕히는 한편, 봉수의 반칙이 지적당하고 병주는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면서 병주와 봉수의 재시합은 병주의 판정승으로 끝납니다. 결국 이 시합의 인기몰이도 작용해 선거에서는 남로당 후보가 당선되는 이변이 일어납니다. 봉수는 참한 아가씨와 결혼해 부모님을 모시러 낙향하고, 우식은 낙선한 김박명씨의 보수로 여동생을 치료할 수 있게 됩니다. 동생을 데리고 서울로 가는 우식에게 병주는 행운을 빌어주고, 둘은 이념과 상관없이 모두 대한민국 사람 아니냐며 화해합니다. (그러나 2년 후에는 어떨까?)

감상

개인적으로 아주 재밌었습니다. 권투 링이 정치적 자존심 싸움의 장이 되고, 김박명씨가 세를 얻으려고 시합을 주선했다가 남로당 선수가 우승해서 역효과가 나는 등 스포츠와 정치가 서로 얽히는 모습이 흥미로웠죠. (역사적 정확도는 물론 따지지 않았습니다! (당당))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시대상 속에 교차하는 세 주인공의 삶이라는 꽤 심각한 내용이었지만 웃고 떠들면서 즐거웠고요.

다만 플레이하면서 규칙에 이런저런 허점이 드러나기는 했습니다. 기술이 파워에 비해 너무 중요하고 방어 중심이 사실상 최상의 전술인지라 균형은 좀 안 맞는 느낌이었달까요. 인간관계는 무한히 늘리는 게 규칙상 유리하고 극적으로는 산만해지기 쉬운데 인간관계에 상한이 없다는 점도 허점인 것 같습니다.

뱀프님하고 얘기해보면서 벌써 개선책이 많이 나와서, 뱀프님이 얘기하신 인간관계 제한 부분이나 끈기 우선적으로 깎기 등만 해도 많이 나아질 것 같습니다. 제작자가 책 내기 전에 플레이테스트를 제대로 해본 건지 의문이 들더군요, 한두 번 플레이해봐도 벌써 많이 개선할 수 있는데 말이죠. (물론 제 요약본이 엉망일 가능성도 있긴 하지만.. <- 이후 상당 부분 엉망인 것이 밝혀짐..(..))

결말 조건인 명성 10을 시간관계상 5로 깎았는데, 그렇게 하니 해피엔딩 내기가 쉬워져서 전원이 쉽사리 행복한 결말을 낼 수 있었습니다. 한 7까지 갔으면 적당했을 것 같은데 시간관계상 그러지 못한 점이 아쉬웠습니다. 모두 좋게 끝나는 것도 괜찮은 결론이긴 했어요. 어차피 시간상 2년 후엔 전쟁이..(..)

즐거운 플레이 함께 해주신 승한님과 뱀프님께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도 재밌게 놀아봐요~

[달을 쏘다] 제국의 딸

사랑이 너에게 손짓하면 그를 따르라
비록 그의 길이 거칠며 가파를지라도.
그의 날개가 너를 덮으면 순종할지라
날갯죽지에 숨은 칼이 찌를지라도.

그러나 네가 두려움 중에 사랑의 평화와 사랑의 기쁨만을 구한다면
너의 벌거벗음을 가리고 사랑의 타작 마당을 떠나가는 것이 나으리
웃으나 모든 웃음을 웃지 못하며, 눈물 흘리되 모든 눈물을 흘리지 못할 그 계절 없는 세상 속으로.

사랑할 때면 “신이 내 마음 중에 계신다”고 하지 말라. “내가 신의 마음 중에 있다”고 하라.
사랑의 길을 정하고자 생각지 말라. 네게 자격이 있다면 사랑이 너의 길을 정할지니.

사랑에 대하여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中)

이번 금요일에 승한님과 뱀프님과 저 셋이서 처음으로 달을 쏘다 (Shooting the Moon) 3인용 플레이를 해보았습니다. SF 배경으로, 우주 제국이 지구 연합에 멸망당한 후 난민을 이끌고 도망친 망국의 황녀와 그녀를 보필하는 제국 군인, 그리고 그들을 쫓는 연합 군인 세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고유명사는 대부분 순우리말 사전에서 따왔으니 뜻이 궁금하신 게 있으면 찾아보셔도 재밌을 듯합니다.) ‘제국의 딸’이라는 제목은 당연히(?) 여기서 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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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 하늬

승한님이 맡으신 주인공입니다. 제국 마지막 황제의 딸로, 제국이 연합에 복속당했을 때 끝까지 저항한 사람들을 이끌고 탈출했습니다. 당당하고 헌신적이어서 제국의 황손으로 부족함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 재목. 큰 인물은 큰 시련을 맞는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끝없는 시련에 맞서 싸웁니다.

특성치: 햇무리호, 팔방미인, 황제의 숨겨진 딸, 모험심이 강하다, 의지력이 강하다, 카리스마틱하다

기회: 나라가 망해서 떠돌아다니고 있다
장애: 추적대에게 쫓기고 있다
꿈: 선단의 난민들을 안전지대로 대피시킨다

자기희생으로 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확고한 희망
난민들 중에 불만세력
전쟁 경험이 생겼다
가장 가까운 둘에 대한 불신

꿈: 4

구애자 1: 거우

로키의 주인공입니다. 연합의 군인으로, 뛰어난 인재이나 우유부단하고 실수가 잦아서 좀처럼 잘나 보이지 않는다는 게 비극. 연합군 엘리트의 상징인 보검을 내보이면 보는 눈빛이 달라지지만요. 그런  다소 코믹한 설정에서 시작해서 한 여자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인생이 송두리째 망가지는 과정이 인상깊었습니다. 본인은 아마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요.

특성치
햇무리호의 적선 우금 함장, 그러나 승무원의 군기는 엉망이다
다재다능하지만 실수가 잦다
우유부단하지만 판단력이 뛰어나다

사람: 깐깐한 부관 다라니

장소: 적의 수도 지구
물건: 친히 하사받은 보검
갈등: 황녀를 붙잡아야 하는 적의 입장

파손당한 우금호
비록 적이지만 정중하고 정의로운 상대이다
햇무리 함대의 포로가 되었다
연합의 반역자
공주에게 무례했다
고문의 후유증으로 다리를 절게 되었다
지구연합의 군인으로서 정체성 자체에 회의를 느꼈다
조국의 배신자라는 악명
평화주의의 신념
하늬공주의 불신
부하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비겁자
왕녀의 수하가 되었다

목표: 5

구애자 2: 도래솔

뱀프님의 주인공입니다. 도래솔이란 무덤가를 두른 소나무란 뜻인데, 사라져간 제국의 상징 음양기를 소중히 간직한 채 목숨바쳐 황녀를 호위하는 충직한 모습에 잘 어울리더군요. 친위대 출신의 엘리트 군인이며, 황녀를 탈출시키느라 남고 붙잡히느니 목숨을 끊은 황제의 유시, 황녀를 부탁한다는 말에 얽매여 황녀에게 처음에는 제대로 다가서지도 못한 고지식한 사람. 마지막에 황녀에게 낡은 음양기를 건네는 대목에는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특성치
햇무리호의 경호함 다솜 함장, 그러나 적의 내통자가 있다
전문가이지만 자기 분야에만 치우쳤다
확신에 차있지만 냉정하다

사람: 배신한 친구 곽쥐
장소: 무질서한 자유항 다복
물건: 옛 제국의 깃발 (음양기)
갈등: 황제의 유언

공주와 다복에서 보낸 하루의 추억
팔을 절단
의수
비정한 지휘관의 명성
교활한 선동가의 명성
제국의 재건이라는 집착
다솜호 희생의 악몽
배신자를 배신한 놈
믿을 수 없는 자

목표: 6

목표: 공주의 신변 확보_M#]
요약

제국의 황녀 하늬와 그녀를 호위하는 제국 군인 도래솔은 그들을 추적하는 연합 군인 거우와 마주치면서 계속 마음과 인연이 얽혀갑니다. 하늬는 거우의 인도적이고 사려깊은 태도가 인상에 남고, 거우도 망국의 황녀의 당당한 태도가 쉽게 잊혀지지 않는 한편 도래솔 역시 감히 바라볼 수 없는 신분이라고만 생각했던 하늬에게  빠져듭니다.

결국 하늬의 선대가 해적에게 습격받았을 때 거우는 자신의 함선을 희생해가며 그녀를 돕고, 도래솔은 한쪽 팔을 절단하는 부상을 입습니다. 도래솔의 포로로 잡힌 거우는 고문으로 한쪽 다리를 절게 되면서도 하늬와 도래솔을 도와 난민 중 불만 세력 해소 등 당면한 문제를 해결합니다. 한면, 도래솔은 배신한 옛 친구 곽쥐를 물리치며 하늬를 지킵니다.

거우의 설득으로 연합의 수도 지구로 귀순하러 가던 선단은 다시 나타난 곽쥐에게 억류당하지만, 도래솔과 거우의 활약으로 벗어나서 결국 하늬는 연합과의 교섭 끝에 연합 내 자치령을 다스리게 됩니다. 그 과정에 도래솔은 다솜호와 부하들을 희생시키며 평생 악몽에 시달리게 되고, 거우는 끝까지 충직했던 부관 다라니를 잃습니다.

이후 도래솔은 하늬의 남편으로서 그녀를 보필하고, 거우는 공식적으로는 사형당한 반역자, 실제로는 첩자로 활약하며 그늘 속에서 두 부부를 돕는 친구로 남습니다. 둘 다 각자의 방식으로, 무엇을 내줘도 아깝지 않은 평생의 사랑 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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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늬는 함선 햇무리호로 난민 선단을 이끌고 다솜호 등 남은 제국군의 호위를 받으며 피하던 중, 연합 측의 거우가 탄 우금호에 가로막합니다. 거우는 잡히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황녀의 항복을 촉구하지만, 결국 우물쭈물하는 그의 지휘는 도래솔의 냉정한 지도력에 당해내지 못합니다. 우금은 큰 피해를 입은 채 근처 다복 자유항에 입항하지만 그러나 항복을 권유하는 거우의 정중하고 인도주의적인 태도는 황녀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역시 보급과 수리 등이 급해 다복에 착륙한 하늬와 도래솔은 다복의 한 주점에서 다시 거우와 마주치고,  황녀를 위하는 난민들이 막아서서 간신히 벗어납니다. 비록 위기는 있었지만 도래솔에게 황녀와 다복에서 보낸 하루는 인상깊은 추억으로 남습니다.

다복을 떠난 햇무리 선단은 우주 해적에 붙잡힐 위기에 처하지만, 이때 뜻밖에도 햇무리를 추적하던 우금호가 나타나고, 거우는 자신의 목적은 황녀의 신변 확보이므로 절대 다치게 둘 수는 없다며 우금호를 방패삼아 햇무리호를 지킵니다. 그러나 실수가 잦은 그는(..) 황녀가 다솜호로 건너간 것은 모른 채 포격으로 적을 햇무리에서 다솜호로 몰아내고, 다솜호 선상 육박하는 해적들을 막아내며 황녀를 지키다가 도래솔은 한쪽 팔을 절단하는 중상을 입습니다. 우금호가 완파당하자 황녀의 간청으로 도래솔은 거우 이하 생존한 우금호 승무원을 구출하지만, 대신 그들을 포로로 대우합니다.

포로로 잡힌 거우는 연합의 군 기밀을 대라고 문초를 받지만 입을 열지 않고, 처우에 대한 울분과 황녀에 대한 마음이 겹쳐 황녀에게 무례하게 대합니다. 황녀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도래솔은 심문을 계속하고, 결국 그 후유증으로 거우는 한쪽 다리를 절게 됩니다.

거우가 기밀을 누설하기 전에 죽이거나 회수하려고 연합에서는 곽쥐를 보내옵니다. 곽쥐는 도래솔의 친구이며 제국의 군인이었지만 연합으로 넘어간 배신자로, 거우 등 우금호 승무원의 신변을 요구하며 공격하지만 결국 도래솔에게 패합니다. 이때 소수이지만 부하를 거리낌없이 희생시킨 도래솔은 냉혹한 지휘관이라는 평판을 얻습니다.

한편 계속되는 불안 상황으로 난민 내에는 불만 세력이 생기고, 이들은 우금호에서 붙잡힌 포로들과 결탁해 난민 선단의 제어권을 빼앗으려고 합니다. 이 움직임을 알고 거우는 안전을 위한 최선의 길이라며 연합 출신 포로들을 설득하지만, 그 과정에서 부관 다라니는 황녀를 포획하는 원래 임무도, 연합 군인으로서의 자존심도 여자에게 홀려서 잃어버렸다며 그에게 등을 돌립니다. 한편 도래솔은 성공적으로 난민들을 선동해서 반란의 움직임을 잠재웁니다.

거우는 하늬 공주에게 난민들의 신변을 정말 안전하게 확보하고 싶다면 지구 연합의 수도인 지구로 가서 귀순하라는 제안을 하고 따귀를 맞습니다. (..) 거우는 도래솔은 결사 반대하지만 결국 하늬는 자신보다 신민을 먼저 생각해서 지구행을 감행하기로 결단을 내립니다.

그러나 가는 길에 그들은 그만 다시 곽쥐가 이끄는 함대의 습격을 받습니다. 귀순하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곽쥐는 자신의 공을 세우려고, 그리고 황녀를 차지하려고 햇무리 선단을 억류하고 도래솔과 거우의 처형 명령을 내립니다. 도래솔은 거우는 거우가 도래솔이 탈출을 시도해서 주의가 쏠린 동안 혼자 탈출해 하늬에게 달려가고, 도래솔은 다솜호를 자폭시켜 그 혼란을 틈타 탈출합니다.

이때 곽쥐에게 돌아서는 척했던 다라니가 곽쥐의 벽에 전리품으로 걸려 있던 칼을 거우에게 던져주나, 그 댓가는 다라니 자신의 목숨. 거우와 도래솔은 함께 곽쥐를 공격하고, 곽쥐에게 친구였던 옛날을 상기시켜 한 순간 망설이게 하는 심리전을 사용한 도래솔은 망설임 없이 옛 친구를 살해합니다.

곽쥐의 함대를 제압한 후 햇무리 선대는 다시 지구로 향하나, 황녀를 구한 대가는 커서 황녀는 도래솔을 내버렸던 거우, 부하가 아직 탄 다솜호를 희생시킨 도래솔 모두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립니다. 도래솔은 실의에 빠지나, 부하를 죽일 정도로 황녀를 좋아한다면 겨우 이 정도로 물러설 거냐는 거우의 질타로 사기를 회복합니다.

끝내 황녀는 연합에 귀속한 후 한 자치령을 받아 선단의 난민들을 이주시켜 다스리게 되고, 도래솔은 다솜호를 희생시킨 날의 악몽에 끝없이 시달리면서도 자치령의 수비대장으로서 하늬를 보필합니다. 한편, 거우는 공식적으로는 연합의 반역자로 사형을 당하나 실제로는 연합의 신분 없는 첩자로서 활동하면서 하늬에 대한 연합 내 당파의 암살 음모를 미리 알리는 등 하늬를 은밀히 돕습니다.

거우의 도움으로 암살 시도를 저지한 다음날, 도래솔은 하늬에게 마음을 고백할 의도를 거우에게 당당히 밝히며 거우도 고백해서 그녀의 선택에 맡길 것을 권하나, 거우는 공식적으로는 죽은 사람으로서 황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며 그늘 속에서 도우면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하늬를 불행하게 하면 쥐도새도 모르게 해치우겠다는 협박을 남깁니다. (결국 악몽이 하나 늘은 도래솔이었..)

도래솔의 고백에 대한 하늬의 답은 열렬한 입맞춤. 그녀는 자치령의 영주로서, 도래솔은 그녀의 남편으로서, 거우는 가끔씩 찾아와 두 사람과 옛 이야기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이는 친구로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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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일단 감상은 이 글 처음에 일부 발췌한 싯귀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칼릴 지브란보다는 덜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하자면… 이게 왠 막장의 합창? (…) 하늬를 위한 두 남자의 마음과 희생이 지독하다 못해 지겨울 정도였죠. 팔 내줘, 함선 내줘, 고문 후유증에 정신적 외상에… 참 처절하게 망가지는 인생들이었습니다.

이전에 감상을 쓰면서도 짐작했지만 달을 쏘다는 역시 3인용이 진국이더군요. 2인용이 우연에 상당히 의존하고 전술적 선택도 비교적 적은 편이었다면, 3인용은 훨씬 다양한 선택을 하면서 주사위를 모을 수 있어서 게임적으로도, 극적으로도 재미가 상당했습니다.

그 중 가장 극단적인 결과를 불러온 것은 특성치나 능력치를 희생해 주사위를 5개 받을 수 있는 선택이었습니다. 거우가 우금호와 다라니를 잃은 것, 도래솔이 다솜을 잃은 것이 그 예죠. 그 외에 상대방 구애자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주사위 4개를 받는 선택도 제 제안으로 도래솔이 팔을 절단하는 결과를 유발했고요. 서로 치열하게 밀고 당기는 게임적 선택이 극적 긴장으로 이어지는 게 흥미로웠죠.

이번에도 스카이프 (Skype)로 했는데, 녹음 기록을 남기려 했으나 기술적 문제로 그러지 못한 점은 좀 아쉬웠습니다. 들을 사람이 별로 없긴 하지만, 우리끼리 추억에 잠길 용도로는 괜찮았을 텐데 말이죠. 녹음 기능을 확실히 설정해서 다음에는 기록을 남겨보도록 하겠습니다.

좀 아쉬웠던 점이라면 결말 부분에서 하늬가 자치령을 다스리게 되는 과정, 난민들의 안전을 확보하는 과정 등이 너무 쉽게 지나간 것 같았습니다. 그 과정도 나름 재미있었을것 같은데 말이죠. 사랑하는 이의 꿈이 이루어지는지는 절정 장면 설정 후에 굴려서 결정하는데, 설정을 하는 과정에서 이미 설정의 일부로 이루어지기도 했고요.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참 인상깊은 내용이고 재미있는 플레이였습니다. 인물들 이름을 순우리말로 지은 점도 분위기상 특이했던 것 같고요. (그런데 이상하게 인물들 이름이 잘 생각이 안 나는 현상이… 저만 그랬나요?) 예측을 불허하는 전개와 두 구애자의 변화도 앞으로 긴 여운을 남길 것 같네요. 함께하신 두 분께 감사합니다~

사랑은 사랑이 아니면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도다.
사랑은 소유하지 않으며 소유당하지 않는도다
사랑은 오직 사랑으로 충족하나니.

– 예언자

[달을 쏘다] 수석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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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은 오체스님과 IRC로 한 달을 쏘다 (Shooting the Moon) 2인 플레이입니다. 아더왕 전설을 느슨하게 따와서 왕과 그의 수석 기사가 남편을 잃은 귀부인을 두고 경쟁하는 이야기…라는 게 첫 설정이었는데, 좀 있다 얘기하겠지만 별로 그런 쪽으로 가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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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 아리아네드 아팔렌
특성치: 가녀리다, 고귀한 혈통, 상냥하다, 자존심이 강하다, 열정적이다, 신중하다
기회: 과부가 되었다
장애: 전장에서 죽은 남편을 잊지 못한다
능력치: 남편에게 물려받은 영지의 여주인

목표: 아리아네드의 검은 베일

구애자 1: 아르테갈 모드레그

특성치
서자이지만 좋은 교육을 받았다
제멋대로이지만 뉘우침이 빠르다
자긍심이 높지만 친구에게는 낮출 줄 안다
조심스럽지만 가끔 흥분하기도 한다

능력치
사람: 아리아네드의 사촌 레린드
장소: 왕궁
물건: 왕의 상징인 명검 ‘아이언그레이’
무자비하다
귀족들에게 약점을 보였다
진정한 왕으로 거듭나다

갈등: 아리아네드의 남편 펠리아스가 왕을 지키다가 죽었다
목표: 6점

구애자 2: 시엘 라크란

특성치
귀족이지만 거만하지 않다
배려심 깊지만 적에게는 무자비하다
실리적이지만 계산에 서투르다
조심성 없지만 본인은 신경쓰지 않는다

능력치
사람: 친척 아주머니 모리언
장소: 호수
물건: 준마 비바체
펠리아스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
케레웬의 불길한 예언
수석 기사

갈등: 왕에 대한 충성심
목표: 5점_M#]
요약

젊은 왕 아르테갈 모드레그는 귀족들의 반란을 진압하고 왕권을 확립하나, 아직 왕국의 정세는 불안합니다. 그는 반란 진압 중 아르테갈의 퇴로를 확보하고 전사한 펠리아스 아팔렌의 아내였던 아리아네드 아팔렌에게 마음을 빼앗겨 결국 그녀 때문에 귀족들 앞에 약점을 보이고 맙니다. 한편, 아르테갈의 기사이며 친구인 시엘 라크란 역시 호숫가에서 만난 아리아네드에게 마음이 설레이나 펠리아스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쉽사리 다가서지는 못합니다.

시엘이 친척 아주머니 모리언의 저택에 방문하고 있던 중 아르테갈의 씨 다른 누나이며 마녀인 케레웬이 아리아네드를 노립니다. 아리아네드는 왕국에 재앙을 가져올 것이라면서 말이죠. 시엘은 케레웬을 막아내고 아리아네드를 구하지만 케레웬의 예언에 마음이 어지럽습니다. 아리아네드 때문에 귀족들에게 깔보인 아르테갈의 모습에 더욱… 그러면서도 그는 왕이 주최한 큰 마창 시합에서 오랜 경쟁자 레린드를 이기고 수석 기사 자리에 오르고, 승리의 영광을 아리아네드에게 바칩니다.

토너먼트를 축하하는 연회에서 다시 한 번 케레웬은 아리아네드를 죽이려 하나, 아르테갈은 왕가에 전해지는 치유의 힘으로 그녀를 구하고 모든 귀족 앞에서 자신이 진정한 왕임을 증명합니다. 그가 더 이상 케레웬의 도발을 보아넘기지 않겠다며 그녀의 근거지를 습격할 의지를 밝히자 시엘부터 시작해 모든 기사들이 앞다투어 칼을 바칩니다.

케레웬의 거처인 돌로르 성으로 간 아르테갈과 그의 기사들은 마녀가 내린 마음의 시험을 겪은 후 탑 꼭대기에서 마녀와 대면합니다. 아르테갈은 아리아네드가 왕국에 재앙을 가져오는 것이 운명이라 해도 아리아네드처럼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왕으로서 지키겠다고 선언합니다. 케레웬은 자신의 예언이 틀리기를 바라겠다며 사라지지요. 언니 의외로 싱거웠구나

이후 아르테갈과 아리아네드는 결혼식을 올리고, 시엘은 아리아네드가 쓰던 검은 베일을 징표로 받아 토너먼트마다 왕비의 명예를 드높이는 기사가 됩니다.

감상

전반적으로 재미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시엘이 거의 아리아네드에 관심을 안 보인 점이라든지 최종 장면과 에필로그 부분은 좀 아쉬웠습니다. 끝나고 나서 제가 오체스님께 심통을 좀 부린 이유도 그 때문이었지요. 최종 장면이나 후일담에는 그동안 있었던 갈등을 해소하는 걸 기대하고 있었는데, 해소 없이 미진하게 남은 부분이 많은 것 같아서요. ‘레린드와 아르테갈이 탑에서 마녀에게 홀려 시엘을 공격한 일이 있었던 듯도 하지만 별로 상관없어’ (그리고 마녀가 왜 그런 수고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분위기?

제가 최종 굴림에서 져서 유치하게 심통이 걸 수도 있고 아더왕 원전에 너무 집착했던 걸 수도 있지만, 결말이 완전한 느낌만 들었다면 이기든 지든 큰 상관은 없었을 거라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선한 캐릭터의 희생과 시련, 고난이 주된 관심이고 그 외의 갈등은 피하거나 덮는 편인 오체스님의 스타일, 그리고 선악으로 쉽게 구분할 수 없는 인물 중심으로 모든 갈등을 최대한 끌어올리려는 제 스타일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위에 말한 스타일의 또 다른 결과라면 오체스님 인물들이 너무 착하고 욕심이 없는 점도 이번 플레이에서 또 드러났었죠. 경쟁적인 놀이이니까 서로 좀 더 밀고 당기는 맛이 있는 편이 재밌었을 것 같은데, 저쪽에서 별로 당기지 않으니까 저도 있는 힘껏 당기지 못했달까요. 엔딩 부분도 결국 승패는 별 상관도 없이 그냥 좋게좋게 끝난 느낌이고요. 물론 어디까지나 ‘제 취향상’ 그런 거지만요.

제가 끝에 가서 띡띡대긴 했지만(..) 함께해주신 오체스님께 감사드리며, 특히 자신의 취향을 많이 반영하실 수 있었던 점은 다행입니다. 제 취향하고 어떤 점이 다른지도 확실히 알 수 있었고, 스타일의 정합과 부정합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폴라리스] 톨스타 멸망기

2월 2일에는 난생 처음으로 TRPG를 해보았습니다. ORPG가 아니라 얼굴을 맞대고 하는 RPG는 처음이었는데, 굉장히 재미있었죠. 사용한 규칙은 폴라리스 (Polaris)였습니다. 플레이하다 보니 배경 설정에 나온 도시 톨스타 (Tallstar)가 그만 망해버리더군요 (?).

요약

이야기는 네 젊은 기사와 그들의 얽히고 섥힌 운명이 폴라리스 멸망 이후 첫 왕의 즉위와 톨스타 함락으로 이어지는 게 큰 줄기입니다. 플레이 전에 딱히 계획한 건 아닌데 플레이하면서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생겨나는 게 재밌었죠.

1부: 여름의 어긋남

마이자르의 약혼녀 루크바는 황야에서 악마 에츨리오텍에게 심한 부상을 입고 마이자르에게 구출받아 톨스타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그녀를 치료하던 치유사 카시오페이아에게 씌웠던 질병의 악마 케 쿠안이 루크바에게 숨어들고, 루크바는 치유원에서 탈출합니다. 톨스타에는 케 쿠안의 영향으로 전염병이 번집니다.

한편, 별빛 기사단의 수장이며 명망높은 기사인 엘 타닌은 스스로 왕이 되어 민족을 단합시킬 계획을 그의 연인 카리나에게 털어놓으며 지지를 호소합니다. 카리나는 그녀의 스승 알 나이르가 엘 타닌을 믿지 말라고 한 경고를 떠올리고 ‘진실의 노래’로 그의 마음을 떠보지만, 엘 타닌은 카리나가 자신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습니다. 이것은 그의 타락의 시작점이 됩니다.

또 다른 기사 미카르는 의원인 아버지와 엘 타닌의 야심을 저지해야 한다는 대화를 나누다가 문밖에 인기척을 느낍니다. 문을 벌컥 열자 문밖에서 엿듣는 것은 엘 타닌의 심복 엘사피. 엘사피는 상관에게 알리려고 도망치지만, 미카르는 그를 따라잡아 골목길에서 살해합니다. 이 모습을 그의 친구 엘 스트롬멜이 보게 됩니다.

마이자르는 도시를 배회하며 질병을 퍼뜨리는 약혼녀 루크바를 붙잡아 다시 치료소로 데려가려고 하는데, 이 모습을 본 엘 스트롬멜이 그를 파렴치한으로 오인하고 (열병의 신인 케 쿠안에게 씌운 루크바는 옷을 다 벗어던진 상태라..) 저지하려 합니다. 마이자르는 엘 스트롬멜에게 쉽게 이기지만, 모두의 주의가 결투에 쏠린 동안 엘 스트롬멜의 친구 미카르는 엘사피의 시체를 숨깁니다.

2부: 가을의 사냥

카리나는 친구이며 엘 타닌의 전처인 치유사 카시오페이아의 부탁으로 도시에 도는 병을 치료할 약초를 찾으러 떠납니다. 약초를 발견한 순간 그녀는 루크바에게 부상을 입혔던 악마 에츨리오텍과 마주치고, 결투 끝에 에츨리오텍의 목을 벱니다. 그러나 에츨리오텍의 피가 스민 약초에 부정한 기운이 서린 것은 모른 채 약초를 카시오페이아에게 전달합니다.

마이자르는 옛 연인 아트리아와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사이, 카리나가 가져온 약초를 먹고 나은 약혼녀 루크바에게 유혹당해 하룻밤을 보냅니다. 그러나 루크바는 이제는 케 쿠안이 아닌 에츨리오텍에게 씌워 있었죠. 이 일로 루크바는 임신하고, 마이자르는 루크바와 강제로 결혼하게 됩니다. 아트리아 역시 임신했지만 그녀는 마이자르를 위해 아이 아버지가 마이자르가 아니라고 우깁니다. 그러나 결혼 후에도 마이자르는 아내에게 큰 관심이 없이 아트리아와 관계를 유지합니다.

한편, 젊은 기사 아딜은 친 엘 타닌파 상원의원인 어머니 키에트의 부탁을 받고 엘 타닌에게 반대하는 기사 엘 스트롬멜을 엘 타닌 편으로 돌리려고 합니다. 그러는 동안 둘은 깊은 관계가 됩니다. 자신의 살인 사실을 아는 엘 스트롬멜이 정치적 적수의 딸과 사귀는 것을 불안해한 마이자르는 키에트 의원이 딸의 말을 믿지 못하도록 키에트를 유혹해 모녀 사이를 이간질합니다. (영화 졸업생이 떠오르는 건 저만은 아니겠지요..(…))

엘 스트롬멜은 갈등하다가 결국 아딜에게 마이자르 미카르의 살인 사실을 알립니다. 엘사피의 시체를 찾아낸 아딜은 원로 기사인 아버지 에스미디케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에스미디케는 엘사피의 죽음에 대해 정보를 캐고 다닙니다.

카시오페이아가 약초로 치료한 사람들이 에츨리오텍에 씌우는 일이 생기자 카시오페이아는 악마와 내통한다는 혐의를 받게 됩니다. 카리나는 법정에서 뛰어난 말솜씨로 카시오페이아는 무죄라고 재판관을 설득하나 몇몇 별빛의 기사가 끝내 납득하지 않고 무죄판결을 받은 카시오페이아를 직접 제거하려고 합니다. 카리나는 이들을 막아내나, 실수로 몇 명을 죽이고 이 일로 엘 타닌의 분노를 삽니다.

3부: 겨울의 피

카리나는 스승이며 루크바의 아버지인 알 나이르의 부탁으로 루크바를 보러 갔다가 그녀에게 씌운 에츨리오텍의 존재를 간파하고, 에츨리오텍이 뱃속의 아기에게 옮겨붙자 별빛의 검으로 즉석 낙태를..(..) 기사단의 법도를 어긴 잔혹 행위로 카리나는 기사직을 잃고 도시에서 추방당합니다. 이 사건으로 마이자르는 장인에게 악감정을 품고 엘 타닌에게 돌아섭니다.

아딜과 그녀의 아버지 에스미디케가 자신의 죄목을 캐고 다니자 초조해진 미카르는 결국 아버지의 적인 엘 타닌과 거래를 해서 에스미디케를 무고한 혐의로 체포시킵니다. 아딜은 연인 엘 스트롬멜과 함께 아버지를 탈출시키려고 하나 엘 타닌의 부하들에게 체포당해 감옥에 갇힙니다. 명예높은 기사들의 감금에 불만을 품은 시민들은 톨스타 내에 폭동을 일으키고, 엘 타닌은 기사단장으로서 계엄 권한을 요구합니다.

상원이 계엄령을 승인하지 않자 엘 타닌은 민족을 위하려면 부패한 의원들을 척결해야 한다며 기사들을 규합해 상원을 습격합니다. 돌격대의 선두를 맡은 마이자르는 상원을 지키려는 장인과 맞서고,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는 순간 아내 루크바가 막아서서 결국 처와 장인을 둘 다 죽이고 맙니다. 상원을 점거하고 의회를 해산한 엘 타닌은 왕위에 오릅니다. (이건 스타워즈 3, 혹은 좀 더 가까운 우주의 좀 더 가까운 과거이려나요)

4부: 봄의 파국

봄에 악마들이 톨스타를 공격해 오자 감옥에 갖힌 에스미디케, 아딜 부녀와 엘 스트롬멜은 최전선에서 싸울 수 있게 풀어주겠다는 제의를 받습니다. 엘 타닌 왕에게는 반대하지만 도시를 지키려고 그들은 출전하고, 최전선에서 용맹하게 싸워 악마들을 톨스타에서 몰아낸 후 전사합니다.

엘 타닌은 후퇴하는 악마들을 추격해 몰살할 것을 기사단에 명령합니다. 그러나 기사들을 독려해 ‘후회’에 몰아넣고 물러서는 엘 타닌을 보고 미카르는 기사단을 몰살시키려는 음모임을 깨닫고 엘 타닌을 공격합니다. 싸움 끝에 엘 타닌은 ‘후회’의 입구에 떨어지지만 악마의 수장, 태양처럼 타는 왕관을 투구 위에 쓴 솔라리스 왕이 되어 다시 나타납니다.

한편 마이자르 역시 엘 타닌의 음모를 깨닫고 무방비 상태가 된 톨스타에 있는 연인 아트리아를 구하려고 달려갑니다. 아트리아를 말에 태워 탈출하던 중 악마의 습격을 받아 아트리아는 살해당하고, 마이자르는 그녀의 태에 있던 아이만 간신히 살려 이제 악마가 완전히 점령한 톨스타를 피해 황야로 피합니다. 그러나 얼음 처녀와 마주쳐 그녀의 입맞춤에 조용히 숨이 멎습니다.

추방 이후 혼자 황야를 헤매던 카리나는 마이자르의 얼어붙은 시체와 그 품안에 우는 조그만 갓난아기를 발견합니다. 자신이 죽였던 아이의 이복 동생을 그녀는 사우스와치 시에 데려다준 후 이제 솔라리스 왕이 된 엘 타닌이 점령한 톨스타로 향합니다. 성벽 위에 뛰어오른 그녀는 엘 타닌과 전투 끝에 그를 살해하는 데 성공하지만, 부정한 피를 뒤집어쓰고 타락해 악마가 됩니다.

감상

예, 막장에 또 막장입니다. (..) 정말 재밌었어요. 플레이 내용은 쉴새없이 땅을 파고들었지만 참가자들은 굉장히 즐거워했습니다. 특히 주인공을 위해 교섭하는 ‘마음’과 주인공의 시련을 위해 교섭하는 ‘후회’의 밀고 당기는 긴장과 경쟁은 인물 엿먹이기에 비극적 재미를 끌어내기에 정말 좋았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었죠.

마이자르의 마음: 죽은 아이에 대한 원한으로 엘 타닌에게 돌아선 마이자르는 돌격대의 선두에서 상원 점거를 성공시킨다!
마이자르의 후회: 그러나 그러려면 그의 장인 알 나이르가 막아서야 한다.
마음: 그러나 그러려면 마이자르가 알 나이르에게 이겨야 한다.
후회: 그러나 그러려면 루크바가 그 순간 뛰어들어 장인과 아내 둘 다 죽여야 한다!
전원: (순간 침묵) 우와, 정말? (폭소)
마음: 그리 되었더라.

얼굴을 맞대고 플레이하는 것은 확실히 채팅 플레이, 심지어는 음성 플레이하고도 다르더군요. 같은 공간에 모여 서로 표정과 반응을 보면서 일어나는 상승효과가 상당했습니다. 참가자들은 모두 저는 처음 만난 사람이었지만 굉장히 마음이 잘 맞았고, 분위기도 좋았고요. 웃고 떠들고 간식 먹고, 인물들에게 무슨 짓을 할까 궁리하면서 굉장히 즐거웠습니다.

TRPG라서 느낀 또 다른 차이점이라면 역시 빠르더군요..(…) 저게 3시간 반 정도 플레이한 건데, 같은 시간 동안 한 채팅 플레이하고는 차원이 다르게 분량이 많았습니다. 쑥스러워서 못하지 않을까 걱정도 했는데, T(elephone)RPG 예행 연습을 해서 그런가(??) 괜찮더라고요. 나중에는 칼을 들어 휘두르는 시늉까지 하면서 어이 너 서른 살 맞냐 신나게 놀았습니다. 반면 채팅 플레이 같은 정교한 맛은 덜해서 확실히 서로 다른 재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아무 예정이나 플레이 전에 짠 계획 없이, 심지어 인물 제작도 플레이 시작할 때 했는데 플레이하면서 저렇게 얽히고 섥히는 얘기가 나온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그것도 개개 인물은 특별한 악의 없이 그냥 자기 욕망이나 신념에 따라 움직였을 뿐인데 그게 하나하나 쌓여 결국 도시의 멸망이라는 파국으로 간 점이 아주 비극에 어울리는 전개였습니다. 아마 일행 단위로는 나오기 어려웠을 얘기라는 점에서 일행 개념에서 벗어난 놀이의 가능성을 보여주면서도 인연과 사건의 긴밀한 연계는 공동 서술의 의의를 잘 살렸죠.

어쨌든 결과적으로 참 즐거운 오후였습니다. 드디어 폴라리스를 다시 잡아봤어 엉엉 초대해 주고 주최측으로 고생한 제프와 모나, 그리고 같이 플레이한 패티와 숀 부부에게도 감사해요~ 그러고 보니 우리가 플레이하는 중 모나가 집에 돌아왔을 때 대화가 잊허지지 않는군요.

제프: (문을 열어주며) 여보 나 여자 두 명 임신시켰어. 여자 아버지한테 붙잡혀서 억지로 결혼해.
모나: 음, 그랬어? 에익 나도 폴라리스 플레이하고 싶었는데!

다음에는 꼭 플레이할 수 있길..(…)

[달을 쏘다] 솔꽃의 선택

승한님과 스카이프로 한 달을 쏘다 (Shooting the Moon) 2인 플레이입니다. ‘달을 쏘다’는 삼각관계를 그리는 RPG로, 두 구애자가 사랑하는 이와 맺어지려고 경쟁하는 내용입니다. 이번 플레이 배경은 비스트 헌터 (Beast Hunters)의 첼’쿠리 부족을 느슨하게 기반으로 했습니다.

배경을 잠시 설명하자면, 여자들이 이끄는 모계 사회인 첼쿠리 부족들은 여자들이 같이 아이를 낳고 싶은 남자를 스스로 고릅니다. 이 플레이에서 부족의 두 청년 검은뿔과 천둥구름은 부족의 젊은 지도자 중 하나인 솔꽃의 간택 선택을 받으려고 경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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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 솔꽃
특성치: 힘이 세다, 지위가 높다, 사교관계가 넓다, 조상신의 가호, 아름답다, 용맹하다
기회: 아이를 낳고 싶어한다
장애: 부족 내 위치가 도전을 받고 있다

구애자 1: 검은뿔
특성치:
족장의 아들이지만 족장보다 능력 있다고 인정받는다
친구가 많지만 대부분 그의 지위만 보고 따른다
조상신의 축복을 받지만 그래서 거만하다
못생겼지만 카리스마가 있다

사람: 솔꽃의 경쟁자인 옛 연인
장소: 그의 카리스마를 십분 보일 수 있는 마을 광장
물건: 검치호를 때려잡고 그 어금니로 만든 목걸이

갈등: 다른 지도자들이 그와 솔꽃의 결합을 경계한다

능력치: 마마보이, 맘모스를 직접 잡는 용맹, 부족의 땅을 탈환하려는 일념

구애자 2: 천둥구름
특성치:
비천한 신분이지만 주제파악을 못한다
외톨이이지만 그래서 혼자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
조상신의 저주를 받았지만 그래도 조상신을 경외한다
잘생겼지만 왠지 음침하다

사람: 솔꽃을 미워하는 어머니
장소: 혼자 생각하러 가는 절벽
물건: 그를 따르는 괴조

갈등: 부족에게 경멸받는 위치에 있다

능력치: 큰 약탈을 성공시켰다, 어머니들의 원한을 극복하는 강한 의지, 부모의 죄를 씻었다

목표: 솔꽃에게 아이의 아버지로 선택받는다_M#]
플레이 내용

천둥구름은 솔꽃의 마음을 얻으려고 부족의 땅 근처 교역로를 통과하는 상단을 혼자 약탈해 그녀에게 전리품을 바치려고 합니다. 너무 많은 수에 혼자 덤볐던 그는 위기에 처하지만, 그의 계획을 눈치챘던 솔꽃이 전사들을 이끌고 와서는 계곡 벽에서 뛰어내려 그와 나란히 싸웁니다. 두 사람은 천둥구름의 괴조를 타고 전사들과 합류해 함께 약탈을 성공시킵니다.

검은뿔은 마을 광장에서 솔꽃의 경쟁자들에게 모욕을 주며 솔꽃이야말로 부족을 이끌 자격이 있다고 역설하지만, 오히려 솔꽃은 남자의 도움이 필요한 나약한 지도자라는 모욕을 듣게 됩니다. 검은뿔의 어머니가 그들을 꾸짖어서 자리는 모면하지만, 대신 검은뿔은 어머니에게 의존하는 전사 소리를 듣습니다.

천둥구름은 혼자만의 장소인 절벽에 솔꽃을 데려와 꽃을 꺾어주며 둘이 좋은 시간을 보냅니다. 이때 어머니가 올라와 내 원수의 딸과 무슨 짓이냐며 솔꽃에게 욕설을 퍼붓고 두 사람을 떼어놓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천둥구름은 이제 아이가 아니라며 어머니를 뿌리치고 솔꽃을 뜨겁게 포옹합니다.

친구들을 이끌고 사냥을 나간 검은뿔은 맘모스에게 밟힐 위기에 처하지만, 침착하게 맘모스의 어금니를 피하며 솔꽃의 도움을 받아 창으로 맘모스를 잡는 용맹을 과시합니다. 괴조 타고 나타났던 천둥구름은 완전히 새됐어염 흑흑

맘모스 사냥 후 한동안 사냥감이 줄어들고 약탈도 실패하는 등 불운을 겪은 부족은 샤먼에게 신탁을 청하고, 조상신이 씌운 부족의 샤먼은 저주받은 자를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솔꽃은 부족보다 앞서 천둥구름과 그 어머니의 집으로 달려가 피하라고 경고하지만, 천둥구름의 어머니는 솔꽃의 수명을 바치며 악령을 불러 부족민들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천둥구름이 간절하게 조상신을 불러 악령을 물리치자 부족은 그의 용기와 헌신을 인정합니다.

한편 부족의 어려움을 틈타 적대 부족이 쳐들어오자 (생각해보니 도망친 천둥구름의 어머니가 충동질한 걸 수도 있겠군요) 검은뿔은 전사들을 이끌고 맞서 싸우지만, 그의 친구 중 하나에게 배신당해 죽을 위기에 처합니다. 검은뿔의 옛 친구는 적대 부족에게 부족의 땅을 넘기고, 솔꽃은 검은뿔을 구해 피신시킨 후 부족의 시련에 함께하고자 돌아갑니다. 목숨을 건진 검은뿔은 부족의 땅과 솔꽃을 되찾을 집념을 불태웁니다.

천둥구름은 약탈에서 얻었던 재물로 용병을 고용해 쳐들어가고, 적대 부족이 용병들과 맞서 싸우는 동안 검은뿔은 부족 생존자 중에 선발한 결사대와 함께 침입해 광장에서 결전을 벌입니다. 솔꽃이 괴력으로(..) 탈출해 검은뿔과 나란히 싸우는 동안 천둥구름은 괴조를 타고 나타나 솔꽃과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검은뿔은 적대 부족의 수장 붉은사자를 쓰러뜨립니다.

이때 천둥구름의 어머니가 불렀던 악령이 다시 나타나지만, 검은뿔이 조상신을 불러 두 신은 전투를 벌입니다. 혼란 중에 천둥구름의 어머니는 솔꽃을 죽이려고 하지만 천둥구름은 차마 어머니를 다치게 하지는 못하고 자기 몸으로 칼을 받아냅니다.

솔꽃은 천둥구름의 어머니이니까 이번은 살려주겠지만 다시는 나타나지 말라고 경고하고, 천둥구름의 어머니는 아들이 쓰러진 모습에 복수의 허망함을 깨닫고 사라집니다. 검은뿔은 부족 전사대의 수장으로서 부족의 주요 인사가 되고, 솔꽃은 회복중인 천둥구름에게 찾아가 용맹한 미래의 전사를 낳고 싶다면서 함께 아이를 만듭니다. 그리고 다소 심경이 복잡한 검은뿔에게 부족의 전사는 많을 수록 좋다는 말로써 훗날을 기약합니다.

감상

이것도 엄밀히 말하면 온라인상으로 했으니 ORPG입니다만, 목소리로 해본 RPG는 처음이었습니다. (이건 TRPG! Telephone Role-Playing…(퍽퍽)) 무엇보다 정말… 빠르더군요. 또 다른 달을 쏘다 플레이인 ‘수석 기사’는 3회 하고서 이제 최종 장면을 남겨두고 있는데, 이번 것은 인물 제작, 규칙 설명까지 다 해서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만에 후딱 끝났으니까요. 채팅으로 했으면 정말 밤새 했어도 끝날까 말까 했을 텐데 말이죠. 확실히 빠르고 가볍게 하기에는 음성 플레이만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면 채팅 플레이에 비해 깊이는 좀 덜하다는 느낌도 들었던 게, 별로 자세한 RP는 없이 모든 걸 요약으로 빨리 넘긴 면도 있었거든요. 속도가 워낙에 빨랐던 것은 그런 것도 작용했겠죠. 일단 말이 글보다 빠르고, 또 자세하게 하지 않고 요약으로 넘기기도 했으니 속도상 이점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요. 대충대충 넘어간 데는 저는 말로 한 RPG는 처음이었고 승한님도 오랜만이었던 점도 작용했을 것 같긴 합니다.

어쨌든 개인적으로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둘이 경쟁하고 왁자지껄하게 떠들면서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재미가 말하자면 보드게임과 RPG의 장점을 둘 다 취한 느낌이었달까요. (이렇듯 RPG의 범주를 넘어서기도 하는 이야기 중심 규칙들 때문에 이야기 게임이라는 범주가 생긴 걸로 압니다.) 그러면서도 인물 공동 제작 규칙의 영향인지 사랑하는 이와 양쪽 구애자 인물 모두에게 애착을 느꼈습니다. 아마도 독점적으로 제작한 인물들이었다면 상대방 구애자에 대한 애정은 훨씬 덜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제작 규칙 때문에 상당히 대조적인 인물이 되는 두 구애자의 대비로 인한 긴장도 흥미로웠고, 서술에 세 사람의 특성치, 능력치 등을 엮어넣는 제약을 받다 보니 인물 설정이나 앞 이야기하고 이어지는 과정이 참 재밌었습니다. 천둥구름의 어머니와 그녀가 부른 악령이 주요 악당이 된 점이라든지, 검은뿔이 설전을 펼쳤던 바로 그 광장에서 적대 부족의 수장을 쓰러뜨렸다든지 하는 식으로 같은 극적 요소가 계속적으로 등장하고 이어지면서 그 의미를 더해간 점이 좋은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봅니다.

이런 식의 플레이는 장기 캠페인에 대한 기본 전제를 벗어나서 플레이를 부담 없이, 거의 오락처럼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준비 없이도 서로 주거니받거니 하면서 재밌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구조,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짤막한 형식 등이 그렇죠. 그런 의미에서 ‘달을 쏘다’는 장기 캠페인을 할 사정이 안 되더라도, 혹은 가벼운 단편 이나 단기 플레이를 하고 싶을 때 적합한 규칙인 것 같습니다.

정말 만족스러운 플레이였고, 앞으로도 이렇게 가벼운 기분으로 쉽고 빨리 할 때는 종종 스카이프를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여러 사람이 하면 좀 헷갈리기 시작할지도 모르겠지만요.)

승한님 MSN 메시지

그런 소리는 또 처음 듣는구려


승한님 목소리도 귀여웠어요..캬캬. 좋은 플레이 감사합니다! ^^

서울의 도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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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환님이 참가하실 수 없어서 나머지 두 분 참가자와 이것저것 얘기하다가, 스타워즈 세계에서 잠시 벗어나 도전자 (Contenders)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배경은 서울, 주인공은 자기가 자라난 고아원을 지키려는 김현석, 결핵에 걸린 여동생 병원비를 내려고 백방으로 뛰는 이지형, 촉망받는 프로 지망생이었지만 일단 술집에 다니는 애인 지현의 빚부터 갚아주려고 내기 권투에 뛰어든 최동주 셋입니다.

요약

현석, 지형, 동주는 각자 사정으로 공사장 인부 일, 편의점 아르바이트, 프로 선수 스파링 상대 등 돈을 버느라 바쁘게 뛰어다닙니다. 현석은 많은 돈을 받고 프로 권투선수를 습격해서 시합을 할 수 없도록 부상을 입히고, 서로 얼굴은 알아보지 못한 채 그를 막으려던 동주에게서 도망칩니다.

이후 동주는 안씨가 하는 허름한 체육관에서 트레이너 일을 하며 돈을 좀 벌고, 주먹 휘두르는 것밖에 모르던 현석에게 제대로 권투를 가르칩니다. 현석은 동주의 목소리를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 지형은 잠도 못 자가며 일을 하던 중 편의점에 든 강도를 막다가 다칩니다.

시합이 잡혔다는 연락을 받은 현석과 동주는 서로 시합 상대라는 것을 알고 놀라지만, 둘 다 꼭 돈이 필요해서 시합을 하기로 합니다. 동주를 ‘최 선생님’으로 모시는 현석은 동주의 시합 준비를 돕기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다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지 못한 지형은 시합을 보러 와 동주에게 돈을 걸지만, 현석은 3라운드에서 심판 몰래 반칙으로 결정적인 승기를 잡습니다.

현석의 반칙을 똑똑히 봤던 지형은 심판이 현석의 손을 들어주기 전에 뛰쳐나와서, 아무리 성실하고 정직해도 얻는 게 없는 자기 처지에 울분을 참지 못합니다. 시합에 이긴 현석은 동주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지만 동주는 승자로서 당당해지라고 말합니다. 지현을 위해서라면 이 진흙탕도 참아낼 수 있다고 속으로 되뇌이며…

다음날, 지형이 또 병원비를 늦게 내며 간호사의 닦달을 견뎌내던 중 전날 시합의 상처 때문에 병원에 온 동주가 간호사에게 한 마디 하고, 지형의 여동생 민영의 담당의가 마침 나와 지형의 편을 듭니다. 이 의사는 동주가 프로를 지향하던 시절부터 알던 사람인 것이 밝혀지고, 동주와 지형은 서로 인사합니다.

감상

이전에 미묘군과 일상물 RPG 얘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어떻게 보면 제 경험 중 일상물에 가장 가까운 게 이 플레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좀 막장 처절 일상(..)이긴 하지만 일, 인간관계, 훈련 등 장면 유형 때문에 자질구레하고 구질구질한 얘기들이 꽤 비중이 있었습니다. 좀 거창하게 말하면 일상 속의 감동?

그런 면에서 권투 시합 장면은 일상의 구차함을 벗어나는 의미가 커보였습니다. 비참한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꿈을 표상하는 한편 (돈 때문에 왔다고 스스로 다짐하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열광하는 지형의 모습에서 그런 점이 잘 드러났죠) 그런 몸부림을 압축적으로 나타내기도 하고요.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의 굴레라는 긴장이 재밌었습니다. 따라서 수적으로는 적어도 극적 비중은 큰 시합 장면의 비중을 비교적 세세한 규칙으로 표현한 것은 규칙 설계상 좋은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시합 장면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재밌었습니다. 라운드별로 어떤 전술을 선택할까, 희망과 권투 능력 등 자원은 어떻게 관리할까 생각하고 카드 결과를 기다리는 스릴이 말이죠. 특히 반칙을 선택한 3라운드 때는 서술권이 안 나오면 큰일난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이런 경쟁적 요소는 보드 게임 같은 느낌도 들어서 흥미로웠습니다. 희망을 태워서 끈기를 회복한 때처럼 규칙이 열혈스런 연출을 유도하기도 했고요.

김현석: ‘질 수 없어… 질 수 없어, 절대로!’
김현석: 그는 꺾이는 다리를 억지로 버티며 조명이 눈부신 천장을 올려다본다.
김현석: ‘원장님.. 모두들…!’
김현석: (희망 1 태워서 끈기 2 회복합니다)

기본적으로 개별적인 각 주인공의 이야기가 엮이는 과정도 재밌었습니다. 서로 인간적 교감을 느끼면서도 묘하게 악연으로 얽혀가는 동주와 현석이라든지, 동주와 현석의 시합 속에서 자기 삶의 모습을 엿본 지형의 모습 등. 그런 교차하는 감정과 주제가 있으니까 일행 없는 플레이에서도 집단 서술의 의의가 살아났고, 일행으로서는 다루기 어려운 얘기도 할 수 있다는 점이 즐거웠습니다.

저로서는 진행자 역할에서 벗어나 준비나 진행의 부담이 없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그때그때 재밌겠다 싶은 게 있으면 제안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제가 좋아하는 묘사나 다양한 인물 담당도 할 수 있다는 점은 금상첨화! 그러면서도 내가 모두를 즐겁게 해줘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낄 필요도 없었고, 이야기가 굉장히 즉흥적으로 만들어지는 규칙인 만큼 미리 생각하거나 준비할 것도 없으니 마음이 가벼웠습니다.

그 외에 별이 지다에서도 했던 야자타임(?)도 괜찮게 효과를 본 것 같습니다. 플레이 내 서술과 플레이 외적 대화를 구분하는 수단도 되고, 소설적인 느낌도 나고요. 재밌는 플레이에 함께한 두 분께 감사드리고, 저는 다음에 이어서 할 기회가 있어도 재밌을 것 같네요.

별이 지다 1화 – 나는 위험한 사랑을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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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위험한 사랑을 상상한다
위험한 사랑의 상상은 날 위안한다
결국은 허무하게
모래처럼 날려 사라질
소진할 열정의 달콤한 폭주

차갑고 농밀한 나의 열정이
내 눈 먼 영혼을 잠식하면
뜨겁고 농염한 죄의 입맞춤
타락의 나락, 그 황홀

– 나는 위험한 사랑을 상상한다 (김윤아 노래)

요약

젊은 요정 군주 레드리스는 요정들의 성소인 아르베스 숲에서 황녀 아르테미시온과 깊어가는 감정을 느끼지만, 다음 황제에 대한 결정이 내려지면서 아르테미시온은 곧 죽을 운명이 됩니다.(주:엔님의 세상을 바꾼 사랑 참조) 레드리스의 사촌형 나이라하는 아르테미시온과 연을 끊으라고 레드리스에게 경고하고, 레드리스는 자신의 마음 때문에 갈등합니다.

요정 기사 핀웰은 제국에 대한 반란군을 색출하러 와일드 헌트를 이끌고 요정 기사들과 함께 한 인간 마을을 살육합니다. 핀웰의 인간 부하인 요르문트는 학살에 경악하고, 몰래 인간 어머니와 어린아이를 탈출시켜주다가 발각당합니다. 핀웰은 요르문트의 간청대로 그들을 살려주는 대신 요르문트에게 미래에 자신의 요구 세 가지를 들을 것을 맹세하게 합니다.

세월이 흐른 후, 레드리스의 대녀 스즈는 오라비 렌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가 이를 알게 된 전 약혼자 세이야가 렌을 눈앞에서 살해하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레드리스는 때마침 난입(!)해 세이야가 스즈마저 죽이는 것을 막고, 렌의 죽음은 병사로 처리하고 시체는 화장하도록 지시합니다. 스즈는 렌과 사랑을 속삭이던 이니스 강변으로 혼자 떠납니다.

다시 레드리스와 핀웰의 시간대로 돌아와서, 아르베스 숲과 주변 마을의 요정 수호자인 펜나르는 인근 마을 사람 자비에르의 다급한 애원으로 ‘꽃의 귀부인’이라는 요정이 여신을 위한 제물로 납치해간 자비에르의 아들을 구출하러 달려갑니다. 펜나르는 오래 전에 사랑하는 사이였던 꽃의 귀부인에게 아이를 되찾으려고 분투하지만 결국 그녀의 환술과 자신의 마음에 지고 맙니다. 꽃의 귀부인이 자비에르를 조종해 아들의 목을 졸라 죽이게 하는 동안 펜나르는 자비에르의 절규와 죽어가는 아이는 아랑곳도 하지 않고 꽃의 귀부인과 사랑을 나눕니다.

감상

정말 뭐라고 형언하기 어려운 첫 플레이였습니다. (…) 공통적인 평가는 일단 ‘재밌었다’입니다. 상당히 감정적으로 몰입도 되고, 장면들도 짤막짤막하지만 극적이고요. 아무도 혼자서는 생각해낼 수 없었을 서술이 4인 사이의 밀고 당기는 긴장 속에서 나오는 과정이 정말 흥미진진했습니다.

전통적인 진행자 중심 구조에서는 사실 자기 주인공이 등장하는 차례가 아니면 참가자의 완전한 관심을 기대하기 어려운 반면, 폴라리스처럼 권한 분산형 플레이에서는 자기 주인공이 나오는 장면이 아니어도 각자 역할이 있으므로 장면 하나하나마다 굉장히 관심도가 높았습니다. 마음 (주인공 조종)보다 달그늘 (주인공의 적과 시련 조종)이 더 재밌었다는 얘기도 나오고요.

진행자 중심 구조는 일행 개념과도 직결되는데, 폴라리스에서는 일행 개념을 파괴해서 집단 모험 형식으로는 하기 어려운 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사실 개개 주인공에 초점을 맞추는 장면들 진행하면서 일행을 유지하기는 좀 어려우니까요. 일행 구조를 벗어나고 나니 내밀한 감정과 인간관계, 성적 영역을 다루는 등 이야기 자체의 성격이 달라진다는 점도 재미있었어요. 일행이 있으면 아무래도 모두의 모험이 초점이 되지 개별 주인공의 감정과 관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기는 어려우니까요.

하지만 무엇보다 재미에 중요했던 요인은 물론 사람이었다고 봅니다. 참가자 4인이 서로 친하고, 호흡도 잘 맞고, 감각도 있고, 배경과 인물에 대해 관심이 깊은 점이 재미의 원동력이었겠죠. 규칙이나 구조는 그런 능력과 관계를 보조해주는 도구였고요.

레드리스 장면은 아무래도 처음이었던 만큼 규칙에 익숙해지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인물의 행동 뿐만 아니라 그 행동의 결과까지 서술한다는, 다른 RPG하고는 근본적으로 다른 전제에 익숙해져야 하기도 했고, 또 서술권의 경계를 확고히 하는 등 준비체조 성격이 강했죠. 그러는 동안에도 뱀프님의 훌륭한 묘사라든지 젊고 순수한 레드리스의 감정 표현, 국가의 건설 캠페인 때부터 비련의 주인공으로 관심을 모았던 아르테미시온의 아련한 슬픔이 깔린 천진함 등이 와닿더군요.

핀웰 장면은 이제 좀 더 폴라리스의 규칙과 구조에 익숙해지면서 4인이 밀고 당기는 극적 긴장이 더욱 극명하게 살아났습니다. 와일드 헌트의 섬뜩한 아름다움, 요르문트에 대한 핀웰의 집착 등 요정의 어두운 면이 잘 드러나는 장면이기도 했죠. 네 명이서 각자 다른 역할로 척척 손발이 맞는 점도 멋졌고요.

스즈 장면은 결과가 대체로 정해진 것이라 자유도는 좀 제약이 있었지만 감정의 깊이는 상당했습니다. 스즈의 복잡한 심리라든지 세이야의 광기, 아르테미시온의 죽음 이후 사람이 달라진 레드리스의 이중인격(..) 등 복잡하게 얽히고 섥힌 인연과 감정이 짧은 장면에도 잘 나타난 것 같습니다. 앞으로 스즈를 괴롭혀줄 일이 기대됩니..(퍽)

펜나르 장면은… 펜나르는 선량한 녀석이었는데! ;ㅁ; 역시 폴라리스에는 그딴 거 없다는 걸 절감했어요..(…) 자비에르 아들은 죽기로 되어 있었으니까 역시 자유도에 제약이 있다는 점이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펜나르를 위해 최선을 다해 교섭했습니다. 폴라리스의 극적 긴장은 각자 자기편을 위해 서술을 힘껏 끌고가는 데서 나오니까요. 정해진 역사에서 벗어나 마음껏 싸울 수 있게 되면 또 어떤 게 나올지 기대되네요.

그래도 결국 펜나르가 자기 마음에 진다는 건 아이가 죽는다는 결과에 부합하기도 하고, 인간에 대한 애정과 카라에 대한 마음 사이에 있는 갈등도 표현하니까 적당한 데서 항복했습니다.  무엇보다 너무 멋진 장면이었으니까요! 자비에르를 조종해 애를 죽인다는 엔님의 발상도 압권이었고요. ㅡㅡd

정말 즐거운 플레이였고, 함께해주신 세 분께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도 재밌게 플레이해요~

꼬마 미우 구하기 2부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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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한님과 지난주에 한 꼬마 미우 구하기 단편을 완결했습니다. (2 세션이 걸렸으면 단편은 아니려나요?) 1편은 여기에 있습니다.

요약

비행기 밀항까지는 성공하지만 곧 발각당한 미우는 티엔이 시키는 대로 망명 신청을 합니다. EU에 도착해서 티엔이 있는 이식물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러 가는 이송 과정에서 미우는 납치당해 빼돌려지고, 베트남 정보부 소속의 부이치운에게 사건의 진상을 듣게 됩니다. 미우는 뇌하수체에서 귀중한 약물이 될 성분을 분비하는 실험체이며, 티엔은 태평양 전쟁 후 미수거 상태에서 도난당했다가 프로그램을 조작당해 미우를 빼돌리는 데 이용당했다는 진상을…

티엔은 조국의 명령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이 프로그램 조작이었다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하고, 미우는 자신을 속인 티엔을 원망합니다. 티엔은 미우가 듣지 못하게 부이치운과 얘기한 결과 5년 후 미우가 다 자라고 약물이 완성되면 미우는 뇌하수체를 제거당하고, 과한 비용 문제로 새 뇌하수체 이식 없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크게 동요합니다.

부이치운은 미우를 데리고 이동하면 발각당하기 쉬우니까 티엔에게 미우를 접선 장소로 데려가라는 명령을 내리고, 미우를 찾고 있을 EU 경찰을 피해 접선 장소로 바로 이동하는 프로그램을 티엔에게 입력합니다. 티엔은 새 프로그램에 의지력으로 잠시 저항하면서 미우에게 조금 있다가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믿지 말라며, 접선 장소가 아니라 EU 경찰에게 가라고 당부합니다. 그리고 꼭두각시 인터페이스를 스스로 망가뜨리지요. 이윽고 프로그램에 장악당한 티엔은 미우에게 경찰을 피해 접선 장소로 가라고 명령합니다. 미우는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몰라서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EU 경찰에게 발각됩니다.

망명 신청을 법원에서 심사한 결과 미우는 EU법에 따라 처분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닌 2등 시민의 권리를 인정받고, 베트남 정부는 5년 후 미우에게 새 뇌하수체 이식 수술을 해줘야 한다는 판결이 나옵니다. 이 사건이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져서 기부금만으로도 수술비는 충당하고도 남게 되지만요.

마지막 장면에서 미우는 이후 5년 동안 자신의 권리를 보호해줄 법원 지정 후견인과 대면합니다. 처음 보는 사람을 보고 의아해하던 미우는 이윽고 바이오쉘에 다운로드된 티엔을 알아보지요. 기쁜 재회는 곧 티엔의 무릎에 웅크려 행복하게 자는 낮잠으로 이어집니다. (…)

감상

지난 화에 진행자 없이 하다 보니 어느 쪽도 외부 세계에 대한 권한이 없어서 진행이 느려진 현상 때문에 이번 화에는 번갈아가면서 진행자 역할을 맡고, 이의를 제기하거나 추가할 것이 있을 때, 혹은 진행자도 잘 모르겠을 때 페이트 챠트를 사용하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덕분에는 이번에는 훨씬 속도감이 있었습니다. 반드시 전통적인 의미의 진행자가 필요하다기보다는 서술권에 공백이 생기면 곤란하다는 걸 느꼈달까요. 그런 의미에서 미딕은 진행자 없이 할 수는 있지만 진행자가 없어서 생기는 서술권의 공백을 충분히 채운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이번 화에서 제일 멋졌던 진행은 승한님이 하신 부이치운의 폭로 장면이었습니다. 부이치운을 티엔의 옛 동료로 설정하고 티엔의 과거를 만들어서 티엔의 극적 중심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었고, 미우의 죽음에 대한 갈등을 설정해서 티엔에게 ‘조국에 대한 복종’이라는 AI다운 (그리고 인간다운) 가치와 ‘저항할 수 없는 생명 보호’라는 인간다운, 그러나 AI답지 않은 가치 사이에 충돌을 유도한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가장 재미있었던 RP는 티엔의 인격 (AI격?) 분열 부분. 프로그램에 저항하는 AI라는 줄거리는 흔하긴 하지만 시사점이 많은 갈등이고, 한편으로는 AI의 프로그램은 인간이 받는 명령에 대한 좋은 상징이기도 해서 흥미롭죠. 자신이 조금 있다가 무슨 말을 하든 믿지 말라고 호소하다가 프로그램에 저항할 수 없게 되자 싹 말이 달라지는 게 참 재밌었습니다.

제일 조마조마했던 대목은 티엔이 프로그램에 저항하는 판정을 하는 대목이었습니다. 실패하면 미우가 죽을지도 모르니까요. 지난번에도 얘기했던 것이지만, 가상현실을 표현하는 규칙은 극적 욕구를 다루지 않아서 실패가 성공보다 재미없어지는 판정 스트레스가 종종 생기더군요. 이번 화에도 그런 충돌을 꽤 심하게 느꼈습니다. 가상현실 표현 규칙이 극적 욕구를 받쳐준다기보다는 극적 욕구에 저항한다는 인상이었달까요.

최종적으로는 저야 원하는 해피엔딩이 나와서 좋았지만, THS의 비정함을 보여주는 미우의 죽음을  은근히 바라셨던 피도 눈물도 없는 (?!) 승한님은 어떠셨을지 모르겠네요. 극적 흐름이나 요소를 다루는 규칙이 없으면 참여자 사이에 생기는 극적 욕구의 충돌을 해결하는 것은 순전히 참여자 사이 의사결정 구조에 맡겨야 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리고 인간관계의 연장선인지라 서로 적당히 양보하거나 포기하기도 하지요. 이번에 승한님이 그러셨듯… 그런 의미에서 모두의 극적 욕구를 끌어내고 최종 전개에 반영한다는 점이 극을 직접 다루는 규칙의 중요한 효용이 아닌가 합니다.

가상현실 표현과 극적 요소 조작이라는 두 목표 사이에 생기는 긴장 관계가 또 드러난 부분이라면 승한님과 제가 판정을 보는 관점의 차이였습니다. 저는 판정을 갈등 판정 개념으로 보고 하나의 극적 결과가 판정으로 정해졌으면 그 결과를 뒤집을 수 있는 판정을 하는 건 판정의 의미를 희석한다고 보았지만, 승한님은 행동 판정 개념으로 보시고 판정은 극적 결과 (미우가 죽느냐 사느냐)가 아닌 단일 행동의 결과 (미우가 티엔의 새 명령에 넘어가느냐 안 넘어가느냐)를 정하는 것으로 보시는 것 같습니다. 물론 미딕도 행동 판정 규칙이니까 규칙상 옳은 쪽은 승한님의 관념이었지요.

전반적으로 재미있게 한 플레이였고 개인적으로는 신뢰와 인간성 등의 문제를 다룬 전개도 좋았습니다. 미우도 무척 귀여웠고, 티엔 RP도 재밌었고요. 다만, 판정이 때로 재미를 지원한다기보다는 방해한다는 느낌이 드는 점은 아쉬웠습니다. 지난 화에서도 얘기했듯 의외성을 만들어낸다거나 무작위 키워드로 발상을 자극하는 규칙은 도움됐지만요. 예를 들어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납치당한 것도 d10을 굴려서 나온 장면 중단의 결과였죠. 무작위성 없이는 생각하기 어려웠을 전개가 나온 점은 무척 유용했다고 봅니다.

잡상

아마 전쟁 중 프로그램 손상이랑 도난 후 조작, 부이치운이 한 패치와 그에 대한 저항, 그리고 스스로 꼭두각시 인터페이스를 망가뜨린 여파 등등으로 티엔의 프로그램은 골병이 꽤 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우와 대면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프로그래밍에 구멍이 많이 났다는 언급도 그런 의미에서 한 것입니다.

손상된 프로그래밍을 재구성해서 복구해 주겠다는 제안도 있었겠지만, EU에서는 SAI도 인권이 있으니까 티엔 본인이 거부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이제 자기 프로그램에 대한 외부 개입은 되도록 줄이고 학습 루틴으로 스스로 배워가겠다는, 말하자면 인간성에 한 발짝 다가가겠다는 티엔의 결심이랄까요. 미우를 만나고, 미우의 생명을 구하려고 명령과 프로그래밍까지 거부한 사건은 그만큼 그를 많이 변하게 한 것 같습니다.

베트남에 대한 티엔의 애국심이나 나노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이 변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내지는 그쪽 프로그래밍까지 손상되지는 않았을 것 같지만), 적어도 유럽 체류는 자아 개념부터 정치적 신념까지 모든 것을 곰씹어볼 기회는 되겠죠. EU의 좌파 정치활동에 가담한다든가 지능 향상 동물과 AI의 권리 신장 활동을 하는 티엔을 생각하는 것도 나름 재밌군요. 이것이야말로 THS! 라는 느낌이기도 하고..^^